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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 - 내 인생 최악의 날들의 기록
로빈 하딩 지음, 서현정 옮김 / 민음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남자 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라는 책의 제목만 보아도 이 책의 장르를 짐작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똑똑하고 착하고 사회적 능력이 있으나, 유독 연애만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름다운 그녀는 일 관계로 부딪히는 어떤 남자에게 호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끼지만, 그는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어보이고 오히려 귀찮아 하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와 그녀는 서로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깨닫는다는 그런 이야기라는 것 말이다. 이름하여 '칙릿'이 바로 이 장르이다. 학창시절부터 달달한 연애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쓰고 찾아다니던 나는 한때 '하이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휘어잡았던 그 책들을 엄청나게 읽었다. 우리반 아이들이 다 같이 한 권씩 사서 돌려읽었던 그 책들을 아마 우리반에서 가장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의 줄거리는 거의 다 똑같았다. 다만 주인공의 이름과 사는 지역, 그리고 직업 정도가 다를까? 뻔한 스토리와 결말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재미나던지 수업 시간에 몰래 읽다가 선생님께 압수당한 아이들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께서도 혹 교무실에서 읽으신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칙릿'소설에 대한 나의 애정은 어쩔 수 없다. '칙릿'소설과 '로맨스'소설에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로맨스'소설의 여주인공이 수동적이고 나이가 어리며, 자신의 능력과 미모를 미처 알지 못하는 애송이라면, '칙릿'의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당당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이 있으며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똑부러지게 해 내는 여성들이다.또한 그들이 만나는 남자 역시 나이 많고 능력이 있는 검은 머리의 '로맨스'소설의 그들과 다르게 다양하고 개성이 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시작으로 재미가 필요할 때면 찾아읽던 '칙릿'소설들은 나의 작은 즐거움이다.
이 소설 <남자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는 그런 '칙릿'의 즐거움을 맘껏 누리게 한다. 우선 두툼한 두께(무려 505쪽)가 나를 흐뭇하게 했다. 한창 재미질 무렵 휙 이야기가 끝나버리지는 않을 것이고 최소한 두 세번 이상 꼬인 갈등과 그 갈등의 해결과정이 전개될 것이니 말이다. 주인공은 광고회사에 근무하는 케리, 그녀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 애를 쓴다.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바로 잡으려 애를 쓰고, 부끄럽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매력을 보인다. 헛점투성이이고 실수투성이인 케리는 그러나 자신이 모르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케리는 너무나 멋진 남자친구때문에 상처를 입고,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한다. 그 치료사는 케리에게 연애를 대하는 자세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남자때문에 상처받은 기억들을 모조리 일기로 써 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아이와의 기억, 첫번째 남자친구와의 창피한 기억 등 한 사람의 기억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도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케리에게 일어났고 그 때문에 연애를 대하는 케리의 자세에는 어딘지 아픈 구석이 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은 케리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들이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케리는 그 일들이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케리의 모습에서 책을 덮으면서 느끼는 작은 기쁨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즐거움때문에 '칙릿'을 읽는다. 두꺼운 책이 두꺼운 줄도 모르고 휙휙 넘어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