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방금 우리가 존재하는 현재의 양상과 과거의 우리 모습 모두가 문학 덕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약 책이 사라진다면 역사도 사라지고, 인간 역시 사라질 것이라고 말이죠. 나는 그런 당신의 말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책은 결코 우리의 꿈, 우리 기억의 자의적인 총합에 불과한 게 아니거든요. 

 

책은 또한 우리에게 자기 초월의 모델을 제공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독서를 일종의 도피로 생각하는데, 가령 현실의 일상적 세계에서 탈피해 상상의 세계, 책들의 세계로 도망가는 출구라고 말이죠. 하지만 책은 단연 그 이상입니다. 온전히 인간이 되는 길이니까요."   - 수전 손택 인터뷰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했고, 서로 사랑하지 않았으며, 나를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 소유, 공포, 센티멘털함, 욕망은 있었다. 하지만 사랑은 없었다. 이것은 내게 특정한 면에서 결핍되거나 특별히 강하게끔 했다. 내게 결핍된 것은 가족애, 연대 의식, 소속감 같은 것이다. 강화된 것은 사랑에 대한 동경이다. 나는 사랑을 자유, 풍요, 관용, 열정처럼 끝없이 추구한다. 일찍이 단테가 <사랑이야말로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것이니>라고 말한 것처럼."     - 재닛 윈터슨의 소설 <하룻밤만의 자유>

 

 불행히도 윈터슨과 달리 나에게 강화된 것은 사랑이 아니라 끝없는 지식욕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즉, 미적 황홀경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사랑 받지 못한 자가 어찌 남을 사랑 할 수 있을까. 기껏 관념속에서나 맴돌겠지. 어쨋거나 차라리 책이 좋았다.

최소한 책과 예술의 세계는 번잡함과 피로감이 없었다. 마치 애완견을 키우듯 나의 독자적인 세계, 내 기분만 염두에 두면 되었으니, 일체 누구 눈치 볼 필요 없는 세계였던 거다. 더구나 예술에의 몰입은 벅찬 황홀경으로 이끌었으니.   

책과 연애하기. 책과 사랑하기. 물론 나도 여느 남자들처럼 여자를 좋아하고 섹스를 좋아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기쁨 보다 책이 주는 쾌락과 비교 할 수 없다. 책의 향연에서 비롯되는 즐거움은 거의 무한대라도 해도 좋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 박형규 옮김/문학동네

 

오랫동안 기다리던 책의 출간 소식을 듣는 기쁨은 여간 큰게 아니다. 박형규 교수의 톨스토이 전집이 바로 이런 경우인데, <안나 카레니나>에 이어 대표작 <전쟁과 평화> 전4권 중 1권이 먼저 나왔다. 이 작품은 1805년부터 1820년까지 15년에 걸친 러시아 역사의 결정적 시기를 배경으로 나폴레옹 침공과 조국전쟁 등의 굵직한 사건과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수많은 개별 인간의 이야기를 아우른 서사시적 소설이다. 근데 좀 의아한 것은 원래 돌스토이 전집은 푸슈킨하우스에서 추진되던 것인데, 막상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니 저간의 사정이 있는듯.

     

기마에 도시아키 등 엮음 <현대철학사전> 전 5권, 이신철 옮김/도서출판 b

 

철학에 등장하는 개념어들을 설명해논 '개념사전'이라는게 있다. 가령 이정우 선생의 <개념-뿌리들>(철학아카데미), 우리사상연구소에서 엮은 <우리말 철학사전> (지식산업사, 전 5권)등이 그것인데, 흔히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맨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낯선 개념어를 이해해야 하는 점이다. 그때마다 철학사전, 철학사, 개론서 등을 들춰봐야하는데,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다. 물론 철학사전을 이용하면되지만, 방대한 양을 글자 순서대로 모아놓은 철학사전과 달리 개념사전은 주제별, 항목별로  서술되어 있어 이용하는데 편리하다.  

