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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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광고를 보았을 때, 대강의 내용은 짐작하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내용의 사랑 얘기는 아닐 것이라는 점 말이다.

제목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내 남자"라는 표현에는 어딘지 끈끈하고 이기적이고 치정스러운  냄새가 나지 않는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사람이라는 게 허약한 존재인데, 타인을 자신의 소유로 삼는다는 것은 이기심과 집착의 끝을 보이는 표현인 것이다.

읽고 나서 아니, 읽는 내내 마치 내 몸을 무엇인가 끈적한 것이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 읽고 난 지금도 어서 이 책에서 벗어나고 싶다.

한 여름 밤의 답답한 공기, 흐트러지고 땀으로 끈적이는 방, 그 안에 떠도는 죄의 냄새.

 

전체적인 느낌은 '찝찝함'이라는 표현이 어떨까 한다.

이해하기도 힘들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어리석은 남자와 여자의 비뚤어진 사연을 끊임없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독자에게 강요한다.

이 소설의 처음은 가장 최근의 일로 시작되어서 점차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러명의 화자가 번갈아 서술한다.

처음엔 주인공 하나가 결혼을 하면서 심정을 토로한다. 하나는 아빠와의 관계에 지독한 혐오감을 품고 있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그저 평범한 삶, 진짜 가족의 삶을 얻고자 결혼을 한다. 다음엔 3년 전 요시로의 시선에서  하나를 처음 만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요시로는 밝고 인기가 좋은 사람이다. 어느 날 우연히 아무런 존재감을 못 느끼는 하나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점차 끌린다. 다음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 준고의 시선에서 하나와의 관계를 본다. 계속해서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고 준고의 애인이던 고마치의 시각, 어린 하나의 시각들로 이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전체를 조망하게 된다.

하나는 준고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준고 역시 하나가 원하는 대로 한다. 가족이라서.

준고는 하나를 '피의 인형'이라고 부른다. 이 둘은 부녀 사이다.

어린 하나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소속되고 싶은 외로움에 준고를 받아들이고 매달리지만, 어른이 된 후로 자신의 삶을 감당하기 어려워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방식은 너무 긴 세월동안 그들을 묶고 파괴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는 그것을 '사랑'이고 '가족'이라고 주장한다.

처음엔 의붓부녀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작가는 이런 모티브를 잡은 의도를 '가족이기주의의 끝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지만, 이건 잘못된 가족 이기주의도 아니고 비 사회적인 인간들의 미친 삶이라고 밖에는 표현하기가 힘들다.

 

나는 아무래도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이런 소재는 일본이라서 가능한 걸까?

일본에서는 이 소설의 상까지 탔다니, 문화의 현격한 차이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을 착안했다고 한다.

구성만 보지 말고 우리 나라 소설들의 다른 면들도 좀 보았으면 어떨까.

어서 다른 책을 읽어서 이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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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지나간다
지셴린 지음, 허유영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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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말 중에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라는 말이 있다.

한없이 행복하고 기쁜 일이 있는 중에도, 너무나 슬퍼서 당장 내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중에도 "이것 또한 다 지나가리라." 이 한마디면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곤 한다.

세상의 어느 일이 영원을 기약할 수 있을까.

사랑도 부귀도 명예도 다 스치는 바람같은 것이라는 것을 조금은 깨닫게 된 것은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부터이다.

젊은 나이 때는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융통성 없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라든가  사소한 잘못  정도는 서로 알고도 넘어가 주는 것들에 분개하곤 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나이든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 시간을 살아 온 사람들의 말은 그냥 말이 아닌 지혜였다.

세상의 잣대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그저 나이 먹었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깨달음의 시기가 젊고 어린 사람들의 경망스런 행동이나 이기적인 모습들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시기와 일치한 것은 우연일까?

 

이 책 <다 지나간다>에는 중국의 국보인 지셰린선생의 주옥같은 가르침이 한 가득이다.

긴 세월동안 갖가지 삶의 고초를 겪었지만, 지금은 중국 전체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선생은 아흔의 나이다.

