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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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이라는 말에 담긴 그 무한한 의미를 알 때 쯤이면 세상 좀 살았다고 해도 될까?

 그리운 이에게 찾아가서 건네는 "그냥 왔어" 한 마디면 더 이상의 무엇이 필요할까? 마음 깊이 의지하는 이가 건네는 눈웃음과 함께 듣고 싶은 말이다. 너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백지로 편지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그 예전 노래의 주인공처럼 "그냥"에는 하고 싶은 말과 하지 못한 말과 해야할 모든 말이 담겨있다. 아마도 지은이가 이 단어를 자기 이야기의 제목으로 삼은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식상한 예능 프로그램에 혜성처럼 나타난 벽안(碧眼)의 여장부- 누구 말마따나 조선말 엄청 잘 하는 외국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그가 보여주는 무섭지만 열정이 있기에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카리스마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모르긴 모르지만 아마도 덕분에 그 프로그램의 조금은 부진했던 시청률에도 효자 노릇을 하지는 않았을까? 우연히 지나다가 얼핏 본 프로그램에서 그는 오디션을 보러온 사람들을 심사하고 있었다.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한 사람,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나운서, 콘테스트 우승자, 현직 가수 그리고 심지어 격투기 선수까지 한 자리에 모이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성심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도 진지하고도 아름다워서 슬쩍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자기만의 목소리로 크게 노래하던 그들에게 그는 조화와 공유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때로는 혹독하게 때로는 가슴으로 다가가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화음이 참으로 아름다웠더라고들 한다.

 그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이 사람이 누구냐 "하는 관심이 대단했다. 그 외모는 서양인이었으나 그가 구사하는 우리말은 구수했다. 그것은 외국인이 배운 사투리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자연스럽게 하는 언어였다. 그러니, 그가 누구냔 말이다. 그래서 읽게된 이 책 <그냥>을 통해서 그에 대한 궁금증은 거의 모두 풀 수 있었다.

 그는 감동을 잘 한다. 그는 눈물도 잘 흘리고(나처럼 주책없이 말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을 하고, 사람을 불러서 밥을 해 먹이길 좋아한다. 그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고, 부엌칼로 십자가도 만들 정도로 힘이 세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인(오, 그 미인이 많다던 나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중 막내란다. 그는 한국에서 말을 배웠고 사람을 배웠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방황하기 보다는 다양성을 배웠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늘 상주하고 있었다. 마초적인 브라질 남자와 순종적인 일본 여자가 함께 둘러 앉아 한국식 음식을 먹으면서 제 나라의 풍습을 함께 나눈 것이다. 얼마나 코스모폴리탄적인가 말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고정관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읽는 내내 그의 열린 마음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면 내가 너무 편향된 시각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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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 제2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작
오수완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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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돈을 주고 사면 되는 책을 사냥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엔 사냥해야 하는 책도 있는 모양이었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는 책과 그것에 관계된 삶을 사는 이들이 고통에 처한다. 그들의 세상에서 책은 더이상 우리가 아는 그런 책들이 아닌 것이다. 그들의 책은 책을 위하여 전재산을 내어놓을 수 있고, 혹은 죽을 수도 있으며 또는 책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도 있다. 책의 표지를 얼핏 보았을 땐 모자를 쓴 단정한 여인이 책 속에 눈을 두고 있는 그림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여인의 턱에 수염이 삐죽삐죽 자라고 있음이 보인다. 그는 여인이 아니다. 그는 변장한 책사냥꾼인 것이다. 책사냥꾼인 그들은 책을 찾아다닌다. 그들이 찾는 책은 단 한 권이다. 그러나 그 책을 본 이는 아무도 없고 오로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 수많은 책들이 <세계의 책>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내서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현혹한다. 그러니 이 책은 세상에는 없는 책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반디는 반딧불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는 책과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설적인 존재인 책사냥꾼이다. 반디는 검은 목적으로 책을 사냥하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말을 더듬던 그는 책과 함께 하면서 삶의 평온과 안정을 찾았고 그와 책은 하나나 마찬가지였다. 어린시절 자신을 꿈꾸게 한 한 구절 "세상에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책이 있다."(본문 22쪽) 를 떠올리며 그 구절로 시작되는 책을 찾고자하던 헌책방 반디는 어느날 책사냥꾼의 중앙인 미도당으로부터 <베니의 모험>이라는 책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리고 이어서 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반디를 오히려 쫓기게 만든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이어지는 책들을 찾아 다니던 반디는 드디어 비밀의 열쇠를 풀었다. 그러나 그에게 남은 것은 텅 빈 방과 작은 책상 뿐이다. 수많았던 책들도, 사랑했던 친구와 여인도 모두 떠나고 그는 홀로 남아 자신의 일을 적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문장으로도 시작하기에 어려운 이야기였다. 누구의 삶이라고 쉬운 말로 쓸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반디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이기도 하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책들에 대한 소개이다. 그 책들은 실제 있는 책일 수도 있고, 가공의 책이기도 하다. 소설이라는 것이 개연성이 있는 허구라고 할 때, 이 작가의 역량이 새삼 크게 느껴진다.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너무도 생생하여 실제 현실같지만, 어쩌면 이들의 세상은 두 개의 달이 뜨는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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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 - 내 인생 최악의 날들의 기록
로빈 하딩 지음, 서현정 옮김 / 민음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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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라는 책의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의 장르를 짐작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똑똑하고 착하고 사회적 능력이 있으나, 유독 연애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름다운 그녀는 일 관계로 부딪히는 어떤 남자에게 호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지만, 그는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어보이고 오히려 귀찮아 하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와 그녀는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깨닫는다는 그런 이야기라는 것 말이다. 이름하여 '칙릿'이 바로 이 장르이다. 학창시절부터 달달한 연애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고 찾아다니던 나는 한때 '하이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휘어잡았던 그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우리반 아이들이 다 같이 한 권씩 사서 돌려읽었던 그 책들을 아마 우리반에서 가장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의 줄거리는 거의 다 똑같았다. 다만 주인공의 이름과 사는 지역, 그리고 직업 정도가 다를까?  뻔한 스토리와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재미나던지 수업 시간에 몰래 읽다가 선생님께 압수당한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도 혹 교무실에서 읽으신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칙릿'소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어쩔 수 없다. '칙릿'소설과 '로맨스'소설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로맨스'소설의 여주인공이 수동적이고 나이가 어리며, 자신의 능력과 미모를 미처 알지 못하는 애송이라면, '칙릿'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당당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이 있으며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똑부러지게 해 내는 여성들이다.또한 그들이 만나는 남자 역시 나이 많고 능력이 있는 검은 머리의 '로맨스'소설의 그들과 다르게 다양하고 개성이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시작으로 재미가 필요할 때면 찾아읽던 '칙릿'소설들은 나의 작은 즐거움이다.

