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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의 광고를 보았을 때, 조금 씁쓸했다.
안 보이던 영화배우들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잡지에 게재될 때 우리는 그들이 새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안다. 영화도 홍보를 하는 것이라는 것, 그 홍보의 일환으로 배우들의 친근한 모습이 아주 좋은 홍보물이라는 것을 이젠 다들 안다. 그러나, 처음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지 나는 그것들을 순전한 우연으로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래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혼자서만 가까워진 그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보고 싶어져서 극장을 찾았던 나는 그 홍보가 목적을 정확히 달성한 예였던 것이다.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다니, 얼마나 괘씸하던지......
최근 들어서는 작가들이 심심찮게 지면에 화면에 등장을 한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박장대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신선한 재미요, 즐거움이었다.
인터넷 포털 싸이트나 까페 등지에서 작가들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것 역시 홍보의 일환이겠지......' 하는 마음에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렇게나마 먼 별나라 사람으로만 생각하던 분들을 가까이 느끼니 좋기도 했다.
그런데, 이젠 드라마 작가의 산문이 나왔다. 그것도 바로 최근까지도 방영하던 드라마의 유명 작가이다. 드라마 좀 보았다는 사람치고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주변에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꼭 챙겨 본다는 매니아층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내가 씁쓸한 이유는 그것이다.
이젠 드라마까지도 이렇게 광고를 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책을 광고하기 위해서 드라마 방영 기간과 겹치게 출간을 한 것인가.
내가 느낀 노희경 작가는 -그녀의 글에서 말마따나- 얄팍하게 시류를 타는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단순한 우연인가?
글을 읽기도 전에 이런 생각들로 글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 것은 솔직히 고백한다.
그러나 글은 글로써 보아야한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끄적거린 산문을 묶었을 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역시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의 글은 달랐다. 유려한 문체로 솔직담백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이 글들은 지금 사랑을 멈춘 그 많은 죄인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작가의 나이는 마흔을 넘겼다. 이젠 사랑이란 것이 어린애 장난처럼도 보이고 때로는 배부른 사람들의 유희처럼도 보일 법한데, 그녀는 사랑을 놓지 않는다. 그 끈은 무엇일까?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일에 지치고 싶지 않다. 다른 이를 위하여 나를 기꺼이 내어 놓고 처분을 기다리는 일도 억울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시간은 화살보다 더 빠르게 나를 스쳐가고, 나의 손이 닿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일들이 중국 인구보다 더 많다. 물론 작가가 사랑하라 말하는 것은 연애만은 아님을 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한 가족을 아끼고, 어린이를 아끼고 세상을 아끼라는 메시지임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런 사랑에 연연한다.
이젠 사랑이 지치고 억울해서 싫다 말하면서도 작가의 큰 사랑 안에서 작은 사랑만 찾는 나는 또 뭘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은 신의 잘못이다. "
본문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