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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
앨리스 스타인바흐 지음, 김희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아, 이렇게 부러운 사람도 있구나.
어쩌면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아닌 것도 있지만) 먼저 실행에 옮긴 사람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행을 즐긴다. 단 그것은 푹신한 소파에 누워서 책으로만이다.
세계의 각지를 여행하고 돌아 온 수 많은 사람들이 낸 아름다운 여행 서적들을 보면 멋진 풍경, 입 안에서 녹아버릴 것 같은 음식들의 향연이 나의 눈을 즐겁게 한다. 너무 많은 여행서를 읽어서 (심지어 론리 플래닛까지도 읽었다.) 파리에 가면 어느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것인지, 영국에 가면 어느 뮤지컬을 볼 것인지, 프라하에 가면 어느 찻집을 찾을 것인지도 다 정해두었다. 이제 출발하기만 하면 된다. 젊은 시절에 돈이 없어서 출발을 못 했고, 그 후엔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 지금은? 사실은 여행 가방을 챙기는 일이 너무 부담스럽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 그러나, 며칠 후면 돌아올 여행을 위하여 이것저것 가방에 담는 일은 내겐 그다지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한 달에 한 도시씩 옮겨가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의 실행을 미루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 한 달, 프라하에서 한 달, 파리, 런던, 뉴욕, 방콕, 홍콩, 루앙 프라방까지 내가 가고 싶은 도시는 너무 많았고,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앨리스 스타인바흐는 그 불가능한 일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미 저자의 책 <앨리스, 30년 만의 휴가>에서 그녀의 글이 주는 매력을 알고 있었다. 이 책 역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을 뿐더러 이젠 드디어 나도 주변 정리를 하고 가방을 싸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의 리츠 호텔에서 한 달간 요리를 배우면서 아름다운 파리의 카페와 거리를 맘껏 즐긴 그녀는 이번에는 스코틀랜드로 가서 빛나는 자연과 멋진 개와 함께 양들을 돌본다. 피렌체에서는 과거로 가는 길을 찾아내고, 윈체스터에서는 제인 오스틴을 완벽하게 만나고 더욱 사랑하게 된다. 교토에서는 일본 전통 춤과 다도를 배우며 일본 여성들의 내밀한 삶을 구경하고, 프라하에서는 글쓰기 강좌를 들으면서 릴리와 엘렌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마지막 아비뇽에서 그녀는 평생동안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정원들을 보고 배운다. 나는 아비뇽을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찍어 두었다. 오래된 듯 보이는 정원들을 언젠가는 이 눈으로 보고 이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언젠가는 내게도 시간이 오겠지 하는 마음에 늘 염두에 두었던 그 멋진 계획을 먼저 실천해 준 그녀에게 감사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더 많이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