 이 소설 <남자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는 그런 '칙릿'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게 한다. 우선 두툼한 두께(무려 505쪽)가 나를 흐뭇하게 했다. 한창 재미질 무렵 휙 이야기가 끝나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최소한 두 세번 이상 꼬인 갈등과 그 갈등의 해결과정이 전개될 것이니 말이다. 주인공은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케리,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애를 쓴다.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바로 잡으려 애를 쓰고, 부끄럽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매력을 보인다. 헛점투성이이고 실수투성이인 케리는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케리는 너무나 멋진 남자친구때문에 상처를 입고,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한다. 그 치료사는 케리에게 연애를 대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남자때문에 상처받은 기억들을 모조리 일기로 써 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아이와의 기억, 첫번째 남자친구와의 창피한 기억 등 한 사람의 기억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케리에게 일어났고 그 때문에 연애를 대하는 케리의 자세에는 어딘지 아픈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은 케리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케리는 그 일들이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케리의 모습에서 책을 덮으면서 느끼는 작은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즐거움때문에 '칙릿'을 읽는다. 두꺼운 책이 두꺼운 줄도 모르고 휙휙 넘어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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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의 천사 -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 반려견들의 이야기
리처드 데이 고어.줄리안 게리 엮음, 이선미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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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하기 전부터 직장 생활을 하던 나에게 육아는 참으로 버거운 짐이었다. 지금보다 더 환경과 생각들이 고루하던 시대라 아이를 키우는 것의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었다. 아이가 좀 더 자라서 학교만 다녀도 덜 힘들 것이라는 나의 기대와 바람은 그러나 입학을 하기 전부터 깨어지고 말았다. 한 달정도는 오전에만 간단히 학교 적응을 시키고 하교를 한다지 않는가. 심지어 점심도 안 먹이고 집에 보낸다고 한다. 집이라고 가 봐야 밥을 줄 사람도 없고, 오후내내 돌봐 줄 사람도 없는데, 어쩌란 말인지.......

  우여곡절 끝에 그 어려운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옛 이야기 하듯이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시절이 왔다. 그 긴 시간동안 가장 큰 공헌을 한 주인공은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누나도 아닌 강아지 앨리스였다. 이미 네 살이라는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 된 앨리스의 첫 밤이 떠오른다. 깔아놓은 매트 위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서 그저 떨던 모습. 그 큰 눈에 담긴 두려움과 낯섦에 그동안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가장 큰 반대를 했던 나의 마음이 참 아팠다. 사실 내가 강아지를 원래 싫어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어린 시절 마당에 살던 그 많던 '해피와 쫑과 메리, 로미와 쥬리'들과의 아픈 기억 때문에 또 다른 인연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고 사랑스런 앨리스는 금세 아들아이와 단짝이 되었고, 학교에서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을 함께 채웠다. 강아지를 돌보느라 제 시간에 꼭 집에 돌아오던 아들아이는 이젠 중학생이다. 아직도 앨리스를 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잔다. 심지어 앨리스조차도 그 방을 제방으로 안다.

