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나는?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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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선 사두고 못 읽었던 <구해줘>를 먼저 읽었다. 기욤 뮈소의 신작이 나올때 마다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가장 대표작인 <구해줘>를 읽을 기회가 없었다. 만 하루동안의 시간에 걸쳐서 읽은 그 책은 한편의 영화를 보듯이 빨리 넘어갔다. 눈이 오는 뉴욕의 거리와 바닷가의 새벽등의 묘사는 마치 영화를 보고 난 것처럼 아직도 영상으로 떠오른다. 다른 그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지만 기욤 뮈소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마치 영화처럼 펼쳐지는 생생하고도 섬세한 묘사가 아닐까 싶다. 분명히 소설로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난 듯한 이 느낌이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그의 힘일 것이다.

 <당신 없는 나는?>은 소재가 독특하다. 명화를 훔치는 유명한 도둑 아키볼드와 그를 잡으려는 프랑스 경찰 마르탱, 그리고 도둑의 딸이자 마르탱의 필생의 여인인 가브리엘이 그려나가는 이야기는 한편의 헐리우드 영화처럼 기억에 남는다. 우연히 만나서 사랑하게된 그들은 다시 만나려는 그들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엇갈리고 만다.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가브리엘을 원망하며 마음을 닫고 경찰로서만 살아 온 마르탱은 명화 전문 도둑 아키볼드에 대한 연구로 시간을 보낸다. 어쩌면 마르탱이 아키볼드에게 끌린 것은 그와 가브리엘의 인연이 만든 인력일 것이다. 자신의 탄생으로 엄마를 잃고 아버지마저 감옥에 들어간 가브리엘은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자 하는 마음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불안함 사이에서 늘 방황을 한다. 부모가 남긴 집에서 살면서 작은 비행기로 생계를 연명하는 가브리엘에게 마르탱은 순수의 상징이고 마음의 안식처이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의 등장과 곧 죽음을 맞게된다는 그의 소식은 충격의 연속이며, 또한 그녀가 사랑해마지 않는 마르탱과 아버지의 대결은 그녀를 힘들게 한다. 어느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 만나 두 사람은 함께 '탑승자 대기 구역'에 있다. 공항의 대합실처럼 음악이 흐르고 패스트푸드점이 있고 꽃집이 있고 레스토랑이 있는 그 곳에서 마르탱은 그의 삶을 돌아보고 아키볼드와 진정으로 화해하며 가브리엘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기욤 뮈소 소설이 인기가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해피엔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고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지만 가장 행복한 결말을 만나게 된다.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이란 그래도 살만한 것이고 우리는 따뜻한 마음의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의 설정이 가끔은 좀 작위적이고 억지라는 생각이 살짝 들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읽고나면 한 편의 좋은 다큐멘터리를 본 듯 가슴이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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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세월
박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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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88올림픽이 개최되던 시기부터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2023년까지 이 소설은 아우르고 있다. 총 8장인 각 장은 모두 쌀과 관계된 문장으로 시작된다. 1988년 열살된 미령은 밥을 안치고 있었다. 엄마처럼 잘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어린 미령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고 미령은 엄마를 원망하다가 엄마의 죽음을 목격하고 만다. 맨초롬히 예쁜 얼굴로 첩질을 하던 엄마는 아버지의 마음이 변하자 자살을 택한다. 남은 자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즉흥적이었던 엄마 선옥의 선택은 미령과 태호 남매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았다. 아버지의 본 부인인 명옥은 정신 나간 시누를 돌보게 하려고 딸인 미령을 택해서 데리고 가고, 오빠 태호는 폭력적인 외삼촌에게로 보내진다.

 1992년 미령은 4년 동안 '바구미 여사'인 고모를 돌본다. 별 어려움없이 고모와 보낸 시간 속에 바구미 여사에게 정이 든 미령은 고모가 돌아가시자 허전한 마음이 든다. 1995년 미령은 고등학생이 되었다. 클럽에서 민구를 만난 미령은 그와 끈질긴 인연을 맺게 되고, 1999년 스물한 살이 된 미령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집을 나와 장사를 시작한다. 2002년 미령은 여전히 장사를 하고 민구와의 관계도 이어지지만 오빠 태호는 그녀에게 걱정거리이기만 하다. 2012년 서울은 대지진으로 페허가 되고 미령은 언니의 애인이었던 제철과 사업을 한다.

