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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5만 부 기념 봄 에디션, 양장)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평점 :
품절
시집에는 표제시(詩), 소설집에는 표제소설(小說)이 있다. 표제소설, 좀 낯설다. 중·단편 소설들을 모은 소설가의 단행본 제목이기도 한, 수록 작품 중 대표작이 표제소설이다. 표제시도 그렇다. 예외는 있다. 김규동 시인(1925~2011)의 시집 『깨끗한 희망』(창비, 1985)은 수록한 시 「꽃」에서 제목을 뽑았다.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창비, 1996)도 그러하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제호 선정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에세이 형식 철학적 담론들을 체계적·조직적으로 모은 리뷰 모음집, 설정은 늘 철학기행이다. 쓰임새에서 <자기계발서>로 분류되기를, 저자는 마다하지 않는다. 14인의 동서양 철학자들에게서 한 가지씩 배울 거리를 추출하고, 그 한 가지에 집중하여 그의 삶을 탐사한다.
궁금해하기(소크라테스), 걷기(루소), 보기(소로), 듣기(쇼펜하우어), 싸우기(간디), 감사하기(세이 쇼나곤), 후회않기(니체), 늙기(보부아르), 죽기(몽테뉴)…
’○○처럼 □□하는 법‘이라는 꼭지명에서 신영복 선생을 떠올린다. 지금 『처음처럼』(책이자 캐치프레이즈)은 소주 브랜드로 더 익숙하다. 국회 다수당의 초선의원들 모임 ’처럼회‘란 이름도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은 ○○처럼, ○○에게서 배우자. 그렇게 변화하는 나를 만나는 법 발견하기, 이 책의 메뉴다.
그런데 왜 제호에 소크라테스 선생이 나올까? 공자, 간디, 세이 쇼나곤을 제외하면 이 멤버십 회원들이 서양 지성들이니 이해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다,‘를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다,‘ 혹은 ’철학은 소크라테스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서양철학사에서 소크라테스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를 앞세운 속내, 이해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마케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는가. ’소크라테스‘로 검색한 책들, 결과를 살펴본다. 이 책(『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도 마케팅 혐의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낯설지 않다. 그래서 어짜라고? 어쩌지 않으셔도 된다. 지성 소크라테스의 권위를 가장 먼저 '판' 사람은 수제자 플라톤이다. 소크라테스(는 글 한 줄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말씀을 글(책)로 옮긴 인간이 플라톤이다. 위작을 포함 30여 편이 넘는 대화편들이 근거다.『소크라테스 회상』 등 크세노폰도 스승 소크라테스의 삶과 가르침을 전했다. 플라톤만큼 '보란듯이'(노골적은)는 아니었다. 크세노폰에게서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는 이유다.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 각각이 다룬 주제를 살핀다. 흥미롭다. 번역가 천병희 완역 『플라톤전집 세트』(전7권, 숲, 2019-07-23) 수록 순에 따라 그 주제들을 살핀다.「향연」은 '사랑'에 관하여,「테아이테토스」는 '지식'에 관하여 나눈 대화이다.「파이드로스」(2권)는 사랑, 지식, 이데아론, 혼불멸론, 혼의 윤회 등 플라톤의 주요 사상을 조금씩 선보인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주제는 ’변론‘ 자체로만 특정할 수 없고 대화편 범주에 넣기엔 좀 특이한 형식이다. 그럼에도 주요 대화편들은 한 주제(개념)를 탐사한 대화 녹취록에 가깝다. 아래 괄호 안 단어는 그 대화편 주제(부제이기도 함)이다.
메논(미덕), 뤼시스(우정), 라케스(용기), 카르미데스(절제), 에우튀프론(경건), 에우튀데모스(논쟁), 메넥세노스(연설)[2권], 고르기아스(수사), 이온(예술), 크라튈로스(이름)[3권], 테아이테토스(지식), 필레보스(즐거움), 티마이오스(우주), 파르메니데스(형상 形相)[5권]….
4권 국가(국가)와 6권 법률(법률)은 말할 것도 없다. 플라톤이야말로 소크라테스 마케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두 번째 꼭지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이 사사하는 바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과 플라톤의 글은 그렇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주해설서의 대상 텍스트로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
익스프레스(Express)는 급행열차에 가깝다. 책(사상)을 다룬 책은, (이) 한 권만 읽으면 ~이 가능하다, 독자들을 유혹한다. KTX처럼 ’빠르게‘, 보다 ’빨리빨리‘ 보다 많이 습독할 수 있다? 그러나 앎과 그 앎을 실행하기는 보다 빨리, 스케치하듯 이뤄지지는 않는다. 두 번째 꼭지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보다 <3. 루소처럼 걷는 법>을 먼저 읽을 필요가 있다.
당신은 지금 카메라 가방을 메고 피사체들을 찾아 나섰다. 출사다. 천천히 걸을 때라야 포착 가능한 순간들이 있다. 자전거라는 이동수단마저 과감히 버려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게 되어 있다. 상태 또는 사태의 민낯을 발견하기, 그 한 순간(프레임)을 포착하는 일도 그렇다. 시와 더불어 사진은 ’순간의 꽃‘이다. 이뿐이랴. 모든 발견이 그렇다. 읽기도 걷기처럼 해야 한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열차 종류로 치면 ’무궁화호‘, 그 이전 ’비둘기호‘보다 느린 속도이리아. 정차한 열차 안에서 몇 시간을(OTT드라마로 업로드되어 외국에서 주목 받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한 장면처럼), 며칠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천천히 걷기는 제대로 읽기다. 에릭 와이너(Eric Weiner)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도 그렇다. 원제는 The Socrates Express: In Search of Life Lessons from Dead Philosophers다. 2부 중간 간디(8. 간디처럼 싸우는 법)까지 읽고 썼다.
플라톤전집 세트-전7권 |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은이), 천병희(옮긴이) 도서출판 숲 2019-07-23
알라딘: 플라톤전집 세트 - 전7권 (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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