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탐 - 넘쳐도 되는 욕심
김경집 지음 / 나무수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불교의 진리를 힘들여 배운 후로 (自從苦學空門法)

평생의 이러저러한 마음 모두 닫았지(鎖盡平生種種心)

다만 시마는 항복받을 수 없어(惟有詩魔降未得)

매양 바람과 달 만나면 한 번 한가로이 읊조리지(每逢風月一閒吟)

                             백낙천, 한음(閒吟)

 

 이 시에서 시인은 불교의 진리(空門法)를 힘들여 배우고서 모든 것에 대한 마음을 버렸다고 한다. 다만 그는 시에 대한 마음만은 버릴 수 없어 바람과 달을 만나면 한 번 읊조린다니, 오로지 이 세상에서 품고 싶은 것 하나가 시를 짓는 마음이라니 얼마나 그 마음이 깊고 귀한지 모르겠다.

 그가 힘들여 공부한 불교의 진리란 아마도 집착을 이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세상 모든 번뇌와 고통의 근원이 욕심일 것이니 말이다. 돈에 대한 욕심, 사람에 대한 욕심, 그리고 혹은 행복에 대한 욕심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하고 육신을 병들게 함을 우리는 안다. 그럼에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또 욕심을 갖고 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 더욱 안으로 곪아들어가는 게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 책 <책탐>에서는 그 탐함을 비웃지 않는다. 책을 좀 읽었다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책에 대한 끝없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은 집안의 모든 벽을 온통 책으로 둘러 놓고 싶게 만들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남이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다가 급기야는 손을 쑥 내밀어 책의 표지를 보고야마는 무례를 범하게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갖고 있는 희귀한 책이 욕심나서 밤새 뒤척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 <책탐>은 그런 우리의 무모한 욕심을 전혀 부끄럽지 않게 한다. 오죽하면 '넘쳐도 되는 욕심'이라고 드러내놓고 허락까지 해 주었을까 말이다. '서점에 누워있는 책들보다 등뼈만 드러낸 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의 손길만 기다리는 책들을 찾아서' 우리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은 대대적인 광고나 입소문에 휩쓸리지 못해서 이름만 간신히 드러내고 있는 책들을 찾아낸다. 희망과 정의와 정체성과 창의적 생각을 담고 있는 화두 스물 여섯가지를 정하고, 각 꼭지마다 두 권의 책을 엮어서 재미나고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는 바람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번 수첩을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의 책들을 다 읽으려면 바쁜데, 이 책을 읽으니 한 권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50여권의 책 목록이 더 생겨버린 것이다. 이런 손해나는 장사가 있나 말이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그동안 나의 독서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작은 기쁨도 이 책을 더욱 사랑하게 한다. 또, 결코 한때의 유행이 될 수 없는 책들을 빼곡이 꽂아두고 날마다 꺼내어 읽어보는 기쁨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해 보았다.

 25년은 공부하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글쓰며 살기를 꿈꾼다는 글쓴이의 소망이 너무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전에 읽은 글쓴이의 책 <나이듦의 즐거움>을 다시금 들추게 할 만큼 그의 작은 소망은 나의 그것과 중첩된다. 단지 작은 차이라면 나는 25년 공부를 했고, 20여년 가르쳤으니, 남은 시간은 읽고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겐 너무 무거운 숙제같이만 느껴지니 말이다.

혹시나 이 책마저 등뼈찾기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안타까움은 오직 나만의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기원한다.

 

"영혼의 속도가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의 삶은 피폐해진다.

책은 삶의 속도를 늦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도를 처지지 않게 하는 보석이다.

속도와 풍경을 함께 누리는 그런 삶을 가져다 주는 책탐은 그래서 행복하다. "

 

13쪽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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