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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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사를 많이 전해 들어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은 니콜 크라우스의 단편집.
기대보단 뭐....

<에르사디를 보다> 에서 나와 로미가 마주치는 체리향기의 등장인물은 혹시 나도 어디선가 보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어떤 구체성이 전혀 없는 형상이지 않을까. 살아가다 어느 순간 마주치는 허상과 희망과 집착의 관념체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왠지 약간 웃음은 나왔지만....<에르사디를 보다>와 <정원에서>가 인상적이었다.

- 그녀는 외교관의 아들과는 잤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알제리 남자에게는 키스만 허락했다. 그가 카뮈처럼 가난하게 자랐다는 이유로 소라야는 그에게 환상을 품었다. 하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태양에 대해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마음이 식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들리지만, 나중에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을 했다. 알고 보니 상상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미지의 존재인 상대와 너무 친밀해졌음을 깨닫는 순간 두려움과 함께 찾아오는 돌연한 단절감. - 22, 스위스

- 말하는 동안 노아는 아비가 느끼는 경이감과 두려움, 자신에게도 익숙한 그 전율을 감지했다. 어린 시절에 이따금 주변을 돌아보며 먼 미래에는 이 가운데 무엇이 남을까, 무엇이 남아 사라진 믿음, 사라진 희망과 갈망의 의례들을 다시 끼워맞춰 그녀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진 이유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단서가 되어줄까, 하고 생각할 때면 느껴지던 감정이었다. - 116, 최후의 나날

- 아버지는 삶을 고작 몇 주 혹은 몇 달 연장해줄 뿐인 유독한 치료를 중단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존엄하고 평온하게 죽기를 바랐지만, 삶의 소멸을 향한 육체의 여정은 항상 난폭할 수밖에 없어서 실은 그 누구도 평온하게 죽지 못한다. 그런 크고 작은 형태의 난폭함은 그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재료였지만 거기에는 늘 아버지의 유머가 섞여 있었다. - 133, 에르사디를 보다

- 일주일 전에 서머타임이 해제된 뒤로 너무 빨리 찾아오는 어둠이 아직도 낯설었다. 아무 경고도 없이 어둠이 내리는 그 첫날에 나는 매번 찌릿한 아픔을 느낀다. 뱃속이 살짝 울렁거리는 그 느낌은 시간의 가차없는 권위를 다시금 깨달을 때, 이제는 이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혔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방향감각을 상실했을 때 찾아온다. - 151, 미래의 응급 사태

- 그런데 자연이란 평화롭지가 않아. 그는 말하곤 했다. 부드러운 산들바람과 산봉우리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 같은, 동화책에서 자연이라고 묘사하는 그런 것들이 아니란 말이야. 작은 분홍색 꽃봉오리나 초록의 랩소디가 아니라고. (이 나라에서 초록으로 통하는 색이 사실은 검정이라는 걸 자네는 알아차렸나? 무한히 펼쳐진 검은 잎들?) 자연은 잔혹하고 간교해. 그는 나와 둘만 있을 때면, 그런 때가 많았지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공격적이고 놀라울 만큼 치명적이지. 약자는 죽임을 당하고 - 고통받다 죽임을 당하고 - 강자는 그 부식과 부패에서 양분을 취해. 그러니 자연이 평화롭다느니 어쩌니, 나무를 흔드는 바람이니 귀뚜라미 소리니 하는 얘기는 집어치우라고 해. 귀뚜라미는 외로운 거야. 그렇게 날개를 서로 비벼서 오돌토돌한 시맥을 긁어대는 건 동류의 다른 개체를 불러내 짝짓기든 싸움이든 하고 싶어서라고. 사람들이 귀뚜라미 소리에 대해 떠들거나 장미를 노래하는 시를 읊게 놔두지 마. 꽃을 꺽어서 아름다움을 즐기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 꽃을 꺾어 즐기는 건 꽃의 기획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말이라고. - 185, 정원에서

- 인생은, 나는 말한다, 아니 말하려 한다. 늘 아주 다양한 층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네요. - 250, 남자가 된다는 것

- 라피는 훗날 제대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뒤에야 나라를 위해 죽는 다는 것, 죽을 뿐만 아니라 살인도 기꺼이 저지른다는 것이 얼마나 기괴하고 부조리한지 깨달았다. - 265, 남자가 된다는 것

2022. oct.

