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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틀리
알렉스 플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재 각색한 월트 디즈니의 만화를 보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책 안에 들어있던 정지되었던 인물들이 살아움직이는 모습이 참 좋았던 것이다. 그 중 <Beauty and the Beast>는 그 배경음악까지도 아름다워서 자주 듣고 보았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보면서 노래를 따라부르기도 했지만, 그 안에 숨겨진 외모지상주의적 사고와 봉건적인 관습들은 좀 신경쓰이기는 했다. 아이가 혹시 그 영화를 통해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눈을 배우기보다는 야수가 원래는 왕자였기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나온 <비스틀리>라는 책은 beastly라는 제목처럼 야수의 이야기다. <Beauty and the Beast>의 현대판이라고나 할까? 배경은 뉴욕이다. 소설의 시작은 한 인터넷 채팅방, 그 방에 들어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침묵소녀이거나 회색곰남이거나 뉴욕야수다. 바로 이 뉴욕야수가 우리의 주인공 카일이다. 외모도 돈도 완벽한 카일 킹스버리는 학교 최고의 왕자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이고 여자아이들이 그를 짝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의 외모에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괴롭히는 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 그에게 어느날 도전자가 나타난다. 뚱뚱하고 괴상하게 생긴 켄드라라 바로 그 아이다. 켄드라에게 도전당한 권위를 만회하고 그녀를 괴롭히고자 댄스파티에 함께 가자고 청한 카일은 그녀를 뻥 차주고 망신 줄 생각에 흐뭇하지만, 어쩐지 댄스파티에 가기도 전부터 일이 꼬인다. 가정부 마그다가 난초꽃이 아니라 흰장미를 사온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카일은 그 죄에 대한 벌을 받는다. 그의 못된 행동과 마음씨가 그대로 외모에 드러나도록 변한 것이다. 그의 마법을 풀기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을 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받아야하는 것이다.
동화책 <미녀와 야수>를 그대로 각색한 것이기 때문에 줄거리에 대한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라진 시대 배경 때문에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카일이 변화해 가는 과정이나, 윌과 마그다 그리고 카일, 린다의 어울림이 참 보기 좋았다. 또한 린다의 아버지는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설정이었다. 디즈니 만화에서 미녀의 아버지는 울며불며 딸을 보내지만, 결국은 보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차라리 린다의 아버지 쪽이 더 솔직한 지도 모르겠다.또한 야수로 변한 카일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의 일상들에 대한 꼼꼼한 묘사와 섬세한 심리 표현도 글을 재미있게 읽게 해 주는 큰 힘이 되었다.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은 무엇을 해도 용서를 받는다는 말이 있다. 예쁜 여자가 공부를 잘 하면 얼굴처럼 공부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안 예쁜 여자가 공부를 잘하면 독하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다. 방송에서는 온통 아름다운 여자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고 이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다 예쁘고 다 멋진 사람들만 살 수 없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다들 예뻐야만하는 것이다.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외모에 절망하고 외모를 고치려하고 그리고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단지 지금만의 문제는 아닌 듯 싶고 비단 우리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도 착한 콩쥐는 예쁘고 못된 팥쥐는 못 나지 않았던가 말이다. 뺑덕어미의 외양은 말 그대로 뺀질거리기 짝이 없었고,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어찌 그리 못생겼던지......
그런 점에서 고려한다면 오히려 영화 <슈렉>에서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슈렉이 목숨 걸고 구한 아름다운 공주 피오나는 외모 뿐 아니라 성품과 재능이 뛰어났다. 당연히 슈렉은 피오나와 사랑에 빠졌고 급기야 그녀의 비밀을 알고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외모와 내면의 조화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긍정적이지 않은가. 슈렉은 이미 그녀를 사랑했으므로 그녀의 변신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어느 정도 외모에 대한 호감이 중요하기는 하겠지만, 오래 지나다보면 그 사람이 잘 생겼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흐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가족이 예쁘고 잘 생겨서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단지 이 사실을 깨닫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이런 이야기가 버텨나가는 틈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