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진의 초등학생 심리백과 - 초등학생 부모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신의진 지음 / 갤리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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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다들 알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식을 가르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먹이고 씻겨서 눕혀 놓으면 방긋방긋 웃으면서 눈 맞추던 아기일 때는 어서 자라서 혼자 앉기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고, 기어다니면서 일 저지르기 시작하면 온갖 서랍에 안 열리는 장치를 달면서 말만 알아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말씀 하셨다.
그래도 아기일 때가 편하고 좋은 거라고.
그 때는 다들 다 키워놓고 아기 엄마 듣기 좋은 소리한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는 그 순간 엄마들은 그것이 만고의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점이 많은지 모른다. 준비물도 많고, 숙제도 많은데 아이는 왜 그리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지 모른다.
학교 다녀오면 숙제나 준비물부터 챙겨야하는데, 아이는 잠들기 전이나 다음날 학교가기 전에야 이야기를 해서 바쁜 아침에 속을 확 뒤집어 놓기도 한다.
도대체, 우리 아이는 왜 이러는 걸까?
조금 더 자라서 성적에 신경 쓸 나이가 되면 그것도 엄마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남들하는 만큼은 미리 공부를 시킨 것 같은데, 다른 집 아이들은 공부도 피아노도 운동도 잘하고 영어는 어찌 그리 유창한지, 또 초등학생이 중학생 수학을 공부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제 학년 공부도 틀리는 것이 여러개이다.
도대체 뭐가 잘못일까?
그래도 그 정도면 다행인 셈이다.
성격에 문제가 있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학교를 가기 싫어하거나 하면, 행여나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라도 하시면 그날은 엄마들은 잠도 못 잔다.
 

이런 고민에 빠져들 때 누군가가 있어서 명쾌하게 아니면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언니에게 전화를 하기도 하고, 선생님과 상담도 해 보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답답함이 남는다.
그리고 내가 내 아이에게 해 줄 것이 무엇인가 알 수 없어서 힘들다.


이 책 <초등학생 심리 백과>는 바로 이런 고민이 생길 때 바로 곁에서 나를 이끌어 줄 보물같은 책이다.

연세대학교 소아정신과 교수가 쓴 책으로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들의 고민을 학년별로 총망라하여 자세히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있다.
게다가 저자 역시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자신의 경험을 들어서 설명해 주어서 친근함과 믿음을 함께 준다.

책의 구성은 '엄마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베스트31'로 시작한다.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들과 그 해답을 정리해 놓아서 큰 도움이 되었다.
평소에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특히 대부분의 질문들은 단지 초등학생에게만 국한된 질문은 아니어서 더욱 의미있었다.
그리고 학년별로 공부방법, 인성과 버릇, 친구 관계, 문제 행동, 형제 사이, 부모 역할, 성교육과 범죄 예방, 생활, 진로, 자아 정체감등 꼭 필요한 항목들을 정하여 궁금한 점을 꼭꼭 짚어준다.


가끔은 엄마들은 혹시나 내 아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아이가 욕을 하거나, 거짓말을 할 경우, 또는 다른 아이를 때릴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땐,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가기 전에 이 책을 한 번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쓸데없이 아이의 증세를 과장하여서 병적으로 몰고가는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왜 이제서야 이런 책이 나온 걸까?
내 아이는 벌써 5학년인데 말이다.
진작에 이런 책이 있었으면 더 현명한 엄마가 될 수 있었을텐데......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초등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이 저자가 <중학생 심리백과>나 <고등학생 심리백과>도 써 주셨으면 좋겠다.
내 아이를 키우는데 지침서가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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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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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도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다.
하늘과 잇닿은 다랑논 길을 허리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벼가 가득히 푸르른 논 둑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 할머니의 등 뒤로 푸른 하늘은  흰 구름을 가득 머금고 있다.


우리에겐 새로 나온 신기한 물건들이 많다.
들고다니는 텔레비전이 있는가 하면 길을 가르쳐 주는 기계도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올 수 록 헐고 낡은 물건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 많은 흑백 텔레비전들은 어디로 갔을까?
골드스타의 그 로타리식 컬러텔레비전은 동네에서 우리집이 젤 먼저 샀었는데......
삐삐는? 빨간 공중전화기랑 우체통은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자는 나와는 연배가 다른지라 저자와 추억을 공유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나는 나대로 나만의 잊혀진 것들의 세계로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그것들을 어찌 그리 잊고 살 수 있었는지......새삼스러운 그리움에 울컥 가슴이 아프다.


제 1부, <청보리 일렁이던 고향 풍경>에서는 '보리밭'이 나의 기억을 울린다.
나는 도시에서 자란지라 실제로 일렁이는 보리밭은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어느 학년엔가 우리반은 음악 선생님께 항상 칭찬을 들었다.
합창을 잘한다고 말이다. 그 때 음악 선생님께선 <보리밭>을 반주해주시면서 몇 번이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하셨다. 특별히 파트를 나눈 것도 아닌데, 어찌나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부르던지 나는 우리반 친구들이 참 자랑스러웠다. 다들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또 하나는 '장독대'이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도 저자의 집처럼 장독대가 있었다. 마당의 한 켠에 시멘트로 단을 세워서 만든 그 장독대를 어머니는 매일 닦으셨는데, 이 책에서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묻어났다.

