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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다.
3일 동안 내내 나는 안나와 케이트. 사라, 제시, 브라이언 그리고 켐벨과 줄리아에 빠져서 지냈다.
그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들이 울면 나도 슬퍼졌다.
희귀 백혈병에 걸린 딸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사라와 브라이언.
동생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해서 늘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제시.
제시는 죽어가는 동생을 두고 사는 마음을 아무에게도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시는 불을 지른다.
언니에게 기증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맞춤아기인 안나.
태어나자마자부터 제대혈, 림프구, 골수 등 언니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어야 했다.
그리고 이젠 언니에게 신장이 필요하다.
안나는 하키를 사랑하지만, 언니에게 언제 무엇이 필요할 지 몰라서 하키 캠프에 가지 못했다.
항상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케이트.
죽어가는 딸과 그 아이를 살릴 수 있는 다른 딸, 말썽꾸러기 아들을 두고 살아가는 사라와 브라이언.
그러나, 안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안나가 고용한 냉혈한 변호사 켐벨과 안나의 법정 후견인 줄리아.
이들에겐 서로에게 말하지 못한 깊은 상처가 있다.
이 소설은 이들 등장인물의 시각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고작 열흘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일이지만 그들 모두의 생각을 듣다보면 마치 한 세기가 지난듯이 커다란 역사 위에서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다.
안나는 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안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들 가족이 겪는 고통은 그 비슷한 것이라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픈 자식을 두어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 어느 누구라도 이 소설 앞에서 논리적이거나 윤리적이거나 법률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것이다.
부모는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우리 옛말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자식의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할머니를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라도 내 딸이 백혈병이고 골수기증자를 찾을 수 없다면 그에 맞는 아기를 낳고 싶었을 것이다. 그 기증이 아기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아픈 자식 앞에서 부모는 이성을 잃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 경우에 논리적으로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는 엄마인 사라에게 반감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말아야할 것은 안나 역시 그녀의 자식이라는 점이다.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다면, 세상 어느 부모도 자식의 몸에 주사를 찌르고 싶지는 않다. 내 신장을 떼어줄지언정 딸 아이에게 그런 고통을 강요할 부모는 없다.
그러나, 아픈 자식이 있는 경우 부모들은 그 아픈 아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마련이다. 건강한 자매나 형제는 스스로의 건강에 죄의식을 느끼고 움츠러든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만약에 내가 사라라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