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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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를 빼고는 나의 소녀 시절을 말하기 어렵다. 초등학교(내가 다닌 학교는 국민학교) 3~4학년에 입문하게 된 만화의 세계는 깊고도 넓고도 아늑했다.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만화가게를 출입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늘 혼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어떤 것이 나를 만화 가게로 이끌었고 얼마되지 않는 용돈은 물론 거기에 다 바쳤다. 그러다가 중학교 시절엔 마음이 꼭 맞는 친구를 만나서 그야말로 그 지평을 넓히고 (우리 동네뿐 아니라 친구의 동네 만화가게까지 진출했고) 우리의 전문성(?)은 더욱 깊어갔다. 고등학교까지도 함께 한 그 친구 덕에 우리는 만화를 선별해서 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 번 선택을 하면 끝까지 찾아 읽는 의리를 지켰다. 심지어 어떤 만화는 그 시리즈가 하도 천천히 나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진 후까지도 하이힐에 핸 드백을 들고 만화가게를 출입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만화가게를 드나들지도 않고 (만화가게 보기도 어렵지만) 가끔 기회가 되면 들여다 볼 정도지만 그 시절 그 정열로 공부를 했더라면 줄기세포는 내가 찾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이 만화책을 보는 나의 마음은 특별하다. 꽤 오랜만에 만나는 만화이기도 하고 만화의 내용이 그토록 솔직하기도 하다. 9편의 시와 9편의 이야기로 얽혀진 이 책에는 9명의 그들이 나온다. 그녀들은 공무원이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옷을 파는 직원이기도 하다. 주부이고 편집자이며 프리랜서 작가인 그녀들의 삶은 하나같이 특별할 것도 없고 잘 난 것도 없지만, 딱히 무엇인가 크게 결핍된 것도 없어 보인다. 평범한 그녀들의 삶, 지리하고  너절한 그 생활을 속속들이 보여주며 작가는 무엇을 전하고 싶은 것일까? 굳이 드러내어 헤쳐놓지 않아도 충분히 한심한 우리의 삶을 펼쳐놓은 이유는 그것이 '시'이기 때문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희망을 꾸며내지 않고 또는 그 부질없는 속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둥의 식상한 소리도 없이 작가는 그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비단 나만의 비참함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조금은 덜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오랜 만에 만나는 그저 시 한 편과 거리의 수 많은 저 여자들의 지리멸렬한 하루가 어우러져 오늘은 완벽한 비오는 날이 될 수도 있겠다. 이왕이면 만화 한 권과 맵고 뜨거운 떡볶이도 있으면 더 좋겠는 걸?

 

"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고

   어떤 꿈도 몸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늘 그리워했으므로

   그리움이 뭔지 몰랐고"

       -허연,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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