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 그때가 더 행복했네 ㅣ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1
이호준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표지부터도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다.
하늘과 잇닿은 다랑논 길을 허리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벼가 가득히 푸르른 논 둑에는 옥수수가 자라고 , 할머니의 등 뒤로 푸른 하늘은 흰 구름을 가득 머금고 있다.
우리에겐 새로 나온 신기한 물건들이 많다.
들고다니는 텔레비전이 있는가 하면 길을 가르쳐 주는 기계도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올 수 록 헐고 낡은 물건들은 다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 많은 흑백 텔레비전들은 어디로 갔을까?
골드스타의 그 로타리식 컬러텔레비전은 동네에서 우리집이 젤 먼저 샀었는데......
삐삐는? 빨간 공중전화기랑 우체통은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자는 나와는 연배가 다른지라 저자와 추억을 공유하는 부분은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나는 나대로 나만의 잊혀진 것들의 세계로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그것들을 어찌 그리 잊고 살 수 있었는지......새삼스러운 그리움에 울컥 가슴이 아프다.
제 1부, <청보리 일렁이던 고향 풍경>에서는 '보리밭'이 나의 기억을 울린다.
나는 도시에서 자란지라 실제로 일렁이는 보리밭은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어느 학년엔가 우리반은 음악 선생님께 항상 칭찬을 들었다.
합창을 잘한다고 말이다. 그 때 음악 선생님께선 <보리밭>을 반주해주시면서 몇 번이고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하셨다. 특별히 파트를 나눈 것도 아닌데, 어찌나 아름다운 화음으로 노래를 부르던지 나는 우리반 친구들이 참 자랑스러웠다. 다들 어디서 뭘하고 사는지......
또 하나는 '장독대'이다. 어린 시절 우리집에도 저자의 집처럼 장독대가 있었다. 마당의 한 켠에 시멘트로 단을 세워서 만든 그 장독대를 어머니는 매일 닦으셨는데, 이 책에서도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묻어났다.
제 2부, <연탄.등잔. 그 따뜻한 기억>에서는 몇 가지 공통된 기억들이 있었다.
'연탄'이 그 하나다.
연탄 가는 일은 할 줄 몰랐지만, 그게 얼마나 신경쓰이고 어려운 일인지는 기억이 난다. 한 겨울 주무시다가도 일어나서 연탄을 갈던 내 어머니가 기억이 난다. 그것들의 구멍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말이다. 그 연탄에 밥도 하고 국도 끓였지만,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석쇠 올리고 굽던 돼지고기였다. 양념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살짝 타들어가던 그 냄새를 어떻게 잊을까? 엄마는 양념은 가능하지만, 이젠 연탄이 없어서 그 맛은 어렵다고 하신다.
'손재봉틀'과 '괘종시계'도 우리집에 있었다.
넷째 시간마다 온 교실에 퍼지던 도시락들이 익던 냄새도 기억이 난다.
그 도시락을 아래위로 흔들면 비빔밥이 되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시락이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더 이상 난로에 올릴 수가 없었다.
급식을 먹는 요즘 아이들은 그 맛을 모르겠지?
제 4부의 <완행열차와 간이역의 추억>은 특히나 나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한 때는 비둘기호라 불리던 완행열차를 타고 어딘가에 다녀온 기억, 교실마다 풍금이 없어서 음악 시간이면 옆 교실에서 빌려오던 기억도 있다. 남자 선생님들은 풍금을 못 타는 분도 게셨는데......동네 구멍가게의 약간 바보스럽던 그 아이는 어디서 뭘하고 살까? 냄새 나던 극장에서 본 <사운드 오브 뮤직>도 내게는 선연한 기억들인데, 이제는 너무나 오래전 이야기라고 한다.
오래 전 친구들의 이름이 떠 오르고, 담임선생님의 모습도 그립다.
어느 새 나도 그리운 것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