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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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20세기 문학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잘 모르고 있었는데, 쉽게 알려주는 강의록이다.

대체로 냉전시대 첨예한 대립의 시기의 작가들이라서, 살얼음판같은 창작 환경에서 살아남은 작가들의 면면들을 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작가는 소련 문학의 권력자로 자리매김한 숄로호프인데, 사실 그의 대표작 <고요한 돈 강>은 사두고 아직도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을 살 때 우연히 만난 러시아 청년이 이 작가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드러냈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과연 국민 작가라는 사람에 대한 이른바 국뽕이 대단하구나 느낀 경험이 있었다. 고요한 돈 강 이후의 작품이 수준이하라는 평가와 작품표절의혹까지 여러가지 잡음이 있었다는데, 그럼에도 노벨문학상의 후광은 그의 문단 권력까지 무너뜨리진 못했나 보다 싶다.


-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대표작 상당수가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동자들이 읽을 수 없었던 비공식 문학입니다. 반면 미하일 숄로호프는 공식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습니다.- 18

- 숄로호프 다음으로 소련을 대표했던 작가는 소수민족 출신인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입니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출신의 작가로 국내에도 <하얀 배>, <백년보다 긴 하루> 등의 대표작이 번역돼 있습니다. 구소련은 다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소수민족 할당제 같은 게 있었어요. 문학 예술 분야에서도 러시아인만 득세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소수 민족 작가들을 배려했습니다. 한국계(고려인) 작가로는 아나톨리 김이 그런 경우 입니다. - 20

- 혁명은 도처에, 모듬 것에 존재한다. 그것은 무한하다. 마지막 숫자가 없듯이 마지막 혁명도 없다. 사회혁명은 무한수의 한나일 뿐이다. 혁명의 법칙은 사회 법칙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에너지 보존과 에너지 소멸(엔트로피)의 법칙이 그렇듯이 무한히 큰,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이다. 언젠가는 혁명법칙의 공식이 수립될 것이다. 1923, 자먀틴<문학, 혁명, 엔트로피 등에 관하여> - 65

- 작가로서 자신이 쓴 작품이 출간 금지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반혁명주의자, 부농의 앞잡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었으르 때 플라토노프는 스탈린과 고리키에게 “저는 계급의 적이 아닙니다. 노동자 계급은 제 고향이며, 제 미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함께할 것입니다”라고 해명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봐도 플라토노프만큼 사회주의 이념에 투철한 작가도 보기 드문데, 왜 이런 비판을 받게 되었을까요. 그건 플라토노프의 작품을 당시 소련의 공식 문학에서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이 소련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허용하는 수준보다 더 왼쪽으로 치우쳤던 것이죠. - 91

- 미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주의의 정치, 경제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그 위에 사회주의적 의식, 즉 상부구조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그 토대가 미처 형성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어요. 사회주의를 시작하긴 했는데, 그 토대가 형성되지 않아 사회주의 의식도 없고 영혼도 아직 없는 겁니다. 말하자면 <코틀로반>에서처럼 ‘전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집’을 짓는 데 아직 기초공사가 되지 않아 구덩이만 파놓은 격이랄까요. 사회주의적 정신, 사회주의적 영혼이랄 게 없으니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갖게 되는 정서가 슬픔과 연민입니다. 플라토노프는 바로 그 정서에 가장 깊이 천착한 작가죠. 자먀틴이나 파스테르나크 같은 작가들은 이행하는 과정에서 안 되겠다고 판단하고 돌아섰습니다. 반면 플라토노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지만 그 대신 슬픔과 우울, 혹은 연민의 정서에 천착하게 되었습니다. - 92

- 부재하는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작품이 <고요한 돈 강>입니다. 사실 숄로호프의 작품 목록에서도 거의 유일무이한 작품이죠. 그런데 숄로호프가 더는 이런 작품을 쓰지 않았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쓸 수 없었는지, 아니면 쓸 능력이 없었는지 모르지만 여러가지로 궁금한 작가입니다. - 208

-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 근대소설이라는 장르가 위대한 문학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사회적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작가들은 단지 글쟁이에 머물지 않고 사회 변혁의 사명을 짊어진 지식인의 책무를 수행했어요. 그런 시대가 끝났다는 게 근대 문학 종언론의 요지입니다. 그러니 아직도 작가들이 소설을 쓰는데 종언이라는 무슨 소리냐고 반박한다면 맥을 잘못 짚은 것이죠. 문학이 끝났다는 게 아니라 ‘위대한 문학’의 시대가 끝났다는 얘깁니다. 상품으로서 문학은 얼마든지 번창해나갈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위대한 책무를 떠맡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221

- 소련에서는 부조리 문학이라는 게 따로 필요 없습니다. 현실 자체가 부조리하니까 현실을 그대로 표현하면 바로 부조리 문학이 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 235

2023. jun.

#로쟈의러시아문학강의 #20세기고리키에서나보코프까지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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