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맹세코 나는 책을 빨리 읽는다.
어린 시절에 "속독"이라는 게 유행이었다.
책을 빨리 읽어서 좋을 게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만, 그 학원은 유명해지는 바람에 온 동네 아이들이 몽땅 다녔다. 나만 빼고.
나는 다니지 않아도 책을 빨리 읽었다.
지금도 가벼운 책은 한 두 시간이면 넉넉히 읽는다.


그런데, 이 책 <바람과 그림자의 책>은 읽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으니 나의 독서 역사상 하나의 의미있는 기록이 될 것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한 다섯권의 책을 읽기도 했고 나는 직장에 다니는 주부이다. 시간이 없는 편이라는 뜻이다.
그런 것을 감안한다 해도 시간이 너무 걸린다.
게다가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588쪽의 두툼한 분량이고 글자체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책들과 그 크기가 약간 다른 것도 맘에 든다.
범죄 스릴러물에, 잃어버린 희곡의 행방을 찾는데다가 중세의 편지가 등장한다. 아름다운 책 제본사가 과거를 감춘 채 등장하고 뉴욕의 맛있는 식당과 유명하고 부유한 변호사가 나오는데, 그는 여자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
이 얼마나 완벽한 조합인가 이 작가 마이클 그루버는 어쩌면 나의 성향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로만 모아서 책을 써 주시다니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리고 결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세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이 숨겨진 장소를 암시하는 중세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손에 넣게 된 크로세티는 아름다운 캐롤린의 소개로 벌스트로드 교수를 만나고 세익스피어 전문가인 그에게 헐값에 편지를 넘긴다. 단, 그는 암호 편지만은 남겨둔다. 그리고 캐롤린은 사라진다. 크로세티는 캐롤린의 행방을 찾던 중 그녀의 과거 중 일부를 알게된다.
한편 갱단을 아버지로 둔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 제이크 미쉬킨은 벌스트로드에게 그 문서를 받고 그의 사건을 위임받는다.
그러나, 벌스트로드는 시체로 발견되고 그는 벌스트로드의 조카 미란다 켈로그를 만나다. 그녀에게 빠져들지만 그녀는 브레이스거들의 편지를 갖고 종적을 감춘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 갱단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 이미 자기 가정의 문제로 복잡하던 그는 크로세티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와 함께 세익스피어의 미발표 희곡을 찾으로 영국으로 간다. 이 모든 사건의 뒤에는 제이크의 친구 미키 하스가 있다.

 

방대한 분량답게 수 많은 등장인물이 나타나고 그들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간다.
등장인물 모두의 목표는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찾는 것.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찾아낸다.

 

크로세티와 제이크의 입장에서 교차로 서술되는 사건과 편지.
세 시각으로 읽어가는 소설이 결코 쉽지는 않았으나, 그 끝은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그 존재 여부조차 의심되는 윌리엄 세익스피어.
그는 진정 위대한 극작가임에는 틀림없다.
그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후손들은 있지도 않은 그의 작품으로도 이렇듯 즐거운 소설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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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 사진하는 임종진이 오래 묻어두었던 '나의 광석이 형 이야기'
임종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 그의 노래를 듣는다.
이렇게 비내리는 오후엔 그의 노래는 피해야할 목록이건만 어쩔 수 없는 끌림으로 나는 우울의 바다로 들어간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오늘 밤도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바다에서 나는 나를 잃고 헤매어 다닐 것임을 예감한다.
어찌 이다지도 슬픈 목소리인가.
진정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까?

 

너무도 순수한 사랑의 노래 <널 사랑하겠어>는 나의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했으며,
서른이 되기 전엔  <서른 즈음에>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서른이 되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나이때 서른이란 너무도 아줌마스러웠으므로.
하지만 그는 내가 서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그가 떠나고 나는 그 다음해에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 듣는 <서른 즈음에>는 그저 고통이었다.
나는 서른이라는 나이를 감당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임종진과 같은 나이인 나는 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이 <서른 즈음에>란 노래, 정작 서른이 될 때보다 마흔 즈음이 되어서 속 깊이 와 닿아버리니 이게 웬일입니까"

                    - 본문 119쪽
채 마흔을 살아보지도 못한 그는 마흔을 살았다면 어떤 노래를 만들었을까?
정작 당신도 마흔엔 이 노래가 실은 마흔 즈음에 부를 노래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까?

