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비틀 Mariabeetle - 킬러들의 광시곡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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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읽었던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 슬럼버>는 비틀즈의 노래를 주 선율로 한 아름다운 환상같은 느낌이었다.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건들은 모두 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음모의 일부였다. 결국 한낮의 졸음과도 같았던 그 환상은 내게 “헤어진 비틀즈의 멤버들이 모여 만든 노래 <골든 슬럼버>가 이 소설의 제목인 것은 떠나 온 시간 속에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앞에만 있음을, 때로는 돌아보고 싶더라도 그저 멀리서 일 뿐임을 말한다. 비록 가야할 그 길이 달아나는 길일지라도.”(골든슬럼버 리뷰 http://blog.naver.com/echojaj1/55971776)라는 생각을 남겼다.

  “데뷔 15주년 결산, 혼신의 작품! <골든슬럼버> 이후 3년 만의 대형 신작 장편!” 이라는 띠지를 달고 나온 소설 <마리아비틀>은 이사카 코타로의 묘한 매력을 알고 있던 내게 충분히 관심이 가는 작품이었다. 치밀한 사건 전개, 섬세한 묘사, 매력있는 인물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춘 대형 소설을 만날 생각에 읽기도 전에 기대로 설렜다.

  소설은 됴쿄역에서 시작된다. 허점과 실수투성이의 알콜 중독자 기무라 유이치가 소음기와 권총을 휴대한 채 신칸센에 오른다. 그는 오랜 세월 어둠의 일을 했지만, 아들이 태어난 이후로 경비일을 보면서 한가롭게 지냈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알콜 의존증이지만, 기무라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기로 했다. 어리기만한 와타루에게 몹쓸 짓을 한 그 악마같은 놈을 처리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목표가 오늘 도쿄에서 출발해 모리오카로 가는 신칸센 7호차에 타고 있었다. 그 악마가 바로 왕자이다. 오똑한 콧날의 귀한집 도련님처럼 생긴 왕자는 지금 중학생이다. 머릿결은 부드럽고 체구도 가냘픈 그의 외모는 어른들에게 동정심과 보호 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왕자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최후의 인간성까지 상실하는 모습을 즐긴다. 태어날 때부터 악의 냄새를 풍기는 그야말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악마 그 자체이다. 기무라는 그 왕자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뒤에서 본 왕자는 그저 어린 중학생처럼 보여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공교롭게도 그 신칸센에는 콤비 살인 청부업자 레몬과 밀감이 타고 있다. 어린이처럼 ‘꼬마 기관차 토마스’를 좋아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관차의 유형대로 분류하기 좋아하는 낙천적이고 가벼운 레몬과 심도 깊은 소설을 좋아하고 차분하고 진지한 밀감은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파트너이다. 그들은 업계에서도 일 잘 처리하고 인정사정 안 보는 강한 사람들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맡은 일은 유력한 검은 손인 미네기시의 납치당한 아들을 구하고, 그들에게 몸값으로 주었던 돈가방까지 찾아오는 일이었다. 그런데, 레몽의 불찰로 돈가방은 사라지고, 트렁크를 찾으러 다니던 사이 미네기시 도련님마자도 시체로 발견된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도련님과 나란히 앉아서 여행을 한다. 범인도 찾고 트렁크도 찾아야하는 그들은 마음이 초조하다. 전형적인 불운의 대명사 무당벌레 나나오도 그 기차에 동승했다. 나나오의 임무는 간단하다. 신칸센에서 트렁크를 찾아 다음역에서 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가장 나쁜 쪽으로 진행되었으므로 당연히 나나오는 다음 역에서 내리지 못했다.

  소설 속의 이들은 시속 200킬로미터의 고속 열차 안에서 서로를 피해 달아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이 같은 것임을 알게 된 나나오는 레몬과 밀감에게 동맹을 제안하지만, 그들은 쉽게 남을 믿지 않는 성격이다. 게다가 기무라를 맘대로 조종하게 된 왕자마저 그들이 찾아다니는 트렁크에 관심을 보인다.