제 2부, <연탄.등잔. 그 따뜻한 기억>에서는 몇 가지 공통된 기억들이 있었다.
'연탄'이 그 하나다.
연탄 가는 일은 할 줄 몰랐지만, 그게 얼마나 신경쓰이고 어려운 일인지는 기억이 난다. 한 겨울 주무시다가도 일어나서 연탄을 갈던 내 어머니가 기억이 난다. 그것들의 구멍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말이다. 그 연탄에 밥도 하고 국도 끓였지만,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석쇠 올리고 굽던 돼지고기였다. 양념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살짝 타들어가던 그 냄새를 어떻게 잊을까? 엄마는 양념은 가능하지만, 이젠 연탄이 없어서 그 맛은 어렵다고 하신다.
'손재봉틀'과 '괘종시계'도 우리집에 있었다.
넷째 시간마다 온 교실에 퍼지던 도시락들이 익던 냄새도 기억이 난다.
그 도시락을 아래위로 흔들면 비빔밥이 되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시락이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더 이상 난로에 올릴 수가 없었다.
급식을 먹는 요즘 아이들은 그 맛을 모르겠지?

제 4부의 <완행열차와 간이역의 추억>은 특히나 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한 때는 비둘기호라 불리던 완행열차를 타고 어딘가에 다녀온 기억, 교실마다 풍금이 없어서 음악 시간이면 옆 교실에서 빌려오던 기억도 있다. 남자 선생님들은 풍금을 못 타는 분도 게셨는데......동네 구멍가게의 약간 바보스럽던 그 아이는 어디서 뭘하고 살까? 냄새 나던 극장에서 본 <사운드 오브 뮤직>도 내게는 선연한 기억들인데, 이제는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라고 한다.


오래 전 친구들의 이름이 떠 오르고, 담임선생님의 모습도 그립다.
어느 새 나도 그리운 것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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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인열전 - 파격과 열정이 살아 숨쉬는 조선의 뒷골목 히스토리
이수광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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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은 기실은 이긴 자의 기록인 경우가 많다.
대개들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스스로를 위대하게 치장하고자 작은 사실은 크게 확대하고, 불리한 일들은 교묘하게 감추기도 한다.
고려의 역사가 그러했고, 조선의 역사가 그러했으며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현실 역시도 권력을 가진 자의 시각을 기록한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란 기록하는 이의 양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역사를 기록한다면 그것은 역사로서의 가치를 이미 상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세의 우리가 역사를 바라볼 때에 무엇으로 그 진위를 가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를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 가끔은 역사를 기록한 책들을 바라볼 때에 진실한 느낌이 들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양심을 가진 훌륭한 사람들의 기록이 남아있어서 우리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오늘의 우리는 조선의 뒷골목을 그려보기도 하고 깊숙한 규방을 상상할 수 있으며 지엄하고 살벌한 궁중의 애틋한 사랑도 알 수 있다.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선조들은 양반과 왕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가장 가깝고 많은 기록이 남아있는 조선 시대의 이야기들도 대부분은 왕의 치적이나  학문 높은 유학자들의 논쟁이다.

요즘들어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들이 등장하여 조선의 역사를 사랑 이야기나 살인사건 이야기로 엮어보기도 하고 경제를 연구한 사람들로만 책을 짓기도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보는 것은 참으로 훌륭하고 값어치있는 일이지만, 그 역시도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사실들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여 풀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잡인열전>은 참으로 의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흔히들 사람이라고 부르지도 않던 그러나, 조선 백성의 대부분이던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실은 그들의 삶의 한 단면은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삶을 그야말로 진솔하게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야말로 조선의 근간을 이루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의 서문에서 밝히듯이 잡인에 대한 관심은 민중에 대한 관심이다.

 

잡인은 잡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조선시대 뒷골목이나 저잣거리에서 파격적이고 열정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 작가의 말  

 

이 책에서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 조선 최고의 잡인들과 천하 제일의 잡인들을 다루고 있다.
관가의 창고지기로 있으면서 근동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던 장복선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책 읽어주는 남자, 왈자, 노름꾼, 심지어 대리 시험꾼이나 사기꾼에 파계승까지 조선시대 이름을 날리던 잡인들의 이야기를 사료를 근거로 재미나게 전달한다. 2부에서는 거문고의 명장이던 이원영에서부터 각설이, 필공, 익살꾼, 짝패, 수전노, 풍류객, 장사, 구변쟁이, 여검객까지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천하제일의 광인화가로 치는 오원 장승업의 이야기는 이미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 이야기여서 영화의 장면을 그리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역사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근근히 살아가는 오늘이 모여서 긴 역사의 한 장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역사의 한 장을 이루는 사람으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하루인 오늘을 성실하 살아야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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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미래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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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쇼트 시리즈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가진 호시 신이치의 작품은 어쩌면 중독성이 있다.
이 책 <한 줌의 미래>까지 총 5권의 쇼트쇼트 시리즈를 읽었지만, 각 권마다 약 30~40개의 작품들이 실려있으니 못 읽어도 150여편을 읽었다.
물론 읽다보면 패턴이 비슷하거나 소재가 일치하고, 때로는 그 반전까지도 거의 비슷한 작품도 있다.
그래서 얼핏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그의 플라시보 시리즈를 모두 읽는다면 그의 작품의 패턴을 연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책이 등장했을 때 쉽게 집어들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그의 책을 손에 들면 바로 읽힌다.
복잡한 구성이나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각 인물들에게 특별한 개성과 인격을 부여하여 독자들이 등장 인물에 특별한 감정을 갖도록 하는 일은 없다.
그저 간략한 이야기의 흐름이 존재할 뿐이다.
덮고나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건조하고 평범한 인물들이 펼쳐가는 지극히 수동적인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엔 많다.


