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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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작업들이 책 한권이 되었다. 워낙 애정하는 작가라 나오기 무섭게 읽었지.

결혼에 대해, 여성의 인생에 대해, 외로운 사람에 대해, 간과하는 죽음들에 대해 말하는 단편들이 우울의 늪에 빠져 들지 않고, 우울이라도 지하 깊숙히 파들어가는 우울이 아니어서, 유쾌한 무엇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옥상으로 따라와. 라는 말을 변형하면 한판 붙자가 아니라 우리 같이 잘 살자도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옥상에서 전수되는 그 비기 나도 갖고 싶은데, 세상에 옥상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있진 않겠지.. 라는 망상도 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다.

또 결혼에 대해 환상을 걷어내고 현실감있게 그려낸 것도 좋았다. 웨딩드레스 44 도, 이혼세일도..
결혼생활이 굴욕적이라고(18) 말하는 감성을 여성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이야기라서 더 좋다.

일러스트는 수신지 작가. 그러고 보니 참 어울리는(좋은의미) 조합이다. 옥상이 미화되지 않고, 오리지널 코리언 루프탑 컬러 쌩그린이어서 더 좋다. ㅋㅋ

- 여덟번째 여자는 칼럼니스트였다. 여자는 결혼해서 사는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 혼잣말을 했다. “이제 환멸에 대해서는, 웬만큼 쓸 수 있겠군.” - 14, 웨딩드레스44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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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쏜살 문고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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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쓸데 없는 일인지, 얼마나 잔인한지, 얼마나 어리석은지(50) 그 인간의 허황된 물욕과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판타지.

신에게 뇌물을 제안하는 브래덕 워싱턴.... 탐욕의 끝에 다다르면 그렇게 되는 걸까. 오만방자함의 절정. 그의 딸들도 어리석은 리치 이디엇의 전형으로 그려지는데, 뭐 가족 자체가 그러니 어쩌겠나 싶지만, 똥같은 대사들을 발랄하게 내뱉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반박도 못하고 어이없어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감당할 수 없는 재화에 대해 생각한다면 분명 즐거운 공상일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가치환산이 은밀하고 제한되는 재화라면 재앙이지 않나. 인간에 대한 심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 환경 속에서 보호(? 라고 할 수 있는지는 애매하지만) 받고 있던 인간들의 현실감없는 사고방식을 본다면 벌을 받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단편들 모두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것같다. 작가 스스로 돈과 유명세에 쫓기듯 살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냉소였을까. 자조한 것이라면 그야말로 최고의 자학인 셈.

헛된 희망, 사라진 낭만, 뜨거웠던 젊음... 모두 사라지고 손 안에 쥔 것이 한낱 추억인 것만 같은 쓸쓸함이 남는 단편들. 그래서 좋았지만...

- 일반 수열에서 가치가 크기에 비례한다면 이 세상에는 그 10분의 1을 살 정도의 금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만한 크기의 다이아몬드로 대체 뭘 한단 말인가? - 38

- 앞으로 내 손님들도 오겠지. 그러면 나도 익숙해질거야. 죽음처럼 불가항력적인 것 때문에 즐거운 인생을 방해받을 수는 없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여기에서 지내는 게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해 봐. - 58

- 우린 가난해질거야. 그렇지?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이야. 난 고아가 되고 완전히 자유롭겠지. 가난하고 자유로워! 정말 신나는 일이야! - 65,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 그는 바로 이 소파에 앉아 이제는 다시 느끼지 못할 것 같은 고뇌와 슬픔을 느꼈다. 다시는 그렇게 무기력하거나 그토록 지치고 비참하고 가난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십오 개월 전의 자신에게는 신뢰라든가 따뜻함 같은 것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영원히 사라져 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분별있는 일 - 그들은 분별있게 행동을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젊음을 능력으로 바꾸었고, 절망으로 성공을 빚어냈다. 그러나 삶은 젊음과 함께 그의 사랑이 지녔던 신선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 98

- 그래, 갈테면 가라, 그는 생각했다. 4월은 흘러갔다. 이제 4월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있건만 똑같은 사랑은 두번 다시 없을 것이다. - 101, 분별있는 일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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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주제들 스탠퍼드 철학백과의 항목들 2
샐리 해스랭어 외 지음, 김혜연 옮김 / 전기가오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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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은 여성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고 모든 형태의 성차별주의를 종식시키기를 추구하는 지적활동이자 정치적 운동이다. - 5

- 집단으로서의 여성은 다양한 형태의 불의를 경험하고, 그들이 맞닥뜨리는 성차별은 다른 억압체제와 복합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현대적인 용어로 이를 교차성의 문제라고 한다. - 17

- 각기 다른 집단은 각기 다른 형태의 억압에 맞서 싸운다. - 24

개론이다. 후반에 레퍼런스로 삼을 추천목록도 길다.

