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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우연히, 아프리카 - 프랑스 연인과 함께 떠난 2,000시간의 사랑 여행기
정여진 글, 니콜라 주아나르 사진 / 링거스그룹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자기만의 오롯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전생의 어렴풋한 잔상이 아닐까 생각되는 그 아스라한 기억이 있어 우리는 평생을 알지 못할 그리움에 가슴을 조이며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속삭이며 나를 부르는 바다가, 어떤 이는 흰 눈을 인 채 서 있는 안나푸르나가 그 그리움의 모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한없이 그리운 대상이 있으니 바로 사막이다. 뜨거움의 결정체인 태양이 그 기세를 떨치는 한낮의 사막이 아니라, 어스름이져서 나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 저 멀리서 태양을 등지고 낙타의 고삐를 쥔 채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는 누구일까? 역광으로 그의 얼굴은 항상 보이지 않는다. 빈 사막을 울리는 그의 낮은 피리 소리는 나의 가슴을 흔들고 나는 뜨거운 모래에 발이 빠진 채 주저 앉아 있는 상상. 그것이 나의 그리움일 지도 모른다.
꿈이 생겨나는 동시에 삶의 가치가 시작되며, 꿈을 이루리라는 희망이 사라질 때 삶 역시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본문 45쪽
여기 그 아프리카, 영원한 인류의 고향이라는 그 곳에 간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인생의 경험을 가진 채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는 젊은이는 어쩌면 랭보의 화신일지 모르는 사랑하는 그 이방인과 아프리카에 있다. 더위와 말라리아, 그리고 사람들에게 지치면서 그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사랑이 너절한 일상이 될까봐 새로운 자극을 찾아 떠난 것은 아니다.
사람뿐인 대륙, 사람과 자연 사이에 다른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은 세계, 그래서 모든 사라질 것들과 새로 생기는 것들이 스스럼없이 교차하는 곳. 그렇다. 나는 아프리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본문 26쪽
'우연이 때로는 필연이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운명으로 탈바꿈하곤 한다(본문26쪽)'는 그의 말처럼, 그의 짧은 인생에서 두 번의 우연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잘못 배달된 랭보의 전기가 그를 아프리카로 이끌었고, 프랑스를 사랑하게 했으며 그 우연은 또다시 그의 사랑을 만나게 했다. 어쩌면 우리가 우연이라 부르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운명일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은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88만원 세대인 우리의 20대 청춘이 다른 사람들처럼 취업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스펙을 쌓기 위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떠난 것일 수도 있는 그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가 찾은 더 넓은 세상은 어쩌면 우리의 울타리 안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와 먹고 입는 것이 다를 지언정 지독한 가난과 희망없는 내일은 그 넓은 아프리카도 좁게 할 테니 말이다.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그 곳에서 정착하고자 했을 때 보게 되는 도시의 모습은 다르다. 낯설고 신가한 것들이 나의 생활이 되는 과정은 그리 편안하지 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도 물도 다른 곳, 독특한 냄새와 뜨거운 태양이 있는 그 곳에서 그는 무엇을 찾는 것일까?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만을 위함이라면 이 많은 사유와 현학적인 표현들로 가득한 책이 내게 주는 것은 또 무엇일까? 단 한 번의 인생이기에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보는 젊음이 부럽다. 그러나, 어딘지 부유하는 듯한 그의 문체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그의 천착은 나를 혼돈스럽게 한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저 찰나의 연속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 한 번 태어나 단 한 번 죽기에, 인생이라는 것은 오히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놓인 찰나의 부풀림이리라. 그리하여 단 한 번 태어난 자는 죽음 전에 완전한 찰나가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이 처럼 탄생과 죽음 사이에는 삶이 있으니 태어난 자는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다.
본문 55쪽
내가 찾은 오자
51쪽 9째 줄 이국적인 외향 -> 외양
99쪽 8째 줄 베일에 싸여 시아에 -> 시야에
또 하나, 152쪽과 193쪽에 실린 사진이 같은 사진이다. 수많은 사진이 있을텐데 굳이 같은 사진을 실을 필요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