  무려 588쪽이나 되는 소설의 거의 후반부에 이를 때까지도 도대체 누가 왜 미네기시의 아들을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아서 더욱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또 같은 트렁크를 가져오라는 일을 양쪽의 업자들이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는다.

  복잡하게 꼬이는 사건과 곳곳에 깔아 놓은 복선들은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살인 청부업을 하는 인물들이 보이는 귀여운 매력과 단정한 언행, 실수투성이의 모습들도 유쾌했다. 그저 시골 노인네이기에 왕자가 깔보고 괴롭힌 기무라의 부모가 펼치는 반전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는 것을 소설의 후반부에서야 깨달았다. 그러나 한없이 악하기만한 왕자의 캐릭터는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감정이 결여된 이기적이고 차가운 인물, 게다가 영리하기까지 한 그 캐릭터는 타인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사람이란 그저 다루기 쉬운 어리석은 동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근원적인 ‘악’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다만 <골든슬럼버>의 느낌을 기대한다면 조금은 서운할 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 <마리아비틀>은 어딘지 좀 더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다양하지만 내용은 좀 더 단순한 그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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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연습
아가타 투진스카 지음, 홍은주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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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이 생에 꼭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은 나라, 티벳에는 "내일이 먼저 올 지, 내생이 먼저 올 지 아무도 모른다." 라는 의미의 속담이 있다고 한다. 늘 알고 있는 상식처럼 생각하지만, 가끔씩 이 말을 떠올려 볼 때면 주변이 서늘해지면서 허무의 경지를 이해할 듯한 느낌이 들곤한다. 그러니 말로만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고 모든 만남이 헤어짐의 시작이고 언젠가는 이 세상 모두와 헤어져야하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나의 일로 체감하기엔 이 삶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차고 넘치는 모양이다.

  이 책 <상실 연습>을 읽으면서 나는 그 동안 언제 찾아올 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한 가지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두고 내가 떠나는 것만 상상했지, 내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모두를 두고 떠날 것을 상상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떠난 후에 가는 곳이 어디인 지는 모르겠지만,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슬픔의 울림은 그 형태가 다를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남겨질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는 것은 내가 그 만큼 나를 중심으로만 사고를 한다는 한 증거가 아닐까 싶어서 헛웃음이 났다.

  이 책의 지은이는 작가이다. 많은 글들을 쓰고 독자를 만나고 학생을 가르치고 또 배우는 사람이지만, 그녀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영원을 꿈꾸고 있었다. 대륙을 넘나들며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살 생각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찾아 온 소식은 사랑하는 그 사람의 뇌종양 소식이었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지적이며 토론을 좋아하던 사람의 뇌에 생긴 글라이오블래스토머 멀티폼(아형성신경교아종)은 운에 매달려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단 몇 달 만에 사람을 죽인다는 병이었다.(본문 7쪽) 한 달 새 두 번이나 머리를 여는 수술을 하고, 그 사이 두 번이나 결혼식을 치렀지만, 그의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고 그들은 더 이상 함께 와인을 마시며 토론을 할 수 없고 호숫가에서 낚시도 할 수 없다. 폴란드에서 생활하던 그녀는 캐나다로 옮겨서 그의 병간호를 한다. 더 이상 그녀는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다. 그녀가 하는 기록이란 오로지 사랑하는 그 사람의 병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의 모든 사회적 삶을 버리고, 잠을 거의 자지 않고 병간호를 하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변하는 모습에 상실감으로 상처 받고 가슴 아파한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그녀에게 찾아오는 위안이란 헨릭의 병세가 호전되어 짧은 여행을 하고, 잠시나마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깊은 사색과 삶에 대한 천착을 하는 작가인 아가타 투진스카는 사랑을 잃는 과정을 처절하고도 섬세하게 기록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헨릭의 어린 시절을 함께 추억하고, 헨릭의 가족과 친적들과 이별을 준비한다. 그들이 함께한 시간들을 추억하고, 서로의 얼굴울 쓰다듬으며 이별을 준비한다.

