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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뙈기의 땅
엘리자베스 레어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gk내가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편향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꽤나 나이를 먹은 후의 일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내가 바르고 공정한 시각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른이 된 후 남들이 내게 주입하는 지식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동안 내가 몰랐던 일들이 너무 많아서 과연 이게 내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이 맞는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 일련의 지식들의 구조 속에서 객관적인 길을 찾아가는 것은 과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세상에 넘쳐나는 홍수 같은 정보 속에서 옥석(玉石)을 가리는 일은 일정한 기준과 가치관이 기저에 수립되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치우치지 않은 생각과 판단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걸까?
이 소설 <한 뙈기의 땅>의 소개를 처음 보았을 때, 내심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이미 우리에게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예루살렘에 관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그들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 알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2천년 전에 떠난 땅에 돌아와서 옛 땅을 되찾으려는 이스라엘의 태도가 옳은 지 그른 지는 차치하고, 단지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세계에 알려 경종을 울린 책”이라는 이 책의 주인공 열두 살의 소년 카림 아부디의 장래 희망은 축구 선수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고 싶지만, 그에게는 공을 찰 운동장이 허락되지 않는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통행금지를 내렸기 때문이다. 카림과 그의 형 자말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막내 동생이 열이 나지만, 약조차 사러 갈 수 언제 또 통행금지가 내려질 지 모르기 때문에 늘 불안한 그들의 생활, 아버지의 전자 제품 가게에는 먼지가 쌓이고, 시골의 올리브 농장은 이스라엘 정착촌 사람들에게 빼앗긴다. 카림은 어서 자라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싸우는 전사가 되고 싶지만, 아버지 하산은 “인내가 필요해.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니까. 우린 품위를 지켜야 해. 그래야만 강해질 수 있어. 아무리 우리를 핍박하고 모욕한다 해도 오히려 수치스러운 자들은 바로 저들이니까”(본문 81쪽) 라고 말한다. 사실 그들이 실제 행동에 나설 때 돌아오는 것은 예루살렘 감옥에서의 고문과 의문의 죽음뿐인 것이다.
막막하고 두려운 환경에서 소년 카림은 친구들과 아지트를 만들기도 하고, 쓰레기 더미를 치워서 축구장을 만든다. 서로의 용기에 감탄하고 서로의 불행을 동정하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카림이 대견하지만, 그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에 이 소설은 슬프다. 카림과 같은 소년들이, 파라와 같은 소녀들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은 과연 올 것인가.
함께 읽을 책으로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