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나 시인의 글 모음인 줄 알았더니 문학 외에 언론이나 철학 평론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는 사람들의 글 모음이다. 덕분에 뒤로 가면서는 예상치 않은 난해한 용어들로 좀 고생을 했다. 유시민의 책을 읽은 후로는, 같은 말을 좀 더 쉽게 쓸 수 있는데도 어려운 용어와 만연체 문장을 사용한 글을 보면 거부감이 먼저 든다. 심지어 김훈의 글에 대해서도 그러했는데 이런 사람들의 글발이야... 심지어 어떤 글은 영화 ˝비포선라이즈˝에 나오는 길거리 시인, 미리 만들어놓은 시에 여주인공이 청한 ˝밀크쉐이크˝란 단어만 넣어 뚝딱 시 하나를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를 보인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이 주로 글 소재로 삼는 라캉 등에 대한 얘기로 글의 5분의 4를 채우고 마지막 몇 문장에만 세월호 얘기를 넣는 것은 너무 무성의해 보이지 않나. 여하간 그래도 신문칼럼으로 이미 여러 번 되풀이 읽은 박민규의 글 하나가 이 책을 살렸다.
여성의 감성과 남성의 관음을 함께 가지고 있다. 잘못하면 양쪽에서 비난과 미움을 받을 수도 있을텐데 신기하게도 양쪽에서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성공적인 외줄타기...? 나는 전자에 다리를 많이 걸치고 후자에 살짝 기운 상태. 어쨌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시 이 작가의 책을 사지는 않을 것 같다.
글을 쓴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이런 상념, 이런 표현, 이런 이야기. 새삼스럽게 광주를 다시 생각한다. 영혼이 있을까. 저승이 있을까. 전두환, 그는 자신이 죽인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로 악몽을 꾼 일이 없었을까. 나이 들어 남성호르몬이 줄어든 마당에 죄책감이나 부끄러움 같은 거 이제는 들지 않을까. 이제도 안 들까. 뼈 속까지 태생부터 악마인 건가. 차마 혼자 살아남을 수 없어 도청에 남은 사람들. 총을 쥐고도 차마 사람에게 총을 쏠 수 없었던 사람들. 인간의 존엄. 영혼. 부끄러움에 관한 이야기. 가슴 아픈 이야기.
얼마전 ˝잘가요 엄마˝를 읽고 가슴 빠근한 충격에 한 번 더 골라본 김주영 소설. 자전적 소설인 잘가요 엄마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연상케하는 대목이 종종 나온다. 자라면서 받은 고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다. 벗어날 수는 없고 그저 참고 극복할 뿐이다. 남편 잘못 만나 평생 개고생하는 어머니상이 또 등장한다. 그 여성상은 가지를 치고 대를 잇는다. 고통스러운 삶. 끊어지지 않는 인연. 발목 잡고 늘어지는 어둠. 김주영 소설은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