 

최근 개념사전과 흡사한 일본 학자 기마에 도시아키가 엮은 <현대철학사전> 전 5권이 드문드문 연차적으로 출간되다가 드디어 완간되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개념사전과 달리 몇몇 철학자를 개별적으로 구분해서 집중 서술된 점이 다르다.  다음은 이 사전을 소개한 한겨레신문 기사이다.

 

"마지막 번역본 <니체사전>이 나오기까지 번역 시작부터 꼬박 11년, 첫권 출간부터는 7년이 걸린 대작이다. 제2권 <헤겔사전>(2009), 제1권 <칸트사전>(〃), 제3권 <맑스사전>(2011), 제5권 <현상학 사전>(〃), 제4권 <니체사전> 순으로 출간된 이 사전의 전체 분량은 3523쪽, 원고지로는 4만장이 넘는다.

 

제1권 ‘(칸트의) 가능성’부터 제5권 ‘후설의 현상학’까지 실린 항목이 4710개나 된다. 각 사전은 해당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 개념, 그의 철학에 영향을 끼친 전사와 인물들을 상세히 해설했다. 또 각 철학자의 연보와 저작 목록, 참고문헌 목록, 한국어 문헌 목록, 사항·인명·저작명 색인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번역 저본으로는 일본 고분도(弘文堂) 출판사가 1992~2000년에 걸쳐 낸 같은 이름의 사전들이 쓰였다. 각 사전 편찬에는 칸트 150여명, 헤겔 100여명, 마르크스 120여명, 니체 40여명, 현상학 130여 명 등 모두 540여명의 전문 학자들이 참여해 일본 철학계의 수준과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많은 항목의 집필자와 엮은이 중에 겹치는 사람이 없다니 놀랍다.

 

이 많은 분량을, 분야가 조금씩 다른데도, 무려 7년이나 걸려, 한 사람이 번역해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카이스트에서 교양철학을 가르치고 있는 옮긴이 이신철(52·사진) 박사는 이 사전이 “독자들에게 철학의 미로를 헤쳐나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이길 바란다”고 썼다. 무턱대고 덤볐다간 지레 포기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인 철학적 개념의 숲에서 이 사전이 지도와 지피에스(GPS)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다."    - 한겨레신문, 강희철 기자. 2016. 10/14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영두 2016-10-1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 이런 서재가 있었군요, 블로그가 깔끔하고, 또 다양한 내용들을 적을 수 있고 읽는 맛이 느껴집니다.
자주 들어와 소통하고 싶습니다. 알찬 정보도 도움이 됩니다.
블로그 개통을 축하드리구요 블로그를 통해 뜻하신 좋은 결실 이루시길 바랍니다.^^

나팔노인 2016-10-14 13:2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최 작가님이 첫 방문객이네요. 뭐 특별히 아는것도 없지만 일단 가볍게 시작합니다. 감사^^
 

                                                           

 

                                            

 

 

 

악기 연주든 독서든 아마추어 애호가인 나로서는 진지하고 심각하기보다 가볍게 즐기려고 한다. 그래서 문학서의 경우도 작품을 읽는것 못지않게 번역상태나 장정 등에 대한 외적 관심이 클 때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최종철 번역판(민음사)으로 4대비극을 오래 전에 읽긴했지만 대개의 고전작품이 그렇듯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처지다. 언젠가 시간이 가능하면 본격적으로 읽어볼 계획인데 책을 구입하기에앞서 우선 번역서 현황을 좀 살펴본다. 

 

대부분의 국내 유수 출판사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 출간하고있다. 일찍이 정음사에서 전집을 낸바 있는데, 최근에만 하더라도 최종철 교수의 민음사판 전집, 시인 김정환의 아침이슬판 전집이 속속 출간되고 있다. 그밖에 시공사에서 RSC와 판권 계약을 맺고 현재 다섯 작품을 선보였고-  RSC(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시리즈는 1623년에 나온 전집(제1이절판)이 번역 대본임 - 문학동네에서도 이경식 교수에 의해 몇몇 작품이 출간된바 있다. 

