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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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처음 만났었나? 길티 클럽도 그랬지만 더욱 강렬한 인상은 혼모노에서 였는데, 모두 수록된 소설집이라 당연히 구매했다.

천연덕스럽게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이 취향이고, 읽고 나서도 묘한 쾌감과 불쾌감이 공존하는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떨쳐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65

- 부엉이는 제대로 된 숨을 뱉기 위해, 살기 위해 모구를 쏟아낸다고 한다. 작가도 소설 한편을 쓸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나 싶다. 오랫동안 모아둔 슬픔과 회한, 의문과 성찰을 쏟아내고 다시 첫 숨을 뱉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말이다.
이 일곱 편의 작품 역시 내가 쏟아낸 모구다.
억세고 질긴 모와 부드럽고 여린 모가 얽혀 있고, 어둡고 환한 색감의 모들이 설켜 있다. - 작가의 말 중

2025. jun.

#혼모노 #성해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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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사람 위픽
정이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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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법과 불공정의 세계가 되어버린 교육과 부동산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이야기.

우리 모두가 거미줄 안에 있다는 것을 줄곧 써왔다고 말하는 작가.

누구나 하는 사소한, 사소하지 않은 선택들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그걸 판단할 수 있을까.
옳다 그르다 섣불리 말할 수 있을까.

요즘의 한국 작가들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회현상을 가장 깊이 있게 그려내는데, 읽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니 스트레스를 같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끊을 수가 없다는 점...

- 그때 나는 멀리 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빨리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빠르게 멀리 가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이유여야 한다고. 아주 멀리 온 것 같은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던 기분이다. - 12

- 똑같은척하는데 사실은 다른 거, 그게 제일 싫어. 억까 당하는 것 같아서 불쾌해. - 48

- 모르는 새 내가 팔아버린 것과, 내가 빼앗긴 것을,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래도록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 71

- '사는'의 의미는 'buy'로 시작했습니다만 점점 '거주하는', '살아가는'의 의미로 변주되고 확산되기를 바랐습니다. '사는 것'의 본질은, 저도 여전히 모르지만, 순간들의 모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가 인터뷰 중

2025. may.

#사는사람 #정이현 #위픽시리즈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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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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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온유, 강보라, 서장원, 성해나, 성혜령, 이희주, 현호정 작가의 작품집.

매해 거르지 않고 읽고 있는 작품집이고, 새로운 최애 작가를 소개하는 좋은 상이다.

이번 기회엔 성해나 작가를 더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수상작인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에는 가족이 아닌 이에게 더 마음과 믿음을 주는 노년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어서 몹시 공감되면서도 괴로웠다. 타인의 작고 무의미한 호의를 가족의 걱정과 우려보다 더 진심으로 여기는 마음... 뭘까. 그래서인지 이야기를 읽고 나서 얼른 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봄의 문제에 있어 과도하게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어서 그렇다. 가족이라는 불가해한 관계에 대한 온갖 상념들이 휘몰아치게 돼서...


- 끔찍한 자괴감에 한동안 덮어두었다가 얼마 후 다시 읽어보면 우습게도 소설이 꽤 괜찮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일까. 쓰는 동안 그만큼 마음이 불편했는데, 그만큼 억지로 썼는데, 이게 왜 말이 되고 소설이 되고 설득이 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부자연스러움도 삶의 속성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얼기설기 엮여 있는 공간에서 불편하고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과 터무니없는 사건을 겪곤 하니까. 어쭙잖은 말과 행동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망하지도 않고 꽤 행복하기까지 하니까. - 백온유 작가의 말 중

- 돌이켜보니 그것이 내가 지난 계절에 한 일의 전부인 것 같다. 자국을 들여다보는 것. 상처 입은 존재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 부디, 우리의 정원이 안녕하기를. - 강보라 작가의 말 중

- 컴컴한 어둠 속에서 조금도 반짝이지 않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동안, 밖에서 폭풍이 일고 눈이 날리고, 강이 얼었다 녹고, 새싹이 자랐다 시들어갈 것이다. 거기에 무엇이 묻혀 있었든, 혹은 가라앉았든, 아니면 버려졌든, 나는 어떻게든 바라보는 사람일 수밖에 없겠다고 예감한다. - 성혜령 작가의 말 중

2025. apr.

#16회젊은작가상 #2025젊은작가상 #백온유 #강보라 #서장원 #성해나 #성혜령 #이희주 #현호정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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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5-07-18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16회 수상작품집 읽은 후, 너무 좋아서 차근차근 역순으로 다 읽어보려하는데 여기서도 ˝성해나˝ 작가님이 등장하네요^^

hellas 2025-07-18 17:51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저도 최근 성해나 작가님 책을 두권 더 봤어요 :)
 
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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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 정적이라고 늘 생각해온 작가 한강의 에세이, 신, 연설문 등이 담긴 책.