 

그의 알 수 없는 죽음은 나의 젊은 시절의 큰 아픔이었다.
그의 노래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이제야 뼈 속 깊이 이해하는데, 그는 왜 떠났을까.
아니, 나는 왜 그가 우리 곁에 있을 그 당시에 그를 사랑하지 못했을까.

 

이 책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는 그저 흑백 사진이다.
그를 사랑한 사진가 임종진은 많이도 그를 담았다.
참 부러운 사람이다.
게다가 내가 사는 이 곳 사람인 듯하니 더욱 더 부럽다.
임종진씨가 그를 우연히 만난 대흥동 동사무소 앞 길은 내가 자주 다니던 그 길이 아닌가.
93년 그 때 나는 왜 그 자리에 없었지?
작가가 그를 따라 들어간 전면이 통유리로 된  그 찻집은 혹시 가끔씩 들르던 그 집, 가수가 주인이던 그 까페 아니었을까?

 

너무도 무방비한 상태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의 사진들이 참으로 마음에 닿는다.
상처받기 쉬운 여리디 여린 그 프로필은 고통이 그를 어디로 몰고 갔을까 하는 의문을 쉽사리 갖게 한다.
온통 흑백 사진인 책에서 가끔씩 튕겨나오는 컬러 사진은 오히려 생급스럽게 나를 놀라게 한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쓰던 그.
변해가는 너와 나의 모습에 고통스러워하던 그.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수 밖에 없던 그.
지쳐버린 내게 일어나라고 고함을 치던 그.
그의 순수함을 사랑한다.
마흔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리라던 그가 살아서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보았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언제 죽을지 알수 없는 인생 뭔가 새로운 일이 있겠거니 하고 기다리면서 행복해하련다"

            - 본문 74쪽

그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서 떠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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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
카트린느 벨르 지음, 허지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평소에 단 음식은 거의 안 좋아하지만, 아주 피곤하거나 짜증이 나는 날이면 나는 뜨거운 커피에 초콜릿 한 조각을 넣어서 마신다.
이 커피를 해피 메리지 커피라고 한다는데, 그 이름과는 무관하게 달디달고도 쓴 커피는 나의 피곤을 잠시라도 잊게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그 제목이 참 맘에 든다.
이 책 <초콜릿을 만드는 여인들>은 그 두께에 비해서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1부의 배경은 프랑스의 수녀원이다.
구조적이고 누적된 재정난에 시달리는 생줄리앙 수녀원의 수입원은 초콜릿이다.
외부인 그 누구도 만드는 비법을 알지 못하는 줄리앙 수녀원의 초콜릿이 초콜릿으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황금 카카오 상을 수상하면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이는 이 수녀원은 그 상금으로 수녀원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할 수 있게된 것이다.
그러나, 유명 식품 업체인 MMG사는 생줄리앙 수녀원의 초콜릿 제조 비법을 알아내고자 고군분투한다.
줄리앙 수녀원의 초콜릿의 비법은 바로 그 원료에 있었다.
콜롬비아의 산골마을 리오코르도에서만 한정량으로 생산되는 그 카카오가 바로 비법이었던 것이다.
오래전 이국의 딸이 이 수녀원에 들어오면서부터 공급받던 그 카카오를 계속해서 얻으려면 10년에 한 번씩은 수녀가 직접 그 마을을 찾아가서 경매에 참여해야한다는 것이 그 조건이었다.
수녀원에서는 황금 카카오 상의 상금으로 두 수녀를 콜롬비아로 보낸다.
안느와 자스민.
두 수녀는 콜롬비아로 출발하지만, 수녀원 초콜릿의 비밀을 원하는 MMG사의 제레미 페른바흐의 방해로 엉뚱한 고장으로 보내지고 만다.
여기부터는 2부로 배경은 아름답고 불안한 콜롬비아.
두 수녀는 마약상을 만나기도 하고, 산사태를 겪기도 한다.
그리고 광부를 대상으로 쇼를 하기도 하면서 리오코르도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면서 자신들의 능력과 성격을 시험하기도 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드디어 그녀들은 온갖 술책에도 불구하고 카카오를 손에 넣고 수녀원으로 무사히 귀환한다.

