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부터 그림은 나의 관심 분야가 아니었고 게다가 그림 솜씨마저 지독히 없었던 나는 학창 시절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 체육 다음으로 미술 시간이었다.
어쩌면 사생 대회에 나가서 여러 번 미역국을 먹은 아픔때문에 그림을 무서워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검정색 앞치마를 두르고 청바지에 물감을 묻힌 채 붓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그림에 대한 조예는 그저 미술 교과서 안에 있었다.

아마도 그 시절 나에게 추상화를 거꾸로 세워 놓고 보여줘도 거기서 어떤 의미나 형체를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던 내가 나이가 들어서야 그림이라는 것이 주는 평화로움을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고요한 그림을 바라보게 되면 그저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심오한 그림의 세계는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화가에 얽힌 이야기라든가 미술사의 숨겨진 이야기에 이제서야 흥미를 느낀다.
이 책 <램브란트의 유령>을 읽고 싶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만나고는 아마도 세계의 명화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가는 내용이거나, 아니면 램브란트의 마지막 그림에 얽힌 사연을 추적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첫장을 펴고 읽으면서 어딘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연상한 것은 다만 나뿐은 아닌 듯하다.
그야말로 똑똑하고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 핀의 아침 출근길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초록빛 눈동자에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 피오나는 여러 개의 학위를 가진 미술사계의 재원이다. 전작에서 다양한 모험을 거친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지식을 맘껏 펼치길 갈망하지만, 속물인 그녀의 상사는 그럴 생각도 능력도 없다. 그리고 그날 아침 가슴 설레는 미남 필그람 공작을 만나고 다음날은 자신이 부하르트라는 사람의 유산을 상속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매력적인 빌리와 함께 세 가지 유산을 정해진 기간 안에 찾아내어야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 하나의 유산이 바로 램브란트의 그림이다. 그 안에는 비밀이 있었고, 핀의 생부인 부하르트는 핀이 그것을 단서로 자신이 갔던 길을 따라오도록 힌트를 놓는다.
물론 용감하고 지적인 핀과 빌리는 그 길을 따라간다.
그들은 살해와 폭발의 위협으로부터 달아나고, 남중국해의 해적들과도 엮이면서 부하르트의 흔적들을 찾아내고 마침내 그 세가지 유산의 비밀을 밝혀낸다.


이 소설은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들이 가득한 지금의 우리에게 다른 의미의 즐거움을 준다.
영국과 네덜란드와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배경과 미술과 역사, 문학과 바다의 삶에 대한 세밀하고 진지한 묘사와 작가의 방대하고 전문적인 지식은 내가 알고있는 것들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된다.
호화로운 호텔에서의 아침 식사나, 무인도에서의 핀만의 '캐스트 어웨이'도 <로빈슨 크루소>를 좋아하는 내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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