  새삼 이런 생각이 든다. 전혀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맞는 이별과 이렇게 긴 시간동안 아픔을 겪으며 하는 이별 중 어떤 것이 덜 아플까? 전자는 준비없이 맞이하는 이별이므로 이별이 오기까지의 가슴 아픔이 없겠지만, 헤어지고 난 뒤의 아쉬움이 사무칠 것이다. 후자는 충분히 준비를 할 수 있으므로 그 시간동안 많이 아플 테지만, 그만큼 후회가 덜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떤 헤어짐이든지 그 아픔의 총량은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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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의 엄마에게 - 아주 특별한 입양 이야기
이정애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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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진하고 깊고 질긴 사랑은 어미의 새끼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아무리 교양있고 냉철한 여인이라도 눈 앞의 아픈 자식 앞에선 울부짖을 수 밖에 없는 게 바로 엄마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식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고 자식 앞에선 때론 이성적인 판단력마저 상실한 여인의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고 경험했던가. 그럼 이 맹목적인 사랑의 기원은 어디일까? 자식을 열달간 품었던 어미의 뱃속일까? 아니면 물고 빨고 씻기고 먹이고 재우며 온갖 고되고 험한 시간들을 보내도 아이의 방긋 웃는 모습에 싹 잊혀지고 말던 시간들의 총합일까?

 여기 이상한 제목의 책이 있었다. <내 딸의 엄마에게>라니 내 딸의 엄마면 나 아닌가 말이다. 아니란다. 글쓴이가 세상의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딸아이에겐 엄마가 또 있단다. 태어난 지 사흘만에 글쓴이의 품에 안긴 딸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겪은 이별에 대한 보답인지 엄마와 아빠, 오빠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다. 심지어 신의 은총인지 모유를 먹을 수도 있었다.

 첫 아이를 길러주시던 친정어머니께서 아기가 잘면서 보이는 예쁜 모습들을 다 놓치고 마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아마도 이 엄마의 마음이 그랬던 모양이다. 사랑스럽기만한 딸아이의 낳은 엄마가 아이가 그리워 마음의 병이 깊다는 소리를 듣고도 차마 아이를 떼 놓지 못하고 울던 그이는 이 아름다운 행복의 시간을 놓치고 만 딸아이의 낳은 엄마에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깊은 고민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아이를 입양하고도 가끔씩은 주위의 반응에 당황하는 자신의 모습과 우리 사회의 모습에서 그이는 딸아이가 나중에 받을 상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이는 가족과 자신이 딸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이가 나중에라도 알기를 원했다. 이 넓은 세상에 혹시나 자기 혼자라는 생각을 할까 걱정스러워 이 길고 긴 편지를 쓴다.

 그리고 또 그이는 아이의 엄마가 당당하게 살아주기를 기원한다. 아직은 어린 그 엄마가 어서 빨리 마음의 병을 털고 근사한 여인으로 성장해서 아이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입양에 대한 시선은 여러가지다. 겉으로는 다들 좋은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게 선뜻 실천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가끔씩 사람들은 자기 속으로 난 새끼때문에도 고통스럽지 않은가 말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그렇게 말한다. 부모 자식은 전생에 빚쟁이 관계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생에서 한 평생 그 빚을 갚게 한다고. 아마도 입양으로 만나는 부모 자식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 어쩌면 그보다 더 진한 인연의 결과물일 지도 모른다. 이 몸이 아니라 다른 몸을 빌어서 이 세상에 온 그 아이가 기어이 이생에서 부모 자식의 연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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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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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피서는 무엇일까? 아름다운 바닷가도 좋고, 울창한 숲 속의 계곡도 좋다. 또 하나 더 한다면 시원한 수박을 앞에 두고 선풍기에 머리카락 날리면서 미스테리 소설을 읽는 것도 있다. 사람에게 치이고, 돈에 치이면서 스트레스만 받을 양이면 맨 마지막 피서법이 어쩌면 가장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남들도 다 그런 생각인지 요즘 유난히 미스테리, 스릴러물이 많이 출판된다. 그저 행복할 뿐이다.