특히 노벨상 수상 연설문은 너무 좋아서 당시에 몇 번을 되새기면 읽고 쓰고 했었는데. 이렇게 나오니 반가웠다.

정원 일기가 담백하니 또 하나 좋은 점이었다.

-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 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 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 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19

- 어렸을 때부터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왜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졌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들입니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세계에서 우리가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쓴 닝ㄹ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 34

- 동트기 전 어둠 속에서 생각한다. 이제 멀어진 사람 같은 나의 소설을.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있었는데, 결사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버텨주었는데, 나만 여기 남았구나.
그런데 '나'는 원래 누구였던가?
예전에 나였던 사람은 이미 이 소설로 인해 변형되었으므로 이제 그 사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바꿔 물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텅 빈, 헐벗어 있는 이 사람은? - 42

- 그보다 앞서 <소년이 온다>를 썼던 일 년 육 개월을 기억하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압도적인 고통이다. 그걸 일종의 '들림'이었다고 말한다면 손쉬운 일일 거다. 내가 작가로서 영매의 시간을 건너갔다고 근사하게 말한다면.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때 나는 '들리'지 않았다. 어떤 트랜스 상태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매 순간 분명하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고통이 나를 부수고 또 부수는 걸 견디면서. 작업실에서, 지하철에서, 횡단보도에서, 부엌에서, 이불 속에서 이를 물고 울고 있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사실은 조금도 미치지 않았다. - 54

- 4월 26일
칠 년 동안 써온 소설을 완성했다.
USB 메모리를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저녁 내내 걸었다. - 120

2025. may.

#빛과실 #한강 #노벨문학상수상강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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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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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시그리드 누네즈. 꾸준히 출간되는 족족 읽고 있다.

이번 작품은 팬데믹 시절의 이야기다. 단절이 디폴트인 세계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

많은 수의 문학의 거장들을 인용하고 사유하는데 지적이 욕구를 채우는데 아주 적절한 텍스트라는 점, 그것에 팬데믹의 서사가 덧붙었다는 점, 삶을 갈구하는 소극적이고 정적인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는 점 등이 흥미로운 요소.

재미...라는 지점은 조금 미뤄두고 읽으면 좋다.

- 모든 것들의 이면에는......
우리가 슬픔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속성이 존재한다. - 제임스 손더스

- 이제 나는 중요한 것이 책에 서술된 허구의 사건들보다는 독성 중의 체험, 책 속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정 상태, 머리에 떠오르는 질문들이라는 진실을 안다. - 9

- 무언가 빠져 있어. 무언가를 잃어버렸어. 나는 이런 생각이 내가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한동안 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고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건 그해 봄의 많은 불확실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내가 아는 작가 중에 그런 체험을 하지 않은 이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왜 평생 애도하며 사는 기분인지 알고 싶다. 그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도무지 사라지려 하질 않는다. - 19

-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결국 남는 건 슬픔과 무력감, 그 일을 떨쳐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니까. 잠시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았어. 장례식이 도피처가 되다니, 참 심각한 상황이지. - 63

- 매일 아침 기대에 부풀어 눈을 뜰 수 있었던 건, 기괴하리만큼 인적 없는 거리를 몇 블록 걸어가서 나의 보살핌을 기다리는 깃털 달린 친구를 만나는 이 단순한 허드렛일 덕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해낼 자신이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일들 가운데 하나였다. - 104

- 나는 인간의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자연과 생명에 대한 본능적 사랑)를 믿는다.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친밀감, 그들과 가까이하고 연결되고 싶은 갈망,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우리 DNA에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세상을 점점 더 흉물스럽게 만들고 종내는 완전히 망쳐 버리려는 인간의 욕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17

- 내 인생 이야기는 네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좋은 시간들, 나쁜 시간들. - 185

- 나는 사람들이 악보다 선을 더 많이 가졌다고 믿는다. 오바마가 한 이 말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한 말을 되풀이한 것일 뿐이다. 약간 다른 버전으로는, 나는 세상에 악한 사람들보다 선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반드시 선이 승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ㅏ. 우리가 반드시 고려에 넣어야 할 점은, 특정 상황에서는 악이 선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만들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특정 목적 - 이를테면 전쟁에서의 승리 - 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앤 디디온은, 시위가 인간의 운명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래너리 오코너에 따르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소설을 쓰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쓰고 있다. 따라서 나는 희망을 가져야만 한다.
말이 되나? - 219

- 솔직히 말하면, 난 도무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대학원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아요.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내가 특권층 백인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이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는 일 이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나에게 주어진 유망한 기회는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에 속한 누군가를 위해 남겨 두는 것이 나의 도덕적 의무가 아닐까요? 그리고 이런 시기에 누가 장기적인 계획이란 걸 세울 수 있겠어요? 지구 자체의 운명이 이렇게 불확실한데 어떻게 미래를 생각할 수 있냐고요.- 272

2025. apr.

#그해봄의불확실성 #시그리드누네즈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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