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 ~ 조선 후기까지의 역사를 개괄한다. 오랜 시간 엄청난 분량의 역사를 다루다보니 동국여지도 김정호 같은 유명인도 한 줄도 안 되게 간단히 소개될 정도로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100년쯤은 우습게 넘어간다. 영겁의 시간을 사는 신의 관점에서 찰나로 지나가는 인간의 아귀다툼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이번 주말에 읽을 2편이 기대된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방대한 데이터와 치밀한 조사 분석을 통하여 설득력 있는 논증을 이끌어낸다. 평범한 삶조차 힘들어지는 불안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이 이에 대한 순응으로 분노를 내면화하면서 그 응축된 분노가 일베 등 사이버 공간의 난장판으로 폭발한다는 내용은 설득력 있지만 절반만 맞는 것 같다. 왜 남성들에게 유독 이런 현상이 집중적으로 일어나는지에 관한 논증이 누락되었거나 너무 가볍게 넘어간 것 같다. 나는 그게 일베 현상에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 쟁점이라고 본다.
보라색을 많이 쓴 건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노안과 난시에 시달리는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눈에 힘을 주어야 겨우 보라색 바탕의 흰색 글씨인 장문의 글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인류애와 생명과 민주주의와 소수자와의 공존을 고민하는 이 책이 그런 생각을 편집에까지 적절히 반영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뉴스로만 접한 에타에 절망하다가 이 책을 통해 이런 고민을 하는 이십대도 아직 남아 있다는 데에 희망을 느낀다. 마지막 나오는 글에서 저자가 지난 민주주의 정부가 했던 무수한 노력을 잘 모르면서 all or nothing으로 무참하게 폄하하는 건 매우 불편했는데 그런 태도가 민중의 냉소를 끌어내고 반지성주의로 이어지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였을 가능성에 대해서 좀 성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