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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
이민희 지음 / 푸른숲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비록 빨래와 청소가 밀려있지만 어쩐지 쉽게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사람은 왜 이리 많은 음식을 먹어야할까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그냥 움직이지 않고 보내고 싶다.
마지못해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본다. 장을 봐 온지 오래라서 별로 먹을 것도 없다.
냉동실에서 얼린 오징어를 꺼내어 해동 시키고 야채와 함께 고추장 양념을 한다. 고추장, 고춧가루등등. 국수를 삶으려고 냉동실을 보니 국수 옆에 지난 번에 먹다가 남긴 스파게티 면이 조금 남아서 나를 슬프게 한다. 냄비를 두 개 올리고 물을 끓인다. 작은 냄비엔 소금을 약간 넣고서.
그래서 오른 점심 메뉴는 오징어 볶음과 소면, 그리고 나의 창작 요리 고추장 해물 파스타로 결정되었다. 오징어 볶음에 토마토 소스를 조금 더 넣고, 삶은 스파게티면을 같이 볶았다. 의외로 칼칼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스파게티가 되었다.
"오호라, 파스타는 어려운 음식이 아니었어."
이 책의 저자 이민희도 그런 생각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돌아 본 이탈리아 전역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파스타를 해 먹는 것을 그녀는 보았으니 말이다. 한 때는 치즈에 빠져서 유럽 전역을 찾아다니면서 치즈를 만나고 공부하고 맘껏 사랑했던 그녀는 어느 날 우연히 치즈 요리를 하다가 파스타를 만나게 된다. 그 수 많은 국수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진 그녀는 파스타의 본 고장 이탈리아로 무작정 떠난다. 이탈리아 전역을 돌면서 시골의 평범한 가정집의 파스타부터 유명 식당의 파스타까지 두루 살피면서 이탈리아인들에게 파스타란 우리에게 밥과 같은 것임을 보게 된다. 어떤 집이든 어느 고장이든 자기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파스타를 만들고 즐기고 있었다. 만드는 방법이 약간씩 다르고 소스의 내용물이 다르지만, 그들에게 파스타란 면을 반죽에서 만들고 소스를 끓여서 부어먹는 지극히 단순한 음식인 것이다.
그런데, 혹시 저자는 그 사실을 알까? 파스타란 이탈리아의 자생적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애초에 유럽엔 국수가 없었다. 이탈리아에 국수를 전해준 것은 이슬람 세력이었다. 국수는 맨 처음 중앙아시아에서 탄생해서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그러던 국수가 시칠리아에 상륙했고 그들은 그때부터 스파게티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지역에서 생산되는 풍성한 해산물과 과일과 야채는 국수를 더욱 다채롭게 발전시켰다. 지극히 이탈리아적인 파스타가 기실은 그 나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참으로 여러가지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 책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 식구 중의 한 사람은 이런 말을 한다. 자기는 나중에 시간날 때마다 세계의 정원을 구경하는 여행을 하겠다고 말이다. 세계 각지의 아름다운 혹은 너무 소박한 정원들을 찾아다니면서 느끼고 보고 배우고 싶단다. 물론 그 결과물을 책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단다. 나는 나중에 무엇으로 테마를 정할까? 한 때는 세계 문학 기행을 하고 싶었다. 한 때는 세계 헌책방 여행을 하고 싶기도 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책의 저자는 진짜로 행복한 사람이다.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맘껏 즐길지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