 

******************

펌/ 로쟈 이현우(서평가)

 

김재남 교수의 최초의 한국어판 셰익스피어 전집은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됐었으나 절판된 지 오래인 상태에서 신정옥 교수의 문고본 판형의 전집(전예원)이 유일했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를 전담해서 번역해온 최종철 교수도 2014년부터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을 출간중이다.

 

셰익스피어 1인 번역은 김재남, 신정옥, 김정환에 이은 시도로 의미가 있다. 현재 김재남본은 절판된 상태에서 몇몇 작품만 다시 나와 있고, 김정환본은 아직 완간되지 않은 상태다. 신정옥본은 너무 풀어서 옮긴 대목이 많아서 '운문성'을 감지하기 어렵다. 운문성을 살린 번역으로는 김정환 시인본과 경합이 되겠다. 

 

최 교수는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를 산문으로 바꿀 경우 시의 함축성과 상징성 및 긴장감 그리고 음악성이 거의 사라진다면서 "시적 효과와 음악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정확성을 확보하는 우리말 번역"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다.(...) 역자는 "두 언어가 여러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영어의 음악과 리듬을 우리말로 꼭 그대로 재생할 수는 없다"면서도 "셰익스피어의 '오보'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자모 숫자와 우리말 12~18자에 들어가는 자모 숫자의 평균치가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멕베스' 등 셰익스피어의 극작품 중 정수라 불리는 비극이 담길 4, 5권도 내달 출간된다.

 

4대 비극을 포함하여 2차분으로 나올 책들도 사실은 이미 번역본이 나와 있는 상태이므로 전집판으로 판갈이만 되는 게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 최종철본은 "시 형식으로 쓴 연극 대사"에서 '시 형식'에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니 '연극 대사'라는 점은 간혹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모든 걸 충족시킬 만한 번역이 가능하지 않다면, 각각을 만족시킨 번역본이 따로 나오는 것도 현실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막바지에 이른 김정환본도 조만간 완간되기를 기대한다...

 

개인 번역 전집의 상황이 그렇고,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번역판으로 작품총서(동인)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제 수년 안으로 네댓 종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리가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전집판의 경우가 그렇다는 얘기이고, 4대 비극 같은 주요 작품들에 한정하면 독자의 선택지는 훨씬 더 넓어진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이번 전집과 함께 가장 최근에 나온 건 펭귄클래식판의 <베니스의 상인>이다. 주요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와 있고 김정환, 신정옥 전집판으로 있기에 비교해서 읽어볼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 이현우(서평가)

 

프랑스의 작가이자 에세이스트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이루, 2013)가 출간됐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독서를 위하여'가 부제. 사실 이런 주제나 제목의 책이 없었던 건 아니고, 어느 정도는 내용을 짐작해볼 수도 있다, 고 나는 생각했다. 추천사를 청탁받고 처음 원고를 읽을 때 일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참신했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적은 추천사가 이렇다.

 

 

걸어 다니는 모든 인류가 책을 읽는 건 아니며 책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한다면 모든 책과 책에 대한 기억 또한 소멸할 것이다. 책을 읽는 인간에게 ‘왜 책을 읽는가’는 책의 탄생과 소멸 사이를 지탱하는 물음일 따름이다. 샤를 단치는 우리에게 독서의 필요성을 설득하지 않는다. 독서는 다만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결투’일 뿐이라고 말한다. 언젠가 패배할 테지만, 우리는 결연히 책을 읽어나갈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분류하자면 샤를 단치는 '아주 사적인 독서가'다. 독서를 권유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독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할 뿐이다. 물론 독서는 대단히 이기적인 행위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으면서. 그래도 독서를 통해서 우리가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라고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면 그는 쿨하게 이렇게 답할 것이다.

독서는 우리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한다. 어쩌면 온전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줄 수는 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원래 비열한 인간은 라신을 읽는다 해도 비열한 인격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교양이 없다면 교양을 두른 비열한 인간으로 바뀔지는 모르겠다. 반대로 선한 사람이 나쁜 책을 읽는다 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독서의 나쁜 영향은 그것이 주는 좋은 영향력만큼이나 어리석은 신화에 불과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