 나는 평생 다양한 소설들의 세계를 접하면서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유난히 북유럽 쪽의 소설에 관심이 많이 간다. 지난 몇 해 동안 나의 여름을 달구었던 <밀레니엄> 시리즈도 그렇고, 페터 회의 작품도 좋아한다. 어딘지 늘 서늘해 보이는 소설 속의 분위기는 올해같이 끈적거리는 더위에는 맞춰놓은 듯 어울린다. 그들이 사용하는 크로네 따위의 돈 단위도, 어딘지 모르게 차가운 바람을 연상케 하는 그들의 거리 이름도, 그리고 주인공 이름 역시도 낯설고 매혹적이다.

 이 소설 <헤드헌터>에는 두 명의 헤드헌터가 등장한다. 먼저 주인공은 로게르 브론이다. 그는 아주 실력있는 헤드헌터로 그의 손에 들어온 사람들은 틀림없이 가장 멋진 자리에 올려놓고야 만다. 장신이 당연한 노르웨이 사람치고는 단신인 168센티미터의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아내가 있다. 그에게 있어서 아내는 정말 분에 넘치는 존재였다. 그는 그 보답을 하느라 정말 힘이 들지만, 아내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더러운 일도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트라우마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아이를 원하는 아내에게 고급 화랑을 선물하고 그 화랑의 운영 자금을 대어 준다. 값비싼 집과 차, 멋진 화랑은 그의 사회적 품격을 높여주지만,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유지하느라 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리하여 최고의 헤드헌터인 그에게는 또다른 은밀한 직업이 있다. 그에게 직장을 의뢰하는 의뢰인들과의 면접에서 빼 낸 정보로 그림을 훔쳐 내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절호의 기회가 온다. 최고의 조건을 가진 클라스 그레베가 그다. 전직 유명 회사의 최고 경영자였던 클라스에게 딱 안성맞춤인 좋은 자리가 있는데다 그에게는 루벤스의 명화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클라스와의 만남은 그를 당황하게 한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던 의뢰인과의 면접에서 클라스는 로게르의 수를 미리 다 읽고 선공을 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클라스에게 어딘지 모를 미움을 느끼던 로게르는 그의 아파트에 그림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그 이유를 찾아낸다. 아내의 잃어버린 휴대폰을 그 침실에서 발견한 것이다.

  직업을 찾아주는 그림 사냥꾼 헤드헌터인 로게르와 로게르의 머리를 사냥하고 말겠다는 클라스의 헤드헌팅의 대결은 끝까지 그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들의 싸움은 온갖 책략과 두뇌의 대결이면서 처절하고 잔인하다. 아름다운 디아나와 순정한 여인이었던 로테의 배신은 로게르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뛰어난 사냥꾼인 클라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오히려 그를 함정으로 몰아가느라 로게르는 최후의 힘까지 끌어낸다. 그에게서 그런 깊은 힘을 끌어낸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그런 힘을 준 것일까? 아니면 생명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을까?