그리고 그 긴 모험 후에 그녀들은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는다.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해프닝들은 그녀들에게 인간의 따뜻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작가가 전직 배우라서인지 소설 전체의 묘사는 마치 영화를 보는듯 실감났다.
콜롬비아에서의 모험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이 석연찮음은 무엇일까?
스토리의 전개가 어쩐지 조금은 어색하고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두 여주인공의 과거를 드러내는 부분에서의 작가의 지나친 개입이나, 안느가 토마스에게 돌아가는 부분의 어색함은 단지 나만의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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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의 명저
김소연 지음 / 삼양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베아트리체 첸치, 귀도


이 책을 읽고 만난 가장 큰 아름다움이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책을 권할 때 항상 원서를 완독하는 것이 진정한 독서라고 강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고전을 원본으로 읽지 않고 흔히들 부르는 '다이제스트'판으로 읽고서 잘난 체하는 이들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작품이란 작가의 영혼의 표현이므로 우리는 그 작가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원작을 읽어야함을 강조했었다.
물론 그래서 나는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세계적인 작품들이 많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 <세계의 명저>는 그러한 나의 편견을 다시금 재고하게 하는 책이었다.
단순히 명저의 줄거리만을 나열한 책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나는 이 책을 신뢰한다.
세상의 모든 남녀노소들을 명작으로 초대하고픈 욕심에 이 책을 만들었다는 저자의 서문처럼 이 책은 우리를 학창 시절의 도서관으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작가의 욕심처럼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과 그 작품이 훗날의 다른 작품들에 끼친 영향까지도 소개해서 더 큰 문화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특히 나는 이 책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그림을 발견했고, 내가 모르는 그림의 세계의 매력에 감탄하고 있다.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작품부터, 사랑의 아름다움과 반전의 묘미를 찾는 작품들과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찾는 작품, 다른 차원의 세상, 모험, 풍자와 소외된 사람들, 현실에 대항하는 인간의 의지, 그리고 전후의 허무를 다룬 잃어버린 세대의 작품들까지 45편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중의 대다수는 이미 우리가 다들 알고 읽은 작품들이었다.


특히나 감명 깊은 작품으로 기억하는 레마르크의 <개선문>은 그 책을 읽던 당시로 나를 이끌어 행복한 시간들을 갖게 하기도 했다. 책장에 꽂힌 <개선문>을 다시 한번 쓸어보고 라비크의 우울한 얼굴과 칼바도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또한, 나는 흔히 사실주의를 이야기할 경우에 스탕달의 이야기를 예로 들곤 했다. <적과흑>을 읽을 당시 스탕달이 표현한 그 한 구절에 매료된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후학들에게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인용을 한다.

그 문장을 이 책에서 찾아내었을 때의 기쁨이라니.

다른 누군가도 나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의 감동이었다.
"소설이란 세상의 모습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거울로서 비록 추악한 얼굴이나 더러운 거리를 비추더라도 그건 거울의 죄가 아니다." - 본문 281쪽
나는 예전의 노트를 찾아내었다.
내가 읽은 문장은 "소설이란 큰 길을 따라서 이동하며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눈에 푸른 하늘을 비쳐보이기도 하고 도로의 진창을 비쳐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거울을 지고 다니는 사람은 여러분으로부터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거울에 진창이 비친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거울을 비난한다. 그보다는 진창이 있는 큰 길을 비난하시라. 아이, 오히려 물이 괴어 진창이 되도록 내버려둔 도로 감독관을 비난해야 하리라."  1992년 6월 11일 목요일로 메모되어 있다.
이 한 구절은 그야말로 금언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어둑한 도서관에 앉아서 책 냄새를 맡고 싶다.
일주일에 두 권은 너무 부족해서 날마다 도서관을 드나들던 그 시절.
읽고 싶었던 책을 가슴에 끌어 안고 도서관 문 밖을 나서던 그 상쾌하고도 두근거리던 그 심정이 그대로 되살아 난다.

