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을 때 읽었다면 고개 끄덕이고 주먹 불끈 쥐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걸 느끼며 좋아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게 2024년 11월이니 저자가 완성한 건 그 전일 것이다. 트럼프가 사실상 당선 확정된 게 그 해 11월 6일이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가 경천동지 수준으로 급박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평화로운” 글을 읽으니 뭔가.. 굉장히 뜬구름 잡는 얘기 같고 그렇다. “세금 아니면 쇠스랑”. 트럼프 이후 더욱 더 세계는 쇠스랑 쪽으로 속도 내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은데 과연 결말이 그러할 지 극적인 반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냥 먼지처럼 살다 갈 예정이다.
하도 화제가 된 책이라 오래 전부터 호기심이 있었다. 읽고 보니 왜 인기를 얻었는지 이해가 간다. “정의를 위하여”가 인기를 얻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어렵고 난해한 철학 논쟁이 주를 이루지만,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에 관한 담론은 소외와 모멸감을 쌓아가는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시원한 희망의 물 한 모금이 되었을 것 같다. 나에게는 그랬다.
요네스뵈의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번역본을 읽었고 소장하고 있다. 이번 소설은 매우 오랜만에 나온 책이다. 역시 재미있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요네스뵈의 장점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좀 지겹다. 해리홀레는 사건을 해결하지만 여러번 헛다리를 짚고 뭣보다 주변인들이 너무 많이 다치고 죽는다. 글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 나이도 들고 건강도 안 좋은데 이제 그만 편히 쉬게 해주면 안 되나. 그에게서 더 뺏을 것이 있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