 이 책 <네 발의 천사>를 읽으면서 우리 앨리스 생각에 책에 나오는 모든 강아지들이 다 사랑스러웠다. 자주 얻어맞아서 주눅이 들었던 제크는 '막대기로 맞으면 점점 더 못 돼질 뿐이었다. 부드럽게 대했을 때 착한 아이가 되었다.' 안내격 키바는 주인의 삶에서 가장 큰 눈과 같은 존재였고, 코요테의 피가 섞인 사샤의 자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진으로 우리에게 드러난다. 쓰러진 주인의 위급함을 알리기 위하여 전화기를 떨어뜨릴 줄 아는 똑똑한 맥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옛 전설에 나오는 충견을 보는 듯했다. 운명처럼 만난 키즈멧과 줄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앨리스가 우리집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되돌아보았고, 도도한 로라 빈포드는 우리 앨리스의 가장 도도한 사진을 찾게 만들었다. 메이지와 허니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는 것으로도 테일러를 웃게 할 수 있었고, 매기와 맥스는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때로는 이 네발의 천사들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핥아주고, 외로운 마음을 채워주고, 고통을 견디는 힘을 주는 동반자가 되곤 한다. 늦은 오후에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앨리스와 대화를 했을 우리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쁜 옷을 입혀주고, 자기 전에는 인사를 한다. 누군가 자신을 키운 것의 팔할은 바람이라 했던가. 우리 아이를 키운 것의 3할은 이 작은 네 발의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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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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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진리를 힘들여 배운 후로 (自從苦學空門法)

평생의 이러저러한 마음 모두 닫았지(鎖盡平生種種心)

다만 시마는 항복받을 수 없어(惟有詩魔降未得)

매양 바람과 달 만나면 한 번 한가로이 읊조리지(每逢風月一閒吟)

                             백낙천, 한음(閒吟)

 

 이 시에서 시인은 불교의 진리(空門法)를 힘들여 배우고서 모든 것에 대한 마음을 버렸다고 한다. 다만 그는 시에 대한 마음만은 버릴 수 없어 바람과 달을 만나면 한 번 읊조린다니, 오로지 이 세상에서 품고 싶은 것 하나가 시를 짓는 마음이라니 얼마나 그 마음이 깊고 귀한지 모르겠다.

 그가 힘들여 공부한 불교의 진리란 아마도 집착을 이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세상 모든 번뇌와 고통의 근원이 욕심일 것이니 말이다. 돈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그리고 혹은 행복에 대한 욕심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육신을 병들게 함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또 욕심을 갖고 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 더욱 안으로 곪아들어가는 게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책 <책탐>에서는 그 탐함을 비웃지 않는다. 책을 좀 읽었다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책에 대한 끝없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은 집안의 모든 벽을 온통 책으로 둘러 놓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남이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다가 급기야는 손을 쑥 내밀어 책의 표지를 보고야마는 무례를 범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갖고 있는 희귀한 책이 욕심나서 밤새 뒤척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 <책탐>은 그런 우리의 무모한 욕심을 전혀 부끄럽지 않게 한다. 오죽하면 '넘쳐도 되는 욕심'이라고 드러내놓고 허락까지 해 주었을까 말이다. '서점에 누워있는 책들보다 등뼈만 드러낸 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손길만 기다리는 책들을 찾아서'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은 대대적인 광고나 입소문에 휩쓸리지 못해서 이름만 간신히 드러내고 있는 책들을 찾아낸다. 희망과 정의와 정체성과 창의적 생각을 담고 있는 화두 스물 여섯가지를 정하고, 각 꼭지마다 두 권의 책을 엮어서 재미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바람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번 수첩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책들을 다 읽으려면 바쁜데, 이 책을 읽으니 한 권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50여권의 책 목록이 더 생겨버린 것이다. 이런 손해나는 장사가 있나 말이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그동안 나의 독서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작은 기쁨도 이 책을 더욱 사랑하게 한다. 또, 결코 한때의 유행이 될 수 없는 책들을 빼곡이 꽂아두고 날마다 꺼내어 읽어보는 기쁨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 보았다.

 25년은 공부하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쓰며 살기를 꿈꾼다는 글쓴이의 소망이 너무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전에 읽은 글쓴이의 책 <나이듦의 즐거움>을 다시금 들추게 할 만큼 그의 작은 소망은 나의 그것과 중첩된다. 단지 작은 차이라면 나는 25년 공부를 했고, 20여년 가르쳤으니, 남은 시간은 읽고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겐 너무 무거운 숙제같이만 느껴지니 말이다.

혹시나 이 책마저 등뼈찾기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은 오직 나만의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기원한다.

 

"영혼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도를 처지지 않게 하는 보석이다.

속도와 풍경을 함께 누리는 그런 삶을 가져다 주는 책탐은 그래서 행복하다. "

 

13쪽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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