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고양이 기분을 몰라 - 어느 심리학자의 물렁한 삶에 찾아온 작고 따스하고 산뜻한 골칫거리
닐스 우덴베리 지음, 신견식 옮김 / 샘터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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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박사인 저자는 매사 행위 주체의 심리를 분석하는 것이 습관인 것 같다.

주로 대상은 사람이었겠지만, 이번엔 우연히 관계맺는 고양이다.

초반에 고집스러울 만큼 ‘난 동물을 키우지 않겠어‘라는 다짐은 시트콤처럼 무너지고,

어느 새 집안에 사료를 쌓아두고, 냉장고에는 고양이 영양식이 들어차며,

집 밖 창고 생활을 하던 ‘나비‘(이름도 있다)는 중성화수술과 동시에 목뒤에 마이크로 칩까지 이식된다.

국가가 공인한 고양이 집사가 되었건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집사임을 부정하던 박사는

고작 3일간의 나비의 외출에 온갖 불길한 상상과 좌절을 토로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나비를 잃은 상실감에 대해 구구절절 읍소하는 지경이 된다.

아... 이것은 ‘너곧내‘아닌가...;ㅂ;

가련한 집사의 운명...ㅋㅋㅋㅋ

이래저래 재밌는 이야기다.

고양이를 외출냥으로 키울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스웨덴은 부러운 나라다.

사람, 환경, 고양이 모두를 염두에 둔 사회적 개입이 일단 이 나라보다는 선진적이니까.

물론 그 외의 모든 점도 부럽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나는 많은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아주 여리고 민감하다. 고양이는 이와 달리 의지가 강철 같고 어찌 보면 목적의식이 확고하면서도 오히려 유연하다. 대결은 전혀 없었지만 결국 고양이는 바라던 것을 언제나 얻게 마련이었다.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0

물론 고양이랑 지내다 보니 걱정도 조금 생겼는데, 고양이가 우리에게 오지 못하게 하려는 데서 오는 걱정이 아니라, 녀석 덕분에 기쁨이 생긴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데서 생기는 걱정이었다. - 23

저녁이 되자 나는 피곤하다. 아주 피곤하다. 하지만 미취되고 배가 열린 것은 내가 아니다. 워낙 대단했던 하루라서 난 약간 혼란스러운 정도였다. 고양이 소유주로 등록되어 사실 꽤나 즐겁다. 하지만 난 고양이를 갖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다. 그저 내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려던 것뿐이었다. - 46

고양이는 왜 골골댈까? 어떻게 하는 걸까? 고양잇과 동물은 모두 그르렁거릴까? 호랑이가 그르렁댄다면 그 소리는 마치 콘크리트 벽을 억지로 밀고 들어가는 전기 드릴 같겠지. 이런 게 궁금해진 것은 처음이라 자연사에 해박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 친구가 내 질문을 누구에게 전하는가 싶더니 결국 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동물학 교수와 함께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선 내 질문들에 상냥하게 대답해주려 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교수가 건네준 과학 논문에서는 독일 연구자가 다른 연구자들의 참고문헌도 주렁주렁 꼼꼼하게 달면서 고양잇과 및 여타 동물들의 그르렁 소리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 49

나도 나비에게 골골송을 불러주어서 나비가 내게 보여주는 편안한 친밀감에 똑같이 응답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잠시 슬쩍 그르렁대 보는 나의 성대에는 그 유용한 주름이 없기에 주로 코 고는 소리만 날 뿐이다. 즐거울 때 내는 소리를 흉내 내려는 내 어색한 노력을 나비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마음이 통하지는 않는다. - 57

나비는 천천히 우리를 믿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또 그만큼 나비를 믿지 않는다. 어느 화창한 날에 나비는 다시 사라질지 모르고 그러면 우리는 상실감과 고양이 특식으로 가득 찬 냉장고만 끌어안은 채 남겨질 것이다. 그저 이 순간만은 나비가 돌아와서 마냥 기쁠 뿐이다. - 73

깡통 하나는 5크로나(한화 약 680원) 밖에 안 되니 난리법석 피울 일도 아니다. 문제는 내 도덕적 기준이 무너진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인데 좀 더 기강을 세웠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썽꾸러기 고양이는 그냥 흡족한가 보다. 걔는 도덕적 원칙 따위는 개나 줘 버린다. - 179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아마 깨달았겠듯이 내 고양이는 아무 거리낌도 없는 향락주의자라서 가장 좋은 것만 받아 먹는 데 한 점의 부끄러움도 못 느끼는 쾌락 완전체다. 내가 보기에는 매력적인 성격이다. ...... 나는 그런 삶의 태도를 존중한다. 나비는 이왕이면 나은 것을 망설임 없이 고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딱히 더 나은게 없다면 꽤 비참한 상황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부지런함은 내가 알아서 챙겨야 하겠지만 이런저런 시련을 어떻게 견디는지는 녀석에게 배울 수 있겠다 싶다. 그게 바로 내가 갖출 덕목이다. - 180

2016. d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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