이 책 <한 줌의 미래>에는 동명의 소설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대체로 소설집이라면 그 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라할 만한 작품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줌의 미래>라는 작품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었다.
이것 역시 어떤 '의도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인다.


<성숙>이라는 작품이 있다. 세 명의 도둑 A,B,C가 있었다.
그들은 어떤 도둑질의 공범이었다.
밖에는 경찰이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고, 그들은 한적한 집에서 경찰이 추적을 포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이 나가서 경계를 하고 나머지 둘이 가방을 지키는 형태로 지내던 중 A는 C를 없애고 돈을 B와 둘만 나눠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둘은 그 생각을 나눈다.
이 모의는 경계를 하러나간 한 명을 빼고 나머지 둘이서 계속해서 진행한다.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생각을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아무도 믿지를 못하고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그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들은 끝내 그 계획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이 자신을 성숙시켰다고 표현한다.


다른 소설에 비해서 그 길이가 퍽 긴편이었다.
각 등장인물 A,B,C의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인간들의 솔직한 내면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대한 지나친 탐욕은 함께 어려움을 겪은 - 그것이 비록 도둑질일지라도- 동료를 무참히 버릴 생각을 갖게 하고, 끊임없는 의심으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말미의 해설에 호시 신이치 소설의 특성이 소설의 단순화라고 한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N씨는 직업도 그 이름도 성격도 별로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작중 세계의 시공간도 한정하지 않아서 우리는 주인공이 사는 시대와 장소를 알기 어렵다.
등장인물과 배경의 '애매성'이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언제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1950년대에 이 쇼트쇼트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아직도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은 그 '애매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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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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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부터 그림은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고 게다가 그림 솜씨마저 지독히 없었던 나는 학창 시절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 체육 다음으로 미술 시간이었다.
어쩌면 사생 대회에 나가서 여러 번 미역국을 먹은 아픔때문에 그림을 무서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검정색 앞치마를 두르고 청바지에 물감을 묻힌 채 붓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그림에 대한 조예는 그저 미술 교과서 안에 있었다.

아마도 그 시절 나에게 추상화를 거꾸로 세워 놓고 보여줘도 거기서 어떤 의미나 형체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들어서야 그림이라는 것이 주는 평화로움을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고요한 그림을 바라보게 되면 그저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심오한 그림의 세계는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화가에 얽힌 이야기라든가 미술사의 숨겨진 이야기에 이제서야 흥미를 느낀다.
이 책 <램브란트의 유령>을 읽고 싶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나고는 아마도 세계의 명화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내용이거나, 아니면 램브란트의 마지막 그림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첫장을 펴고 읽으면서 어딘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상한 것은 다만 나뿐은 아닌 듯하다.
그야말로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핀의 아침 출근길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초록빛 눈동자에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 피오나는 여러 개의 학위를 가진 미술사계의 재원이다. 전작에서 다양한 모험을 거친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지식을 맘껏 펼치길 갈망하지만, 속물인 그녀의 상사는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리고 그날 아침 가슴 설레는 미남 필그람 공작을 만나고 다음날은 자신이 부하르트라는 사람의 유산을 상속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매력적인 빌리와 함께 세 가지 유산을 정해진 기간 안에 찾아내어야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 하나의 유산이 바로 램브란트의 그림이다. 그 안에는 비밀이 있었고, 핀의 생부인 부하르트는 핀이 그것을 단서로 자신이 갔던 길을 따라오도록 힌트를 놓는다.
물론 용감하고 지적인 핀과 빌리는 그 길을 따라간다.
그들은 살해와 폭발의 위협으로부터 달아나고, 남중국해의 해적들과도 엮이면서 부하르트의 흔적들을 찾아내고 마침내 그 세가지 유산의 비밀을 밝혀낸다.


이 소설은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들이 가득한 지금의 우리에게 다른 의미의 즐거움을 준다.
영국과 네덜란드와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배경과 미술과 역사, 문학과 바다의 삶에 대한 세밀하고 진지한 묘사와 작가의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은 내가 알고있는 것들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호화로운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나, 무인도에서의 핀만의 '캐스트 어웨이'도 <로빈슨 크루소>를 좋아하는 내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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