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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이 책을 집었을 때, 얄팍한 두께에 만만하게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체로 요 정도 두께와 너비를 지닌 책은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서 한 나절이면 충분했으니 말이다. 옮긴이의 말까지 포함해서 315쪽이다. 좀 작은 글씨와 빽빽한 편집이긴 했으나, 그 정도야 내공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4개의 단편이라기엔 어딘지 넘치고 중편이라기에는 살짝 아쉬운 작품들을 막상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자신만만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랜만에 겸손 가득한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집의 부제를 '네 편의 긴 단편들'이라고 정했다. 그 부제의 의미는 단순히 작품의 길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네 명의 주인공들과 그들 전체를 아우르는 화자가 만들어내는 이 이야기들은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을 더 길게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하여 허구적으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소설의 정의가 무색하게도 이 작품은 소설같지 않다. 작품에는 수십 장의 흑백 사진이 실려있는데, 이 사진들은 소설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화자의 삶의 궤적 역시 작가의 삶의 궤적과 많은 부분에서 만나고 있다. 작가는 "나는 일체의 값싼 허구화의 형태들을 끔찍하게 생각한다. 나의 매체는 소설이 아니라 산문이다. "(옮긴이의 말 312쪽)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두 문장의 말이 이 작품의 특징을 결정짓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소설들 역시 1인칭 시점을 택하는 경우 독자들은 소설이 작가의 실제 이야기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르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종종 다큐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리고,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소설에 대해서 갖고 있던 편견의 일부를 인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네 편의 소설들에는 각각의 주인공들이 있다. 그들은 의사이고, 화가이고, 교사이고 신사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떠도는 신세이다. 그들이 고향을 떠난 것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다. 그들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떠나야했고, 그것은 그들의 평생의 삶을 지배한다. 아름다운 어린시절과 참혹한 청년시절을 보낸 고향 마을. 한없이 아름답게 채색된 그 마을을 빼앗김으로써 그들은 영원히 떠도는 마음의 이민자가 되어 버린다. 그들 중에는 기어이 고향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영원히 독일땅을 밟는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세상과 마음을 열고 통섭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유리시켜 방황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요즘의 우리를 발견한다면 과장일까? 흔히들 요즘을 고향을 잃어버린 세상이라고 말한다. 우리 또래들 중에도 어린 시절 참외 서리하던 고향의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도시 출신인 나는 그런 아련한 기억은 없다. 그래도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함께 골목을 뛰놀던 친구의 기억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지금은 그 마을엔 골목도 없고 그들도 이미 없다. 내가 태어난 집은 병원이라면서 웃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 세대는 다들 마음 둘 데를 잃은 이민자들이 되는 걸까? 건조하고 이기적인 요즘의 세태에는 혹시 고향이 없는 사람들의 쓸쓸함이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없이 쓸쓸하고 또 쓸쓸한 이 소설은 차가운 날씨와 함께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