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민음의 시 173
유형진 지음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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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만 해선 안될 시들.

조금 마음이 묵직해지는 시들.

몇 번 되새김질 할 시들.

- 유치하고 지긋지긋한 것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계속 피할 수 없는 물음표만 들고선 원치 않는 생을 따라 없던 미로를 만들어 헤맨다. - 봄밤- 썩어 가는 목련 꽃잎의 경우 중

- 당신을 생각하면 이제 영, 이에요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다
아무도 못 본 척할 때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꽃송이처럼
가볍고 거칠 것이 없고 이내 녹아 축축해져 버리는 당신 - 겨울밤은 투명하고 어떠한 물음표 문장도 없죠- 이중국적자의 경우 중

- 내가 네가 되면 안 되는 세계에 살아서 우린 이 지경이 되었어 - 뭉게구름은 침묵을 연주하고 중

- 우리에겐 새벽도 없고 아침도 없고 낮도 없고 밤도 없다고. 그러니 살 일도 죽을 일도 없다고. - 심장-세차장의 뱀파이어들 중

-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짓밟힌 꽃잎들이 정갈한 꽃봉오리가 될 때까지
바다가 산이 되고 그 산이 다시 바다가 될 때까지
나의 안녕을, 기다리겠습니다. -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어지러운 몇 개의 안부 중

2023. feb.

#가벼운마음의소유자들 #유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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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5
윌라 캐더 지음, 윤명옥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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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마리 라투르. 35살의 사제.
새로운 교구에 새로운 사제로 임명되어 일생을 헌신한 사람에 대한 기록.

역사적인 기록으로서의 가치.
순수하고 잔혹한 시대상의 기록.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다. 대주교의 행적을 따라 순례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잔잔하다고 할 법하다.

민중을 압제하는 이들은 탐욕스러운 개척자일수도, 신의 뒤에 숨어 잇속을 채우는 사제일 수도 있었던 어지러운 시절.
개척정신에 대한 윌라 캐더의 작업이 진지하고 신실하다.

- 추기경님, 만일 그곳 출신의 사제를 임명한다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포교 일을 결코 잘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교구 사제는 늙었습니다. 새로운 교구에 새로 임명되는 사제는 체력이 튼튼해야 하고, 열성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똑똑하고 젊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야만적이고 무지한 사람들을 다룰 수 있고, 방종한 사제들과 정책적으로 음모를 꾀하는 자들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질서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 13

- 세상의 이런 지역에서는 우편배달이라는 것이 없었다. 두랑고에 있는 신부와 연락을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직접 그를 찾아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산타페에 도착하기 위해 거의 일 년을 여행한 라투르 신부는 몇 주 후 그곳을 떠나 홀로 말을 타고 올드멕시코로 되돌아 가는, 꼬박 3천 마일이 되는 여행을 다시 하게 된 것이었다. - 30

- 마티네즈 신부의 이런 열변을 듣고도 주교는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며, 그가 여기 온 목적은 이곳 사람들의 종료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이곳 교구의 사제들 몇몇이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의 지위를 박탈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 167

- 베르나르, 산타페로 말을 타고 나서 내 대신 대주교를 만나 봐줄 수 있겠니? 내가 그 집에 있는 내 서재로 돌아가서 잠시 쉬어도 괜찮겠느냐고 물어봐 줘. 난 산타페에서 죽고 싶어.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얘야, 난 감기로 죽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보람으로 죽을 거야. - 300

2023. jan.

#대주교에게죽음이오다 #윌라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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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2
이주란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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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유리는 어느날 불현듯 세상을 등져버려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지치고 무감각한 캐릭터다. 그런 그가 주변인들의 느슨한 연대에 힘으로 세상에 감각을 조금씩 열어가는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인다.
일생을 할머니 한분 단촐한 인연으로 조금은 애틋하게 조금은 안쓰럽게 살아오던 사람에게 그런 집요하지는 않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 시대인가.

너를 처절하게 혼자인 상태가 되게 하진 않을께. 라는 마음이 전해져서 무척 좋았다.

