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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 내 인생의 제1조, 제1절, 제1항은 이거다
클라우디아 프렌첼 지음, 조경수 옮김 / 이레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뜻한 방에 드러누워(온돌방이어야 함) 뒹굴거리면서 책을 보다가 잠이 솔솔 오면 낮잠 한 번 늘어지게 자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으면 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잠이 더 는다.
예전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자기 전에 책을 두 줄도 못 읽을 때도 있다.
이런 나를 식구들은 '기면증' 환자가 아니냐고 한다.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엎드려 책을 읽다가도 슬그머니 잠이 온다.
가장 어려운 일은 운전을 하는 중에 졸릴 때, 일을 하는 중에 졸릴 때이다.
필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고,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하더니......
이 소설 <싫어>의 여주인공 미리엄은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될만큼 심각한 수면병을 앓고 있다.
네 시간 깨어있으면 두 시간은 자야하는 병이니, 다른 사람들처럼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생활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녀는 밤 세시에 빨래를 하기도 하고, 아침 일곱시에 스파게티를 먹거나 자정부터 뮌헨 시내를 돌아다닌다. 언제 어디서 잠이 들지 모르기 때문에 모자 달린 옷을 즐겨입는 그녀는 느닷없이 정신을 차려보면 백화점에 창고에 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미리엄은 한밤중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모두가 잠 든 밤에 사무실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규칙적으로 살아가는 동료들과의 깊은 교류를 거부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독특하고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 미리엄은 그런 자신의 삶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아갈 자유를 얻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즐긴다. 다른 사람처럼 기계의 부속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자유, 평범하고 규칙적인 삶을 깔보고 비웃을 수 있는 권력을 그녀는 획득한 것이다. 해마다 테마를 정해서 책을 읽고, 다른 사람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므로 더 많이 생각하는 그녀는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문학과 예술에 대한 주체적인 시각을 가진 채, 사회와 세상을 비판하고 예술을 향유하며 삶을 즐긴다. 그녀에게 인생은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서너번씩 자다가 깨어나서 오늘은 무엇을 하며 하루를 채우고 즐겁게 혹은 불안하지 않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규칙과 평범과 목표에 억눌린 채, 바쁘게 그러나 뚜렷한 목표가 없이 살아가는 우리보다 더욱 행복하고 가벼울지도 모른다.
흐린 날씨에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하는 오늘같은 날은 미리엄이 부럽다.
"삶과의 접촉은 거의 독서의 대용물이다. "
본문 2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