#남자가된다는것 #니콜크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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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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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둔지 꽤 지나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는 책을 꺼내 읽었는데.
묵직하다.

감정을 절제한 단문 위주의 문장들로 한 청년의 죽음으로 시작해 장기기증을 위한 여정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24시간을 다루고 있다.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계속 바뀌지만, 전혀 혼돈스럽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지.

절제된 문장 속에서도 격렬한 감정이 몇차례나 찾아오는데, 삶과 죽음의 그 아슬아슬하고 허무한 경계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조각나는 육신과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가지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신체의 일부들, 그리고 새로운 첫 심박동을 시작하는 순간들. 이 모든 장면들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짧은 글이 아니지만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이 몰입이 된다.

책을 읽는 중에 이 소설이 일인극으로 각색되어 공연되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다.

- 레볼은 그런 영상들을 보고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앞으로 병세가 어떻게 진전될지를 읽어 낼 수 있다. 그는 그러한 형체들, 얼룩들과 환한 부분들을 알아보고, 유백색의 빛무리들을 해석하고, 그 검은색 흔적들을 판독하고, 기호 설명과 코드들을 해독한다. 그는 비교하고, 확인하고, 다시 검토하고, 철저하게 탐구한다. 그런데 이제 볼 수 있는 건 다 봤다. 끝났다. 시몽 랭브르의 뇌는 파괴되어 가는 중이다. 그의 뇌는 피에 잠겨 있다. - 41

- 마리안도 똑같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여기에선 으레 이러는 것인지, 아니면 평범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동작이 어떤 의도를, 시몽의 상태가 불러일으킨 배려나 그 밖의 뭔가를 드러내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아직은. <아드님은 살아 있습니다> 이런 확언을 망칠지도 모를 정보는 그 어떤 것도 듣고 싶지 않다. - 62

- 숀과 마리안은 나란히, 어색하게 소파에 앉아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궁금해한다. 그리고 두 개의 주홍색 의자 중 하나에 토마 레미주, 그가 손에 시몽 랭브르의 의료차트를 들고 앉아 있다. 하지만 이 세 명의 인물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고 그 순간에 동일한 시간의 흐름을 타고 있다 하더라도, 지상의 그 무엇도 고통에 잠긴 그 두 존재와, 목적을 품고(그렇다. 목적이 있다.), 그들의 아이의 장기 적출에 대한 동의를 얻어 낼 목적을 품고 그들 앞에 와서 앉은 그 젊은이의 사이보다 더 벌어진 것은 없으리라. - 139

- 그 사람들이 해로운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어떤 해로운 짓도 안 할 거야. 마리안의 목소리가 천의 조직에 한차례 걸러지며 들려온다. 그러자 숀이 손을 놓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는다. 그의 오열은 자연의 숨결의 연장이다. 그가 동의한다. 그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야지. - 181

- 숀과 마리안이 병실에서 나간다. 토마가 거기 문간에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두 사람이 입을 벌린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을, 서로 협의한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다. 토막 두 사람의 말문을 터준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제게 하십시오. 그러시라고 제가 여기 있는 거니까요. 숀이 힘들게 소리를 내며 그들의 청을 내놓는다. 들어낼 때, 시몽의 심장, 그때, 시몽에게, 그러니까 정지시킬 때, 심장을, 말해 줘요, 내가, 그 애에게 꼭 말해 줘요, 우리가 있다고, 함께한다고, 우리 모두 그 애를 생각한다고, 우리 모두의 사랑을. 마리아가 뒤를 받는다. 그리고 루와 쥘리에트도요, 그리고 할머니도. 그러더니 다시 숀. 바닷소리, 들려줘요. 그가 토마에게 이어폰과 MP3 플레이어를 내민다 7번 트랙이에요. 맞춰놨어요. 아이가 바닷소리를 듣게요(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생각들). 그러자 토마가 그 의식을 두 사람의 이름으로 완수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199