-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 9

-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합리적이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질 것이다. 이상한 일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걸 보면. - 21

- 좋은 일이다. 우리는 밀가루를 반죽해 수제비를 해 먹고 공원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 개, 자전거 속에 섞여 지금 이곳을 이루는 수많은 것 중 하나가 되는구나, 생각하면서 걸었다. 다가오는 것들과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 가면서. - 33

- 언니와 골목에서 헤어진 뒤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이럴 때면 기나간 불행이 줄어드는 것 같다. - 47

- 집이 나와 같은 방향인 듯, 나는 꽤 긴 거리를 그의 뒤에서 걷고 있었다. 그가 세 번째 멈춰 섰을 때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손톱달이었다. 그의 시선 끝에 손톱달이 떠 있었다. 달을 보려고 멈춰 서는 사람이라니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도 봤네요. - 75

2023. feb.

#어느날의나 #이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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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문학동네 시인선 185
장옥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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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에 대한 진술. 그게 너무 선뜩했다.


- 손차양하고
눈앞에 펼쳐진 먼지의 길을 바라본다
아득하다
알지 못할 그곳은 아직도 멀다 - 시인의 말

- <항아리>
항아리를 들고 서 있는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입이 없는 사람이었다

둥근 배가 슬펐다 항아리처럼 슬픈 얼굴이었다 항아리인 줄 알았는데 네 얼굴이었다

안을 수도 없고 내려놓을 수도 없었다 웃는 듯 우는 듯 금간 얼굴에 물비린내가 슬쩍 묻어났다 (전문)

-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다
그젠 삼십 년 입은 바지를 버렸다
옷을 버리는 일은 슬프다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한 일이다 - 일요일이다 중

- 하루를 비스듬히 걸었다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했다 그리운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강ㄹ이었다 슬픔이 우니 기쁨도 따라 울었다 감정이 안개처럼 퍼져 모든 게 모호했다 - 비스듬히 다만 비스듬히 중

- 생
그 한마디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 어안이 벙벙하다 중

2023. feb.

#사람이없었다고한다 #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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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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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여사의 단편 SF.

역시 이야기꾼!이라는 느낌이 드는 단편들이다. 유사한 소재의 다른 소설들과의 차별점은 역시 미야베 미유키 인가 싶다.
SF지만 인간의 감성적 측면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뭐 다른 SF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임은 마찬가지지만.

심리 메커니즘에 입각한 마더법이 적용된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엄마의 법률>
오랜시간 함께 해온 로봇과의 마지막 인사를 담은 <안녕의 의식>
죽음의 경위로 사람을 분류해 다시 살려낸 세상의 이야기 <보안관의 내일>

이 세편이 가장 흥미로웠다.

- 나라는 인간을 좌우하는 요소는 ‘누가 낳아줬나’가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 누가 키웠나’다. - 55, 엄마의 법률

- “..... 뭐라던가요?”
왜 내가 이런 걸 물을까. 아무래도 좋은 일 아닌가.
“언제나 그렇게, 수화로 하먼과 이야기했나요?”
그런 있을 수 없는 일을, 왜 나는 물을까.
“그만 돌아가래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여자애는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그 말뿐이에요?”
대답이 없었다. 하먼을 바라본 채 새로 흐르는 눈물로 뺨을 적시면서 여자애가 말했다. “기초기억 보존은 포기하겠어요. 이제, 하먼을 보내주세요.”
“왜 또 갑자기?”
“본인이 그걸 원하니까요.”
여자애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고 양손을 움직여, 조금 전 하먼이 했던 동작을 그대로 해 보였다.
“하먼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를, 죽게, 해주세요.”
...... 나를 죽게 해주세요. - 187, 안녕의 의식

- 이 세계에서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로봇이 어울린다. 아니라면 다들 저렇게, 저 여자애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려 할 리 없다.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로봇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해서, 원통해서......
나는 때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지만. - 194, 안녕의 의식

- 이곳에 신은 없지만, 기도는 할 수 있다. - 447, 보안관의 내일

2023. feb.

#안녕의의식 #미야베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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