긴 삶을 영위하는 동안 아내의 죽음, 사회에서의 내침, 외국에서의 전쟁등을 겪으면서 인생의 격랑을 헤치고 살아 온 학자의 글이니 두말이 필요할까?

욕심을 내지 않고 사는 것, 자신의 맡은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 친구를 사귐에 배반이 없는 것등이 선생이 긴 삶을 사는 동안 지켜온 원칙으로 보여진다.

선생은 이 책을 네 개의 장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는 나이 든 사람의 삶의 자세에 대하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나이들어서 좋은 점, 나이 든 사람의 태도등을 이야기하면서 사회의 어른으로서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설파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판단과 총기가 흐려지고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히려 선생은 나이 든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려하신 듯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앞의 두 장은 도연명의 시에서 그 제목을 차용했다.

그 시가 이 책의 내용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적어본다.

 

"커다란 조화의 물결 속에서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 도연명

 

"기뻐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게나." 라는 시구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와 상통한다.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모습,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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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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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광고를 보았을 때, 조금 씁쓸했다.

 

안 보이던 영화배우들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잡지에 게재될 때 우리는 그들이 새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안다. 영화도 홍보를 하는 것이라는 것, 그 홍보의 일환으로 배우들의 친근한 모습이 아주 좋은 홍보물이라는 것을 이젠 다들 안다. 그러나, 처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지 나는 그것들을 순전한 우연으로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혼자서만 가까워진 그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극장을 찾았던 나는 그 홍보가 목적을 정확히 달성한 예였던 것이다.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다니, 얼마나 괘씸하던지......

최근 들어서는 작가들이 심심찮게 지면에 화면에 등장을 한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재미요, 즐거움이었다.

인터넷 포털 싸이트나 까페 등지에서 작가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것 역시 홍보의 일환이겠지......' 하는 마음에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나마 먼 별나라 사람으로만 생각하던 분들을 가까이 느끼니 좋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드라마 작가의 산문이 나왔다. 그것도 바로 최근까지도 방영하던 드라마의 유명 작가이다. 드라마 좀 보았다는 사람치고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주변에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꼭 챙겨 본다는 매니아층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내가 씁쓸한 이유는 그것이다.

이젠 드라마까지도 이렇게 광고를 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책을 광고하기 위해서 드라마 방영 기간과 겹치게 출간을 한 것인가.

내가 느낀 노희경 작가는 -그녀의 글에서 말마따나- 얄팍하게 시류를 타는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단순한 우연인가?

글을 읽기도 전에 이런 생각들로 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은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글은 글로써 보아야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끄적거린 산문을 묶었을 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역시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의 글은 달랐다. 유려한 문체로 솔직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글들은 지금 사랑을 멈춘 그 많은 죄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나이는 마흔을 넘겼다. 이젠 사랑이란 것이 어린애 장난처럼도 보이고 때로는 배부른 사람들의 유희처럼도 보일 법한데, 그녀는 사랑을 놓지 않는다. 그 끈은 무엇일까?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일에 지치고 싶지 않다. 다른 이를 위하여 나를 기꺼이 내어 놓고 처분을 기다리는 일도 억울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시간은 화살보다 더 빠르게 나를 스쳐가고, 나의 손이 닿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들이 중국 인구보다 더 많다. 물론 작가가 사랑하라 말하는 것은 연애만은 아님을 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한 가족을 아끼고, 어린이를 아끼고 세상을 아끼라는 메시지임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런 사랑에 연연한다.

이젠 사랑이 지치고 억울해서 싫다 말하면서도 작가의 큰 사랑 안에서 작은 사랑만 찾는 나는 또 뭘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은 신의 잘못이다. "

                      본문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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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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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3일 동안 내내 나는 안나와 케이트. 사라, 제시, 브라이언 그리고 켐벨과 줄리아에 빠져서 지냈다.

그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들이 울면 나도 슬퍼졌다.

희귀 백혈병에 걸린 딸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사라와 브라이언.

동생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서 늘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제시.

제시는 죽어가는 동생을 두고 사는 마음을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시는 불을 지른다.

