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미래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쇼트쇼트 시리즈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가진 호시 신이치의 작품은 어쩌면 중독성이 있다.
이 책 <한 줌의 미래>까지 총 5권의 쇼트쇼트 시리즈를 읽었지만, 각 권마다 약 30~40개의 작품들이 실려있으니 못 읽어도 150여편을 읽었다.
물론 읽다보면 패턴이 비슷하거나 소재가 일치하고, 때로는 그 반전까지도 거의 비슷한 작품도 있다.
그래서 얼핏 지루한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그의 플라시보 시리즈를 모두 읽는다면 그의 작품의 패턴을 연구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새로운 책이 등장했을 때 쉽게 집어들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그의 책을 손에 들면 바로 읽힌다.
복잡한 구성이나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거나, 각 인물들에게 특별한 개성과 인격을 부여하여 독자들이 등장 인물에 특별한 감정을 갖도록 하는 일은 없다.
그저 간략한 이야기의 흐름이 존재할 뿐이다.
덮고나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건조하고 평범한 인물들이 펼쳐가는 지극히 수동적인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엔 많다.


이 책 <한 줌의 미래>에는 동명의 소설이 없는 것이 특이하다.
대체로 소설집이라면 그 책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라할 만한 작품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쓰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줌의 미래>라는 작품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었다.
이것 역시 어떤 '의도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인다.


<성숙>이라는 작품이 있다. 세 명의 도둑 A,B,C가 있었다.
그들은 어떤 도둑질의 공범이었다.
밖에는 경찰이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고, 그들은 한적한 집에서 경찰이 추적을 포기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이 나가서 경계를 하고 나머지 둘이 가방을 지키는 형태로 지내던 중 A는 C를 없애고 돈을 B와 둘만 나눠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리고 둘은 그 생각을 나눈다.
이 모의는 경계를 하러나간 한 명을 빼고 나머지 둘이서 계속해서 진행한다.
결국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는 생각을 다른 한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아무도 믿지를 못하고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그 서로에 대한 불신 때문에 그들은 끝내 그 계획을 실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이 자신을 성숙시켰다고 표현한다.


다른 소설에 비해서 그 길이가 퍽 긴편이었다.
각 등장인물 A,B,C의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인간들의 솔직한 내면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대한 지나친 탐욕은 함께 어려움을 겪은 - 그것이 비록 도둑질일지라도- 동료를 무참히 버릴 생각을 갖게 하고, 끊임없는 의심으로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말미의 해설에 호시 신이치 소설의 특성이 소설의 단순화라고 한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N씨는 직업도 그 이름도 성격도 별로 알려주지 않는다. 또한 작중 세계의 시공간도 한정하지 않아서 우리는 주인공이 사는 시대와 장소를 알기 어렵다.
등장인물과 배경의 '애매성'이 그가 추구하는 작품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언제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1950년대에 이 쇼트쇼트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아직도 생명력을 얻고 있는 것은 그 '애매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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