인용 마지막 각기 다른 형태의 억압에 맞선다라는 문장을 오래 들여다 보았다.
당면한 과제를 수행하는데 있어 다른 억압받는 집단을 배격해서는 안된다는 말일 것이고, 다른 형태의 억압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불려나와 비난받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한국 페미니즘이 반드시 트랜스 해방을 지지해야 한다던 어떤 뇌과학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왜 자다가 봉창을 두들기듯 트랜스 해방이라는 전선에 페미니즘을 호명했을까?
요즘 페미니즘의 화력이 좋으니 아 쟤네 데려다 쓰면 좋겠구만 이라고 생각했을까?
생각해보니 어떤 외국인 남성은 혜화역 시위를 보고 북한의 인권은 생각안하냐고 한적도 있다.
헐....

내가 반대하는 차별과 억압의 카테고리에 분명 성소수자의 권리도, 북한의 인권도 포함되지만, 저런식으로 호명당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물론 연대의 집단이 다양하고 많으면 좋다. 그러니 남을 호명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집단에 호소해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아. 이 스탠퍼드 철학백과는 궁금해서 한번 사보았다. 흥미가 있는 주제라면 앞으로도 사 볼 생각이다.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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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29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생각했어요. 왜 자기가 연대할 생각을 안하고 다른 사람을 호명하는 걸까요?

hellas 2018-11-29 08:38   좋아요 0 | URL
한심한 발언이라고 한숨을 쉬고 말았네요. 뭘 믿으면 그렇게 멍청한 소릴 크게하나 싶어서... ㅡㅡ
 
잠의 뱐덕 시와표현 시인선 16
강금희 지음 / 달샘 시와표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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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무엇이 있었는데, 막상 보니 없어, 쓸쓸해졌다.
아마 황사같은 마음....

- 이것은 사후의 숨결
죽은 자들의 허물어진 무덤이 몰려왔다.
길거리는 온통 누런 한 겹의 소문
태양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뭇잎들도 차례로 눈을 감고
가면들은 종종걸음을 친다. - 황사 중.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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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알베르 카뮈 전집 1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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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여름과는 큰 관계없어보이는 카뮈의 에세이들.

여름 파트가 훨씬 좋았는데, 내용면에 뭐 큰 차이점이랄게 없어서, 아무래도 타이틀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양의 이미지가 선명한, 태양의 에세이. 요즘 춥고 공기도 안좋고 하니... 그런 풍광이 그리워져서...

일년 전쯤 반쯤 읽었을 무렵 후반부가 파본인 책임을 뒤늦게 알게 되어 산지는 또 꽤 시간이 흘렀으나 교환해준다기에 그 과정들을 거치는 와중에 드랍하게 된 책이었다.
새 책을 받고서도 지루한 감성이 남아있어 선뜻 읽어지지가 않았다. 이번에 카뮈를 좀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김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 얼마나 간사한지, 초반의 지루함이 지나고 여름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고 나니 꽤 재밌어지는 것. 초반에 좋다 만 책의 경우 보다야 훨씬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이라 다행이다.

- 세계는 아름답다. 이 세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 풍경이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실은 바로 정신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햇살에 따뜻해진 돌, 혹은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흠씬 키가 크듯 위로 솟구치는 시프레나무, 바로 그것이 ‘이치에 맞는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금그어주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이다. 유일한 세계란 다른 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나를 무화한다. 그것은 나를 저 극한에까지 떠밀어간다. 세계는 분노하지 않은 채 나를 부정한다. - 67

- 오늘날의 인간에게 프로메테우스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마도 제신들에게 대들며 일어선 그 반항아는 오늘날의 인간들의 모형이며, 지금부터 수천 년 전 스키티아의 사막에서 일어났던 그 항의의 목소리는 오늘에 와서 비견할 데 없는 역사적 경련 속에서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동시에 그 박해받은 자가 우리들 가운데서 계속하여 박해를 받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가 그 고독한 신호를 보내주고 있는 바 인간적 반항의 저 엄청난 절규에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을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 117

- 물론 어떤 낙관론은 나와 상관없다. 나는 내 또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의 북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우리의 역사는 그때 이후 끊임없이 살인, 부정 혹은 폭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진짜 염세주의는 그 많은 잔인성과 비열함보다 한술 더 뜨는 짓에 있다. 나로서는 일찍이 이 치욕과 싸우기를 그친 적이 없고 오직 잔인한 인간들 밖에는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허무주의 중에서 가장 암담한 것과 만났을 때도 나는 그 허무주의를 극복할 이유들만을 모색했다. 그것은 무슨 미덕의 소유자라서거나 보기 드문 영혼의 숭고함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 속에서 태어났고 수천 년 전부터 그 속에서 인간들이 고통 속에서조차 삶을 찬양하도록 배워온 그 빛에 대한 본능적 충실성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도 그는 빛을 발하고 다시금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다. 그의 세계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메마른 무의미가 아니라 수수께끼, 다시 말해서 눈이 부셔서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는 어떤 의미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깡마른 세기에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희랍의 못났지만 악착스럽게 충실한 아들들에게는 우리 역사의 화상이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견디어내게 된다. 비록 어두운 것일지라도 우리가 성취하는 과업의 한가운데에는 오늘 들과 산들에 걸쳐 절규하는 그것과 똑같은 어떤 굴복할 줄 모르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 - 152

- 나는 다만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젊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 158

- 부드러움이 길게 연장되는 어떤 밤들에는, 그렇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그런 밤들이 땅과 바다 위에 되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죽는 데 도움이 된다. - 185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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