- 토마가 소독해 뒀던 이어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어 시몽의 귀에 끼워 주고 MP3 플레이어를 누른다. 트랙 7. 그러자 마지막 파도가 수평선에 만들어지더니 절벽을 향해 나아간다. 파도가 솟구친다. 하늘 전체를 쉽쓸 기세다.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는 그 변모 속에서 물질의 혼돈과 회오리의 완벽함을 펼쳐 보인다. 대양의 밑바닥을 긁어 내고 퇴적물을 뒤흔든다. 화석들을 드러내고 묻혀 있던 궤짝들을 뒤엎는다. 시간에 두께를 더하는 무척추동물들을, 15억년 묵은 암몬 조개들을, 그리고 맥주병들을, 비행기의 파편들을, 그리고 권총들을, 나무껍질처럼 하얗게 탈색된 뼈다귀들을,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처럼 흥미 진진한 해저를 노출한다. 초고감도 필름. 순수 생물학. 파도는 지구의 표피를 걷어 내고 기억을 갈아엎고, 시몽 랭브르가 살았던 그 땅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완만한 모래 언덕. 그 언덕이 움푹 팬 곳에서 그는 작은 바구니에 담긴 감자칩을 머스터드 소스를 곁들여 쥘리에트와 함께 나눠 먹었더랬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 두 사람이 몸을 피했던 솔밭. 그리고 그 바로 뒤의 대숲. 낭창거리는 40미터짜리 대나무들. 그날 미지근한 빗방울들이 잿빛 모래에 구멍을 냈고 냄새들이, 맵싸하고 짭조름한 내음들이 뒤섞였더랬다. 그때 쥘리에트의 입술 색은 자몽색이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파도가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튀어 오른 물방울들이 휘날린다. 그건 거대한 충돌, 부서짐이다. 그러는 동안 수술대를 둘러싼 침묵이 두터워졌다. 사람들이 기다린다. 누워 있는 육체 위로 눈길들이 엇갈린다. 발가락은 초조하게 꼼지락거리지만 손가락은 인내한다. 하지만 모두 시몽 랭브르의 심장을 정지시키려는 순간 한 템포 쉬어 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트랙이 다 돌아가자 토마가 이어폰을 제거하고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묻기. 클램핑할까요?
“클램핑!” - 296

- 시몽의 심장은 수도권으로 이동했고, 그의 간과 폐는 지방의 또 다른 지역들에 도착했다. 그것들은 다른 육신들을 향해 질주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그녀의 아들의 단일성에서 살아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만의 특별한 기억과 이렇게 분산된 육체를 어떻게 결부시켜야 할까? 그의 존재, 이 세상에 비추어진 그의 모습, 그의 혼은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질문들이 부글거리는 기포처럼 그녀 주위를 맴돈다. 그러다가 시몽의 얼굴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말끔하고 온전하다. 그것은 나뉠 수 없는 것이다. 그게 그 아이다. 그녀는 깊은 안도를 느낀다. 밤이 밖에서 석고 사막처럼 불타오른다. - 309

2022. oct.

#살아있는자를수선하기 #마일리스드케랑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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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공경희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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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작가들의 언어가 녹아들어있다.
정말이지 취향저격인 작가.

너무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딱히 없고...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 일정한 나이가 된 사람에게는 그것이 합리적인 결정일 수 있다고, 완벽한 선택이, 심지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젊은 사람이 자살하면 실수일 수밖에 없지만 그 경우와는 다르다고.
한번은 나는 짧은 소설 같은 삶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라는 문장으로 내게 충격을 주기도 했어요. - 12

- 죽음을 설명할 수가 없죠. 그리고 사랑은 그보다 나은 대접을 받아야죠. - 51

- 후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야. 지독한 게으름뱅이나 겁쟁이라서 꿈을 가꾸지 못하고 중도 포기했다는 불쾌한 감정을 자주 느꼈어. 하지만 옳은 결정을 했다는 확증이 필요하면, 썼던 글을 보기만 하면 됐지. 과거에는 극렬한 책벌레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독서에, 특히 소설에 흥미를 잃었어. 아마 매일 보는 현실과 관계있겠지만, 꾸며 낸 문제들이 넘쳐 나는 꾸며 낸 삶을 사는 꾸며 낸 인물들의 사연에 넌더리 나기 시작했지. - 91

