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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집에 있을걸 - 떠나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후회
케르스틴 기어 지음, 서유리 옮김 / 예담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아침이었다. 나는 기차를 탈 예정이었고, 나서면서 챙겨 든 책이 바로 이 책 <그냥 집에 있을 걸>이었다.
오후 늦게야 일을 마치고 서울에서 만난 친구는 내가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면서 깔깔 웃었다. 그냥 집에 있지 그랬냐면서.....
한 때 거실에 스탠드를 켜 놓은 채 며칠 집을 비운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저 제목이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떠나 본 자만이 만끽할 수 있는 멋진 후회"라는 부제의 이 책은 정말 여행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갖가지 멋진 후회들을 늘어놓는다. 나처럼 주로 방안에 앉아서 안락 의자로만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얻을 수 없는 비행공포증(음, 이 공포증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비행기의 이착륙 시간은 내겐 너무나 힘든 시간이다.)을 극복하는 경험, 아름다운 시골의 호텔방에 나타난 거대 거미때문에 용감한 남자를 알아본 경험들을 자랑스레 내 놓는다. 잠한번 푹 자려고 떠난 시골 여행에서 만난 전갈은 그녀들을 밤새워 깨워놓았고, 멋쟁이 이탈리아 웨이터에게 말을 걸기 위해서 알고있는 온 세상의 말을 다 꺼내면서 친구들은 다툰다. 부모님과 여행 중에 차안에서 보낸 행복한 기억들을 시치미 뚝 떼고 자랑하기도 하고, 굳이 먼 곳이 아니어도 충분히 보람있는 가까운 곳으로의 여행을 권하기도 한다. 자기 집에 방문한 예의없는 친구 부부의 이야기는 함께 분개하게 하고, 얄미운 사촌 여동생을 곯려주는 이야기는 웃음을 머금게 한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한 많은 여행은 스위스 냄새를 구별하는 혜택받은 언니와 용감한 할머니와의 추억들로 그들만의 언어를 구성했다. 얼마나 멋진 경험들인가. 떠나보지 않은 자는 알 수 없는 그 많은 다른 세상들을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가족들과 친구들과의 여행 경험담을 들려주면서 갖가지 우습기도 하고 볼썽 사나운 일들을 드러내지만 그 내심이 여행에 대한 예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 지난하고 다사다난 했던 오랜 여행의 경험은 그녀의 인생을 풍부한 바다처럼 깊게 한 듯하다. 또한 그들의 가족은 한마디의 지명으로도 모든 상황 설명이 가능하다. 그것은 함께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다가설 수 없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바로 그런 것이 가족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유머러스하고 행복한 이야기를 저런 능청스런 제목으로 우리에게 풀어낼 생각을 하다니, 이 위트가 바로 여행의 산물일까? 이 제목 때문에라도 이 책은 꼭 여행지에 가지고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