 <밀레니엄> 이후에는 스티그 라르손의 작품이 더 이상 있을 수 없다는 아쉬움을 요 네스뵈가 치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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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찰리 피스풀 개암 청소년 문학 11
마이클 모퍼고 지음, 공경희 옮김 / 개암나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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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의 시작은 우울하기만하다. 운명의 아침이 밝을 것을 두려워하며 토마스 피스풀 일병은 “이제 그들은 가버리고 마침내 나 혼자다. 나한테는 앞으로 꼬박 하룻밤의 시간이 있고, 나는 단 한순간도 헛되이 쓰지 않을 작정이다. 잠을 버려서도 안 된다. 꿈을 꾸며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매순간이 진짜진짜 소중하니까.”(7쪽)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살아온 18년간의 세월을 기억해 내려 애를 쓴다. 토마스에게 내일 아침이란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을 그런 시간이기 때문이다.
   “진짜 멋진 시계라면 시간을 만들겠지. 그러다가 시계가 멈추면 시간 자체가 멈춰야 될 거야. 그러면 이 밤이 끝나지 않고 아침도 오지 않을 수 있으련만. 찰리형은 우리가 여기서 빌린 시간을 산다는 말을 가끔 했다. 난 더는 시간을 빌리고 싶지 않다. 내일이 오지 않도록, 새벽이 밝지 않도록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121-122쪽)
   읽는 내내 찰리와 토모의 아름다운 시절들을 함께 하면서도 토모의 그 우울한 밤의 원인을 찾았다. 각 장마다 밤의 시간들이 명시되고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나는 찰리와 토모, 빅 조와 몰리와 함께 아름다운 대령의 마을에서 살기 시작했다. 10시 5분, 지금 토모는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간다. 학교는 두려운 곳이었지만, 형 찰리가 있고 다정한 몰리가 있어서 버틸 만 했다. 그러나 때때로 아버지가 큰 나무에 깔리던 모습이 떠오를 대면 토모는 슬프기만 했다. 11시 20분 전, 어렸을 때 아팠던 빅 조는 <오렌지와 레몬>이라는 노래를 잘 부른다. 사람들은 빅 조를 놀리기도 하지만, 토모와 찰리에게 빅 조는 너무 소중한 형이다. 그들 가족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그들이 빅 조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하러 다니는 엄마 대신 그들을 돌보러 온 늑대 할멈은 나쁜 사람이다. 11시 15분, 토모와 찰리, 몰리는 삼총사가 되어 모든 것을 함께 했다. 토모는 찰리와 몰리만 있다면 언제나 안전하고 행복했다. 자정 10분 전, 먹을 것을 구하려고 대령의 당에서 물고기를 잡던 찰리와 토모는 벌로 대령의 집 개우리 청소를 하면서 아름다운 사냥개 버사를 사랑하게 된다. 찰리형은 자라서 대령의 집에 개를 돌보러 다니고, 혼자 학교에 남은 토모는 외롭기 짝이 없다. 몰리와 찰리가 이젠 멀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었다. 대령은 자기 마을 젊은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기를 원하고 찰리형은 전쟁에 나가기로 한다. 아직 나이가 어렸지만, 토모는 형을 따라간다.
  “결국은 형과 떨어져 지낸다는 건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어서였던 것 같다. 우리는 평생 함께 살았고 모든 것을 나누었다. 몰리에 대한 사랑까지도. 난 형이 혼자 이 모험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118쪽)
   추위와 굶주림, 젖은 채로 입고 자는 잠까지 형제는 모든 고난을 함께 한다. 상사들은 지독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은 왜 먼저 죽을까? 2년 여의 전쟁을 겪으면서 토모에게 남은 것은 이 밤이었다. 토모가 원하지 않는 아침은 서서히 밝아오고 찰리형은 늘 그렇듯이 빛나는 용기와 자존심 그리고 옳은 일에 대한 단단한 의지를 가지고 그 아침을 기다린다. 토모는 내일 아침이면 내어 놓아야할 영혼의 일부를 기억하고자 밤새도록 그 추억을 되새긴다. 낚시와 웃음과 빅 조의 <오렌지와 레몬>을 그리고 몰리와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찰리와 함께 하는 이 삶의 순간을 느끼기 위해서 “내 평생의 어느 날보다도 오늘 밤, 나는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다.‘(8쪽)고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에서 1918년 사이 영국과 영연방 병사 290명 이상이 탈영과 비겁한 행위 때문에 총살을 당했으며, 두 명은 초소에서 잔다는 이유만으로 죽었다”(214쪽)고 소설은 덧붙인다. 그들의 나이는 대체로 18세 안팎이었을 것이다. 찰리는 17세에 토모는 16세에 전쟁에 참여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아직 덜 자란 아이들이고 전쟁이라는 끔찍한 경험에 처음 노출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 역시 애송이들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단지 ‘비겁한 행위’라는 애매한 이유로 많은 병사를 총살한 것은 군대의 사기 진작을 위한 일일까?
   문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이 소설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이미 100년 전이지만, 이 소설은 그 당시의 가슴 아픈 젊은이들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또한 이것은 비단 남의 나라, 다른 시대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문학이 세상에서 해야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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