-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지요, 처음 읽고 맘에 들었던 책이면 더욱 그렇죠. 그 느낌이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어떤 이유에서든 처음처럼 흡족하지 않을 공산이 크죠. 늘 그런 일을 겪는데(나이 들면서 점점 더), 이런 상황을 접하면 그 여파가 너무 심해서 좋아하는 책을 다시 펼치기가 조심스러워지죠.
산문 문체는 예전처럼 좋았고 위트도 여전히 날카롭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기억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에요, 그런데 달라진 게 있어요. 두 번째 읽으니 저자에게 호감이 가지 않아요. 심지어 싫은 구석이 있어요. 여성들을 향한 적개심, 전에는 그걸 놓쳤을까, 아니면 내가 잊고 있었을까? - 96

- 하지만 이건 딜레마야, 그렇지 않아? 특권층은 자기 이야기를 쓰면 안 되지. 쓰게 놔두면 백인 제국주의 가부장제가 심화되니까. 그런데 그들이 다른 집단에 대해 쓰는 것도 안돼. 그러면 문화적인 도용이 되니까. - 224

2022. apr.

#친구 #시그리드누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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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서머스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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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마지막 클리프 행어가 아주 효과적이었고, 바로 그 순간 부터가 진짜 빌리 서머스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앨리스 맥스웰을 만나 전개되는 빌리의 삶은 조금 과장해서 숭고해 보일 정도였달까. 후반으로 달리면서는 진정으로 그의 삶을 응원하게 된다.

늘 홀로 생의 무게를 짊어지던 이가 우리라는 대명사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이기도 하지만, 빌리에겐 더욱 더...

오버룩 호텔을 등장시키는 지점은.... 대단한 작가의 자부심 같은게 아닐까 생각하며 조금 웃었다.

- “얘기가 복잡해.”
앨리스는 입술을 꾹 다물고 이를 보이지 않은 채 엷은 미소를 짓는다.
“뭔들 복잡하지 않겠어요?” - 42

- 여행은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서 끝이 나게 되어 있다는 걸 모든 현명한 자의 자식들은 알고 있다. - 61

- “그걸 하는 동안에는요, 그러니까......” 그녀는 머뭇거린다. 그 단어를 말하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든 걸까?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글을 쓰는 동안에는 슬픈 걸 잊을 수 있었어요.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잊을 수 있었어요. 여기가 어딘지 잊을 수 있었어요. 그럴 수 있을 줄 몰랐는데. ” - 417

-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쪽과 저쪽 중간의 차가운 공기가 담긴 심연을 건너다보며 그녀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빌리가 그녀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여기 있다. 그녀는 발견되었다. - 419

2022. oct.

#빌리서머스 #스티븐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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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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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처럼 수면 아래 잠겨 있는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기분으로 읽었다.

그들의 행동, 대화, 감정 등이 수면이라는 매끈하고 투명한 막으로 둘러쳐진듯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분.

언뜻 고요하게 대화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독립영화 한편을 본 듯한 기분도 든다.

특별한 구석없이 큰 부침을 겪지 않고 있는 현재를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먹먹한 슬픔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이 드러났다.

-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냥 반복이라고 한 번만 말하기엔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요. - 16

- 김치 한 통을 만들기 위한 일들. 이렇게 하여 밥을 먹고 김치를 먹고 사는 것. 하루가 다 간 느낌이었는데 엄마가 먼저 하루가 다 갔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지만 괜히 아직 여섯시밖에 안되었는데?라고 말해보았고 엄마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다 간 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거의 다 간 거나 다름없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나지 않았으나 다 지나가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살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인가 생각하며 초록색 둥근 컵에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쏟았다. 내용물은 두꺼운 잔 바닥에 소리를 내지 않고 떨어져내렸다. - 42

-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평범하게 지냈어요.
어려운 거네요.
뭐가요?
평범하게 지내는 것.
유진씨는요?
저도 그런 편이에요.
좋네요. - 77

- 우재가 다시 한번 내게 늘 괜찮은지를 물어왔고 나는 늘이라니, 그런 거라면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 155

-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만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지금 내게 남은 마음은 그것뿐이라고, 구도심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 196

2022. oct.

#수면아래 #이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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