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으로 - 버지니아 울프와 함께한 가장 지적인 여행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상승하는 추천을 받은 터라,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맘도 들었으나.
요즘같이 집안 생활이 권고되는 시기에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트래킹, 하이킹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산책기.

단편적인 에세이 모음같지만, 책 한권 전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유려한 산문이다.
재미의 측면에서는 조금 저평가할 수는 있겠으나 정말 잘 쓴 산문. 치밀하게 목차를 정하고 집필한걸까?라는 궁금증마저 생겼다.

- 나는 자석이 금속에 끌리듯 우즈강에 끌렸다. 여름 밤이나 겨울의 짧은 낮 시간에 그곳을 찾고 또 찾았다. 산책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몇 번의 계절을 보냈고, 그러는 사이 우즈강 나들이가 중요한 의식처럼 자리잡았다. 딱히 오래 있다 갈 마음 없이 서식스주의 한 귀퉁이로 한가로이 발길을 옮기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드리워진 미끼에 홀려 덥석 걸려든 것처럼 강으로 이끌렸다. 삶이 휘철거릴 때면 저절로. - 21

- <가톨릭 백과사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교단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지옥은 확실히 존재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를 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이 문제에서 사르트르는 ˝지옥은 타인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3세기 전에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지옥은 텅 비어있다. 모든 악마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타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 - 127

- 군도에 면한 작은 강의 범람 조차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가는 광대한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것도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본질에 닿는 이야기가 떠오르도록 마음을 휘젓는다. - 212

- 모든 증거가 아니라고 말해주는데도 인간은 균형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지만 세계의 역사가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시피 몰락과 회생이 우리의 숙명이다. - 308

- 인간에게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은 은총이다. 과거는 보이긴 하지만 어렴풋하고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은혜로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앞에 놓일 미래를 감지한다. 여러 시대의 유적과 비교하면 확실히 우리의 시간은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의 삶은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에 불꽃이 번지듯 삽시간에 지나갈 것이다. - 360

2020. a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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