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문학과지성 시인선 494
서효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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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나는 반성을 모르는 굴뚝이었다. 솟구치다 사라질 연기를 위해 반성을 모르고 살았다. 나는 남성 시인이고 이성애자며 판정받은 장애가 없다. 돈 안 되는 시를 쓴다며 이른바 예술 한답시고 인중에 힘깨나 주고 지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사회적 오른손잡이로서 불편함과 마주해 악수하지 않았다. 내가 겪지 못한 불편은 누군가에게 불쾌와 상처, 고통과 폭력이었다. 문단이라는 거실 소파에 앉아 방관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문학은 반성을 토대로 지속될 것이다. 수년간 발표한 시를 모으니 그때는 몰랐던 여성혐오가 지금은 보여 빼거나 고친 시가 몇 있다. 온갖 곳에 염결성과 예민함을 드러내면서 하필 방종했던 부분이다.
여수의 굴뚝을 얼마간 지나치면 장인의 묘가 나타난다. 꽤 높은 둔덕이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공장들 너머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두번 절을 하는 동안 딸아이가 묘와 묘 사이를 뛰어다닌다. 삶과 죽음의 간격에서, 반성과 망각의 틈에서 감히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는다.
문학의 이름을 빌려 자행되는 모든 위계와 차별 그리고 폭력에 반대합니다. - 시인의 말 중.


오늘은 맘에 드는 시간이 없다. 인간은 모두 같은 얼굴이고,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유해하고, 너와 나는 썩고 있다. - 취향을 찾아서 중.

사람이 죽는 일은 거대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잠자코 앉거나 서서, 각자의 도착지를 생각할 것이다 - 지축역 중.

2017. 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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