언니에게 기증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맞춤아기인 안나.

태어나자마자부터 제대혈, 림프구, 골수 등 언니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어야 했다.

그리고 이젠 언니에게 신장이 필요하다.

안나는 하키를 사랑하지만, 언니에게 언제 무엇이 필요할 지 몰라서 하키 캠프에 가지 못했다.

항상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케이트.

죽어가는 딸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다른 딸,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고 살아가는 사라와 브라이언.

그러나, 안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안나가 고용한 냉혈한 변호사 켐벨과 안나의 법정 후견인 줄리아.

이들에겐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깊은 상처가 있다.

 

이 소설은 이들 등장인물의 시각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고작 열흘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일이지만 그들 모두의 생각을 듣다보면 마치 한 세기가 지난듯이 커다란 역사 위에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다.

안나는 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안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가족이 겪는 고통은 그 비슷한 것이라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픈 자식을 두어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느 누구라도 이 소설 앞에서 논리적이거나 윤리적이거나 법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부모는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우리 옛말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자식의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할머니를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라도 내 딸이 백혈병이고 골수기증자를 찾을 수 없다면 그에 맞는 아기를 낳고 싶었을 것이다. 그 기증이 아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아픈 자식 앞에서 부모는 이성을 잃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경우에 논리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는 엄마인 사라에게 반감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말아야할 것은 안나 역시 그녀의 자식이라는 점이다.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다면, 세상 어느 부모도 자식의 몸에 주사를 찌르고 싶지는 않다. 내 신장을 떼어줄지언정 딸 아이에게 그런 고통을 강요할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픈 자식이 있는 경우 부모들은 그 아픈 아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건강한 자매나 형제는 스스로의 건강에 죄의식을 느끼고 움츠러든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만약에 내가 사라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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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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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그림에 나오는 물고기의 이름은 '목어'다.

처음엔 이 책의 페이지마다 유유히 헤엄치는 민물고기들 중의 하나인 줄 알고,

"아, 절에 있는 그 목어가 실제 있는 고기로구나!' 나름 깨달음을 얻기까지 하였으나 나의 무식의 소치였다.

자세히 보니 진짜 그 목어가 맞았다.

상상의 물고기를 실제 물고기들 속에 천연덕스럽게 섞어 놓는 그 능청스러움이 바로 이외수스러움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성급한 판단일까?

 

요즘 어린이들 중에는 이외수님을 연예인인줄 아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텔레비전 쇼에, 광고에 출연해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종횡무진하니 그럴 법도 하다.

그러나, 우리 또래치고 젊은 시절 <들개>를 읽지 아니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긴 머리카락과 깡마른 외모는 그를 기인이라고까지 생각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보통 우리네와는 거리가 먼 예술 그 자체를 주체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이야기들이나, 결정적으로 이 책 <하악하악>을 읽으면서 나의 판단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나의 그 잘못된 판단은 '소통의 부재'였는지 모른다. 그동안 우리는 작가를 작품을 통해서만 만났지, 생생한 육성으로 그를 판단할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작가는 늘 인상을 쓰고 소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며 우주와 인간사의 오묘한 진리를 탐구하는 별세계사람이라는 오해를 했었나 보다.

그러나, 이제 그렇듯 가까이에서 육성을 듣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든다.

"아, 저이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그의 작품들까지 새롭게 보인다.

이래서 작가와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또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이 책 <하악하악>은 내게 참으로 신선했다.

사회에 대한 걱정과 작가로서의 고단함과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낸 이 책의 글들이 나에겐 너무나 편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동네 조무래기들과 만화 영화를 보는 일, 인터넷에 올라온 글에 마음을 상한 일들을 읽으며 나는 끼득거렸다. 인간 이외수가 너무 가까워서.

 

"그대 신분이 낮음을 한탄치 말라. 이 세상 모든 실개천들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어찌 저토록 넓고 깊은 바다가 되어 만 생명을 품안에 거둘 수가 있으랴."

                                    본문 43쪽

 

물고기는 없는 페이지였으나, 내겐 바다같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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