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시공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사실 읽기 편한 책이었다거나, 아주 흥미로웠다거나 혹은 아주 즐거운 독서였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렵다.
 예전 학창 시절 배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 떠오르는 구성, 비밀을 간직한 주인공, 도무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 주제는 나를 혼란시켰다. 주인공 파울케스는 온 망루 가득 그리는 벽화를 통하여 무엇을 찾고자 하는 것일까?  그의 사진으로 인하여 적의 포로가 된 크로아티아의 젊은이 이보 마르코비츠와 전직 종군 사진 기자 파울케스가 주고 받는 대화는 그들만의 리그마냥 난해하기 짝이 없었다.  (그 둘은 서로의 대화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어떤 합일점을 찾는 듯 했다)

 전장을 누비며 평생 처참한 인류의 죄악을 카메라에 담던 파울케스는 유명한 상을 두루 수상한 저명한 사진 작가이다. 그가 찍은 수 많은 사진은 전쟁의 실상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일조를 했다. 그러던 그에게 평생의 인연인 올비도와의 만남은 사진과 세상과 예술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올비도와 함께 했던 지독하리만치 행복했던 시간들은 올비도의 죽음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파울케스는 혼자 남았다. 사실 올비도가 자신을 떠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는 얼마 전부터 느끼고 있던 중이었고 자신을 떠난 뒤에 만날 올비도의 새로운 연인에게 벌써부터 질투를 느끼던 파울케스는 죽음으로라도 그녀를 소유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사라지고 그에게 사진은 진정한 예술이 아니었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세계를 그는 온통 전쟁을 다룬 그림으로 채운다. 죽기 전에 그가 남기고 싶은 그림, 그것은 그가 죽고 난 후 망루가 붕괴되면 사라질 그림이다.

 파울케스의 사진으로 인해서 세르비아 군인에게 잡혀서 온갖 고초를 당하고, 세르비아인이었던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처참하게 잃은 이보 마르코비츠는 오로지 파울케스에게 복수하겠다는 집념으로 파울케스의 뒤를 쫓는다. 그의 사진을 공부하고 그의 일생을 탐구하면서 이보는 살아가는 이유를 설정하지만 결국에 그는 파울케스와의 만남에서 삶이란 것의 어이없음과 허무함을 이야기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가 궁극에 이르고자 하는 경지 역시 그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게 영원할 듯 욕심을 부리고 서로를 아프게 하는 우리네 삶. 그러나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감정 같은 건 없는 우주가 마치 방금 잠에서 깨어난 짐승처럼 기지개를 켜며 두 다리를 쭉쭉 뻗고,하품을 하면서 허공을 향해 날카로운 앞발을 아무렇게나 휘둘러댄 뒤에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는 말이에요.

  본문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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