 

인간이란 어쩌면 너무나 행복하다.
돌이켜 생각할 과거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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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벗겨줘 - 빨간 미니스커트와 뱀피 부츠 그리고 노팬티 속에 숨은 당신의 욕망
까뜨린느 쥬베르 외 지음, 이승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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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나는 어떤 옷을 입고 출근했었나?
한 주의 중반 쯤이라서 오늘은 참 피곤하게 시작한 아침이다.
가뜩이나 연 이틀 숙면을 취하지 못한 이유로 아침엔 짜증이 난 상태였다.
실은 좀 점잖은 옷차림을 해야했는데,
통이 넓은 청바지에 얇은 스웨터를 입었다.
그리고 맘에 드는 카디건을 입어서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이 카디건은 우연히 구매하게 된 나의 잦은 충동 구매의 증거물이다.
그러나, 맘에 꼭 드는 디자인에 평소에 필요하던 건데 세일까지 한다면 사야하는 게 아닐까?
소매가 넓고 적당한 길이감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나 접히는 깃이 맘에 드는 디자인이다.
이 옷을 입으면 어딘지 따스한 보호를 받는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옷을 좋아한다. 옷장 가득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로 채워져 있어도 주말엔 쇼핑을 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옷들로 가득한 백화점은 나에겐 행복의 샘터이다.
읽을 거리를 사랑하는 나는 갖가지 쇼핑 정보지도 꼼꼼하게 표시를 하면서 읽기도 한다.
어떤이는 그런 나를 보고 공부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자,
나는 어떤 심리를 갖는 사람일까?
혹시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따뜻한 사랑을 부족하게 받아서 그 상처를 지닌 사람일까?
아니면 욕구불만이나 애정 결핍으로 쇼핑 중독에 빠진 사람은 아닐까?

 

아침마다 별 생각없이 꺼내어 입게 되는 그날의 의상들은 실은 그 주인의 심리를 반영한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 친한 친구와의 갈등이나, 어린 시절부터 다져온 자매에 대한 경쟁심들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몸이 아프다거나 다른 일로 신경쓸 게 많아서 옷을 대충 입었다는 것은 어쩌면 어설픈 핑계인 것일지도 모른다.

 

제목도 발칙한 이 책 <나를 벗겨줘>는 옷차림으로 알아보는 숨겨진 그 안의 자아를 찾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두명의 정신 의학 전문의가 쓴 이 책은 추가 연구까지 끌어냈다고 하니, 옷이라는 게 단순히 몸을 가리는 도구만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19개의 옷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그것에 대한 분석이 이 책의 내용이다.
엄마의 의사대로 옷을 입던 아기때부터 어린이 시절의 경험들과 사춘기에 처음 만나는 비밀스런 아름다움의 란제리에 얽힌 소녀의 여성성의 발견 과정들, 어른인 엄마의 아름다움을 질투하는 소녀와 옷차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반항기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10대의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새겨 읽은 만한 좋은 내용들이었다.
진정한 자아를 웨딩드레스를 바꿔입음으로써 쟁취하고 기분전환의 방법으로 작은 변신을 시도하거나 가끔은 깜짝 놀랄 옷차림으로 자신을 바꿔보는 새로움을 시도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과  부부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견해들은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때로는 지금은 빈자리인 그 곳을 떠난 이의 옷으로 채우는 행동, 그리고 그 옷을 다른 사람에게 입히는 행동은 사랑의 옮겨짐이라고 한다. 죽은 할아버지의 스웨터를 가끔씩 입는 그녀는 어떤 마음일 것인가? 그리고 그 옷을 남자친구에게 입으라고 한다면?


옷은 어쩌면 옷 그자체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것은 누군가가 입었을 때 하나의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게에 걸려있는 아름다운 옷은 그저 천 조각일 뿐이지만, 사람이 그것을 입었을 때는 그 사람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무엇인가로 탄생하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안에 이리도 많은 욕망과 상처와 내밀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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