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행위는 의도하든 안 하든 정치적이다. 일견 정치와 무관하게 보이는 문학, 음악 등 모든 예술활동도 궁극적으로는 정치로 수렴된다. 정치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나가야하는가를 말하는 바로미터이며, 종합적인 활동이자 제도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매체, 활동, 심지어 우리의 생각까지도 정치로부터 얼마나 멀고 가깝느냐 라는 정도의 문제이지 결국은 무관하지 않다.
흔히 예술이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갇히면 창작활동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상력이 굴레에 갖힌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어떤 작품이 진지하게 인간의 삶을 묘사하고 노래했다면 과연 삶의 질곡, 삶의 복답다단한 문제들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 있을까?
설사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해도 삶의 곡절들을 완벽하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지 않은 순수한 예술작품을 창작했다고 자부해도 예술작품이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려한다면 필연적으로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제도, 구조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절해고도 무인도나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라면 모를까 혼자만의 삶을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인간관계를 이루는 한 사회적 제도를 외면 할 수 없고, 최종적으로 정치와 무관할 수 없게 된다는 거다.
이번엔 종교를 예로 들어보자. 대표적으로 예수의 삶을 보면 일견 정치와 무관한 인물로 보인다. 실제로 그의 삶 자체가 그랬으니까. 반면에 역사적으로 당시 로마 제국주의 치하에 있던 유대인들은 식민통치에 맞서 폭력 혹은 비폭력적으로 항거를 했는데, 전자의 경우는 유다가 대표적이다.
행동파이면서 과격한 유다를 비롯 이들은 예수에게도 자신들과 같은 적극적인 투쟁을 요구했지만 예수는 동포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하면서도 일관되게 사랑, 평화, 비폭력을 주장했다. 바로 이런 예수의 행동을 두고 우리는 그가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으로 여기는거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그가 외치는 '사랑'은 가진자, 권력자 편이 아니라 가지지 못한자, 피지배자 편에 대한 사랑이다. 그는 늘 가진자, 힘 있는자, 권력자들에겐 거침없이 질타를 날렸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겐 베품과 사랑만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주장하는 실제 사랑이 요체이기도 하다. 문제는 바로 이 부분이다.
사랑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해방, 평등의 구현되어야 한다. 다만 예수는 직접적으로 거론을 안 했달뿐이지 그는 사랑의 구현을 위해 억압하는자, 권력자에 대해 끊임없이 평화적으로 항거했고, 비폭력적이지만 무언의 외침을 했다. 바로 이게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절대 정치와 무관해!" 라고 하는 사람조차 사실은 은연중 자신의 정치관을 말하고 있다. 그는 외견상 비정치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정치적으로 방관한다든가 정치를 외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고전을 읽든 현대문학을 읽든 하다못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든 나는 모든것의 배후에 깔려있는 정치적인 문제에 늘 관심을 갖는다. 내게 독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내가 발딛고 사는 오늘의 문제, 지금 이곳에서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가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이지 독서행위 그 자체만의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면 허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독서 행위의 일차적 목적은 즐거움에 있고, 일종의 즐김의 방식이라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의미를 따지거나 헤아려보기 위해서다. 평생의 독서경험에 비춰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을 비롯한 최상의 작품들은 가장 재밌고 즐거우며 정치적 의미를 깊이 내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