 그렇게 3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미령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스치기도 하고, 다가오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미령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대로 사랑과 희망과 좌절과 모욕의 세월들을 견디고 그렇게 세월은 흐른다. 아마 제목이 주는 의미도 그러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미령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미령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주는 역할을 할 뿐 굳이 미령이 없어도 그들은 잘들 살아갈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이 없으면 세상 역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래서, 나 하나쯤 없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쌀알처럼 모여사는 우리, 쌀 한 톨 정도야 없어도 밥이 되지만, 쌀 자체가 없다면 밥은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 하나하나가 있어야만 세상이 존재한다. 그러니 내가 없는 세월이란 정말 반어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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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오류 사전
조병일.이종완.남수진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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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책을 읽을 때마다 가끔씩 떠오르는 의심은 누구나 가져보았을 것이다. ‘과연 이게 다 사실일까?’ 그 시절을 증명할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책에 쓰인 그대로를 사실이라고 생각해야하지만, 역사라는 게 얼마나 왜곡의 가능성이 많은 지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최소한 역사책을 저술할 만한 여유가 있었던 집단은 권력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 집단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역사책을 썼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보여질 것은 물론이고, 사실을 바꾸는 것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사실이 왜곡되어서 전달되는 것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아쉽기 짝이 없다. 내가 알고 믿고 있는 이 사실들이 실은 거짓이라면, 그것도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거짓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세계사 오류 사전>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알게 모르게 왜곡되어서 전달되거나 은폐된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싶다면 말이다. 책의 머리말에서 지은이는 “오류의 날줄을 엮다보니 거기에서 진실의 씨줄을 발견했다.”(머리말 6쪽)는 말을 한다. 이 책을 지은 의도가 이보다 정확히 표현될 수 있을까?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다던 갈릴레이는 카톨릭 교회의 위협에도 진리를 발표하려 애쓴 과학자는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그는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링컨의 유명한 말은 인용된 것이고 또 우리도 익히 알다시피 링컨은 노예해방론자는 아니었다. 그림 형제의 <일곱 마리 늑대와 새끼 양> 동화는 앞부분이 생략되었다는 사실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실은 먼저 양이 늑대의 새끼들을 괴롭혔다니, 우리가 늑대에 대해서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있었던가 말이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자본주의 사회에는 늑대처럼 ‘천성적으로 악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림형제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본문 54쪽) 나폴레옹의 운명을 결정지은 러시아 원정의 패배원인은 추위가 아니었으며(오히려 예년보다 더 따뜻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당시의 사람들에 비해서 키가 작지 않았다. 우리가 그의 키를 잘못 알고 있는 이유는 영국과 옛날 프랑스에서 쓰는 ’피트‘의 단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사실은 스코틀랜드인의 킬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옷이 실은 스코틀랜드의 민속의상이 아니라고 한다. 18세기 이전까지 없던 킬트는 영국 사람들이 스코틀랜드 노동자의 의류비를 줄이려고 만든 옷으로 나중에는 ‘잉글랜드인과 다르게 보인다’는 이유로 금하였으나, 잉글랜드의 금지로 인해서 이 킬트는 저항의 상징으로 스코틀랜드에 대유행을 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오류의 강물을 진실의 바다로 인도하기 위해”(머리말 7쪽) 쓰여진 이 책은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되어 있어서 짧은 시간에 조금씩 읽을 수 있으며 다양한 상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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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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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작품은 자식이고 작가는 그 어미인 것인가?

 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우리는 네 가지를 배운다.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만 이해하는 방법, 작가의 자기 표현으로 보는 방법,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여 이해하는 방법 그리고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흔히 존재론, 표현론, 반영론, 효용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다른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작품을 작가의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부모 자식의 관계보다 더 깊은 작가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소설 <공무도하>에서 주서술자의 역할을 하는 신문 기자 문정수가 내 눈에는 작가의 분신으로 보였다. 이 소설에서 굳이 주인공을 찾자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할 만큼 여러 인물들이 비중있게 등장하는데, 그들을 하나로 잇는 줄이 바로 문정수이기 때문에 나는 그를 주서술자라고 본다.

