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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ㅣ 알베르 카뮈 전집 1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8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결혼, 여름과는 큰 관계없어보이는 카뮈의 에세이들.
여름 파트가 훨씬 좋았는데, 내용면에 뭐 큰 차이점이랄게 없어서, 아무래도 타이틀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태양의 이미지가 선명한, 태양의 에세이. 요즘 춥고 공기도 안좋고 하니... 그런 풍광이 그리워져서...
일년 전쯤 반쯤 읽었을 무렵 후반부가 파본인 책임을 뒤늦게 알게 되어 산지는 또 꽤 시간이 흘렀으나 교환해준다기에 그 과정들을 거치는 와중에 드랍하게 된 책이었다.
새 책을 받고서도 지루한 감성이 남아있어 선뜻 읽어지지가 않았다. 이번에 카뮈를 좀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김에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 얼마나 간사한지, 초반의 지루함이 지나고 여름의 이미지에 사로잡히고 나니 꽤 재밌어지는 것. 초반에 좋다 만 책의 경우 보다야 훨씬 행복하고 아름다운 결말이라 다행이다.
- 세계는 아름답다. 이 세계를 떠나서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그 풍경이 내게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위대한 진실은 바로 정신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마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햇살에 따뜻해진 돌, 혹은 하늘에 구름이 걷히면서 흠씬 키가 크듯 위로 솟구치는 시프레나무, 바로 그것이 ‘이치에 맞는다’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금그어주는 경계선이라는 사실이다. 유일한 세계란 다른 아닌 인간이 없는 자연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나를 무화한다. 그것은 나를 저 극한에까지 떠밀어간다. 세계는 분노하지 않은 채 나를 부정한다. - 67
- 오늘날의 인간에게 프로메테우스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마도 제신들에게 대들며 일어선 그 반항아는 오늘날의 인간들의 모형이며, 지금부터 수천 년 전 스키티아의 사막에서 일어났던 그 항의의 목소리는 오늘에 와서 비견할 데 없는 역사적 경련 속에서 마무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동시에 그 박해받은 자가 우리들 가운데서 계속하여 박해를 받고 있으며, 우리는 여전히 그가 그 고독한 신호를 보내주고 있는 바 인간적 반항의 저 엄청난 절규에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을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 117
- 물론 어떤 낙관론은 나와 상관없다. 나는 내 또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의 북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우리의 역사는 그때 이후 끊임없이 살인, 부정 혹은 폭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진짜 염세주의는 그 많은 잔인성과 비열함보다 한술 더 뜨는 짓에 있다. 나로서는 일찍이 이 치욕과 싸우기를 그친 적이 없고 오직 잔인한 인간들 밖에는 미워하지 않는다. 우리의 허무주의 중에서 가장 암담한 것과 만났을 때도 나는 그 허무주의를 극복할 이유들만을 모색했다. 그것은 무슨 미덕의 소유자라서거나 보기 드문 영혼의 숭고함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그 속에서 태어났고 수천 년 전부터 그 속에서 인간들이 고통 속에서조차 삶을 찬양하도록 배워온 그 빛에 대한 본능적 충실성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도 그는 빛을 발하고 다시금 우리를 따뜻하게 해준다. 그의 세계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메마른 무의미가 아니라 수수께끼, 다시 말해서 눈이 부셔서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는 어떤 의미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깡마른 세기에 아직도 살아 남아 있는, 희랍의 못났지만 악착스럽게 충실한 아들들에게는 우리 역사의 화상이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고자 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을 견디어내게 된다. 비록 어두운 것일지라도 우리가 성취하는 과업의 한가운데에는 오늘 들과 산들에 걸쳐 절규하는 그것과 똑같은 어떤 굴복할 줄 모르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 - 152
- 나는 다만 그 사람들이 나와 함께 젊었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젊지 않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 158
- 부드러움이 길게 연장되는 어떤 밤들에는, 그렇다, 우리가 죽은 뒤에도 그런 밤들이 땅과 바다 위에 되돌아오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죽는 데 도움이 된다. - 185
2018. n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