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느티나무 - 강신재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31
강신재 지음, 김미현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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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느티나무가 강한 느낌으로 남았지만, 의외로 해방촌 가는길, 안개, 점액질 등이 좋았다.

강신재라는 작가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것. 해방도 겪은 노작가라는 점이 읽다보니 새삼 놀라웠다.

역시 여성이라는 소수성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게 한다라는 생각에 보탬이 되었다.

작가 스스로 대표작이라 꼽은 <파도>를 집중하기 어려워 듬성듬성 읽은 듯 하여,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 생각.

고졸한 느낌이 없지않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관통하는 여성 서사는 훌륭하다.

시절 탓을 해야하나 가난 탓을 해야하나. 언제나 맞는 이야기고, 울적한 감성이고, 진취적이랄까 자기 파괴적이랄까 인생을 개척하는 방향에 대해 어느 누가 섣불리 비난할 수 있을까 싶은 이야기들.

끝내 행복한 이가 없다는 점은 염세적인 작가의 시선일까.

- 성혜는 다방을 나오고부터 더욱 더 두 뺨이 달아오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격정이 가슴으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수치, 분격, 그리고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초려, 이런 것이 뒤섞이어 성혜의 가슴을 쾅쾅 짖눌렀다. - 안개, 29

- 자기는 이년 전 이 골목을 뛰어 내려가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움켜쥐고 오려고 생각했던 아무 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돌아오고 있다고 뉘우쳤다. 공기처럼 바람처럼, 무엇인가가 지나간 것이었다. 시간이 그저 흘러간 뿐이었다. - 해방촌 가는 길, 38

- 너그럽고 무던하고 낙천적이 구석이 싹 하니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는 고뇌의 실체를 보았는지 몰랐다. 그는 사람이 그것에게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깨달아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그의 몸과 그의 얼굴 표정은 ‘절망’인 것 같았다. 기애의 마음을 날카롭게 움켜 잡고 놓지 않는 것도 그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 해방촌 가는 길, 53

-어느 편일까?
나는 나의 슬픔과 괴롬과 있는 대로의 지혜를 일 점에 응집시켜 이 순간 그의 눈 속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알 고 싶은 것이다. 그의 눈 속에 과연 내가 무엇으로 비치는가? - 젊은 느티나무, 102

- 유선은 그래도 거기를 간다.
그곳에 가면 예전에 있던 물건들이 그대로 그 자리에 놓여 있고 사람들도 변함없이 살고들 있었다. 자기도 역시 아직 살고 있다는 느낌이 어렴풋이나마 들곤 하므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과 마저 모조리 떨어져 버린다면 불안을 이길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세계는 눈에 보이는 외형에서나마 제발 변함이 없어야 하였다. 가끔은 입밖에 내어서 지나간 일들을 말하는 것도 발 밑에 그래도 땅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겠기 까닭이었다.
유진은 무의미한 일을 일절 하지 않았다. 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 ‘의미있는 일’은 지나가 버린 것이다. 그것의 내용은 ‘망상’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제는 되살아 날 수 없는 것이었다. - 양관, 142

- “야 이놈아, 네 생각은 어떻데? 왜 죽었을 성 싶으냐. 그 사람들이.”
“아저씨가 말하셨지 않아요? 젊고 예쁘게들 생겼더라구. 그래서 죽은 거죠.”
“딴은 참, 복잡한 사정이 다 그 속에 있다. 옳다.” - 강물이 있는 풍경, 386

2018. 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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