 신문사 사건 당당기자인 문정수는 엄청나게 바빠 보인다. 그가 맡은 것이 한 지역인지 어떤 종류의 사건들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화재 현장, 수재 현장, 간척지 매립 사업장, 살인 현장, 개에게 사람이 물려 죽은 현장등 장소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쫓아다닌다. 소설은 급격한 폭우로 저수지둑이 무너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무너진 둑을 넘어서 물은 아랫 동네를 쓸어버렸고 달아난 수문관리인 놈을 찾아야하는 일이 그에게 떨어진다. 그 사고가 난 마을이 창야이고 문정수에게는 그 마을이 고향인 노목희라는 쉴 곳이 있다. 노목희는 미술 선생 출신의 출판사의 편집인이다. 그는 야근을 마치고 가끔씩 들르는 문정수에게 라면을 끓여주기도 하고 기사로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의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개에게 물려죽은 소년의 엄마는 오금자이고 오금자의 고향은 바닷가 해망이다. 해망은 문정수가 군 생활을 한 곳이며 노목희의 선배인 장철수가 몸을 거두어 숨어든 곳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창야와 해망이 만난다. 문정수에게 해망은 벗어나기 힘든 그물같은 곳으로 표현된다. 노을이 눈물지게 아름답다는 해망은 간척이 되어 딴 세상이 될 터이고 그 곳의 노을은 더이상 순수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문정수의 허무와 공허는 여기에서 비롯되었을까?

  간결한 서술과 군더더기 없는 묘사들은 읽는 재미를 쏠쏠하게 한다. 등장 인물들은 하나같이 끈적거리지 않게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다. 그들은 두고 온 삶을 그리워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미련을 두거나 하지 않고 훌훌 떠나버린다. 그들의 삶이 모두 다 외로운 것은 그들의 선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의 어느 곳도 나의 발을 묶어둘만큼 의미있거나 하지 않다는 듯이 훨훨 날아가는 그들이 한편으로는 참 쿨해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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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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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를 빼고는 나의 소녀 시절을 말하기 어렵다. 초등학교(내가 다닌 학교는 국민학교) 3~4학년에 입문하게 된 만화의 세계는 깊고도 넓고도 아늑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만화가게를 출입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늘 혼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어떤 것이 나를 만화 가게로 이끌었고 얼마되지 않는 용돈은 물론 거기에 다 바쳤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엔 마음이 꼭 맞는 친구를 만나서 그야말로 그 지평을 넓히고 (우리 동네뿐 아니라 친구의 동네 만화가게까지 진출했고) 우리의 전문성(?)은 더욱 깊어갔다. 고등학교까지도 함께 한 그 친구 덕에 우리는 만화를 선별해서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번 선택을 하면 끝까지 찾아 읽는 의리를 지켰다. 심지어 어떤 만화는 그 시리즈가 하도 천천히 나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진 후까지도 하이힐에 핸 드백을 들고 만화가게를 출입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만화가게를 드나들지도 않고 (만화가게 보기도 어렵지만) 가끔 기회가 되면 들여다 볼 정도지만 그 시절 그 정열로 공부를 했더라면 줄기세포는 내가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 만화책을 보는 나의 마음은 특별하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만화이기도 하고 만화의 내용이 그토록 솔직하기도 하다. 9편의 시와 9편의 이야기로 얽혀진 이 책에는 9명의 그들이 나온다. 그녀들은 공무원이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옷을 파는 직원이기도 하다. 주부이고 편집자이며 프리랜서 작가인 그녀들의 삶은 하나같이 특별할 것도 없고 잘 난 것도 없지만, 딱히 무엇인가 크게 결핍된 것도 없어 보인다. 평범한 그녀들의 삶, 지리하고  너절한 그 생활을 속속들이 보여주며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굳이 드러내어 헤쳐놓지 않아도 충분히 한심한 우리의 삶을 펼쳐놓은 이유는 그것이 '시'이기 때문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희망을 꾸며내지 않고 또는 그 부질없는 속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둥의 식상한 소리도 없이 작가는 그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비단 나만의 비참함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조금은 덜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오랜 만에 만나는 그저 시 한 편과 거리의 수 많은 저 여자들의 지리멸렬한 하루가 어우러져 오늘은 완벽한 비오는 날이 될 수도 있겠다. 이왕이면 만화 한 권과 맵고 뜨거운 떡볶이도 있으면 더 좋겠는 걸?

 

"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고

   어떤 꿈도 몸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늘 그리워했으므로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허연,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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