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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가 좀 들다보니 이것저것 세상의 일에 하나씩 의미가 생긴다. 이 책은 어떤 이를 서점에서 기다리다가 고른 책이고, 이 커피를 처음 내게 소개한 이는 그 사람이고, 이 공원은 어떤 아이와 낙엽을 밟으며 어색함을 감추던 곳이라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여러가지 것들 중에 강렬하고도 아련한 기억을 남기는 것으로 영화를 나는 든다. 저 영화를 함께 본 사람, 이 영화를 볼 때 느꼈던 감정들, 혹은 이 영화는 어떤 영화관에서 보았는지 등 그 사연의 내용은 구구각각이지만 그들은 각각 하나의 새로운 영혼들이 되어서 나의 가슴을 출렁이게 한다. 때로는 내 일생의 사랑인 '책'보다 더 큰 감정의 흔들림을 만들어 낸다고 하면 나는 너무 즉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영화들은 대부분 우리 아이가 재미를 느끼기에는 어딘지 약간 다르다. '델마와 루이스'가 그렇고, '남아있는 나날'이 그렇고, '나 없는 내 인생'이 그렇다. 또 하나 지금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독일 영화 '밴티드'를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는다. 그리고 이 소설이 원작인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빼 놓을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524쪽이나 되는 그 두께에 오히려 감사했다. 뒷장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야금야금 읽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운 책이다. 처음 이야기는 세상에서 버림 받은 듯 외로운 에벌린이 시작하던가? 아니다. 휘슬 스톱 카페의 개업을 알리는 닷 윔지의 통신으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1985년과 1929년이 동시에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남편과도 시어머니와도 심지어 자식과도 소통이 막힌 채 오로지 달콤한 것들에게만 위로를 받을 수 있던 에벌린은 정말로 가기 싫은 요양원으로 시어머니의 문병을 가게 된다. 몰래 사탕을 먹으려고 두리번 거리던 에벌린은 한 노부인 스레드굿 부인을 알게 되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에벌린은 어느새 요양원에 가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 시간이 뒤죽박죽인 스레드굿 부인의 이야기를 따라서 소설은 진행되므로 시간의 흐름은 읽는 우리가 잘 맞추어야한다. 그러나, 애쓸 필요는 없다. 그저 우리도 니니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인종 차별이 심하던 그 시절 앨라배머주 버밍햄(앨라배머주라면 바로 그 유명한 조지아주의 옆이 아닌가.)의 한 시골 마을 휘슬 스톱에 카페가 생긴다. 주인은 개성이 강한 이지 스레드굿이다. 카페의 동업자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루스이고 요리사는 솜씨라면 세계 최고인 십시와 온젤, 그리고 빅 조지가 바비큐를 담당한다. 맛있는 음식과 커피로 마을 사람들은 휘어잡은 이지는 그 시절 남부의 한 마을인 휘슬 스톱에서 뒷문으로 흑인들에게 음식을 판다. 그것만으로도 그 카페는 KKK단의 방문을 받을 만 했다.
자의식이 뚜렷하고 꿋꿋한 여성인 이지와 루스가 이루어내는 카페, 그리고 스레드굿네 가족들의 사랑과 의지의 삶을 니니에게 들으면서 에벌린은 점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에벌린에게 이지와 루스와 앨리스와 스텀프 그리고 니니는 이미 한 가족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다른 어떤 것들로도 인격을 구속하려 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또는 내 아이와 남의 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서 그들이 대하는 법이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을 그저 사람이라서 사랑할 줄 아는 우리 본연의 감추어진 마음을 그들은 드러내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의 여러 장면을 떠올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이다. 그 기억이 어렴풋하여 소설 본연의 상상의 무한한 세계를 제약하지 않음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풋토마토 튀김은 어떤 모양이고 맛일까? 십시는 어떻게 생겼을까? 에벌린의 눈에도 깜짝 놀랄 만큼 미인이었다던 루스의 사진은 어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에 나는 스스로 답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