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2020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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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은 끝났지만,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는 작금의 국내 상황도 한창 전쟁 중, 아니 이제 막 시작되었다. 두려움의 저편애 자신감이 있다.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도 그렇지만 과도한 자신감도 무척 위험하다.] "두려움은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임박한 위험을 생각할 때 느끼는 일종의 고통 또는 불안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해악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나 고통을 야기할 해악만 두려워하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 2권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간파해야 할 인간의 감정들에 관해 고찰한다. 인용은 제2권 5장 '두려움과 자신감' 중 두려움에 대한 간명한 정의다. 필멸의 인간에게 죽음은 언젠가 다가올 위험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결국 죽을 것을 알지만, 죽음이 가까이 있지 않으므로 죽음에 무관심하다. 곧 우리는 (죽음처럼) 아주 멀리 있는(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큰 파괴력을 가지거나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해악을 끼칠 능력이 있어 보이는 그런 것들이 두려운 것임이 틀림없다. 그런 것들은 징후조차도 두렵다는 것. 이런 징후의 한 예로 "우리를 해코지할 수 있는 자들의 적대감과 분노가 있다." 나아가 우리를 해코지할 수 있는 자들이 느끼는 두려움도 마찬가지다.(수사학, 2권 제5장 두려움과 자신감(1382a~1383b) 앞부분 정리) 


[아주 멀리 있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과 더불어 <시학>을 썼고, <시학>을 집필한 동기가 그리스 비극이 가진 힘을 강조하기 위한 것 아닌가, 싶게 비극 장르, 그 작품들이 가진 미덕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반면 <수사학>은 좋은 문학작품이 가진 수사적인 면모(기술)를 간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지, 그 노하우를 밝힘으로써 수사학을 학문 영역으로 편입시킨 저작이다. 그럼에도 <수사학>의 텍스트들은 그리스 비극이 가진 역동적인 힘을, 흔히 말하는 '드라마를 드라마틱하게' 즐길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다음은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메데이아>와 <휩폴뤼토스>의 줄거리이다. 두 작품의 등장인물이 가진 '두려움'의 실체를 잠시 살피고, 그것이 극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감상 포인트 하나를 정리해볼까 한다.(두 작품의 줄거리를 사진 촬영하여 올리는 것으로 했다.)  

[사진1은 <메데이아>의 줄거리다.] 

여기서는 크레온 왕이 가지는 '두려움'이 극을 전개하는(사건의 발단이랄까), 원동력이 된다. 조국와 부모 형제까지 배신하면서 이아손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그간 메데이아가 펼친 활약상은 더 이상 '미덕'일 수가 없다. 크레온은 이미 처자가 있는 이아손을 사위로 맡이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후계구도를 튼실하게 할 욕망에 사로잡혀,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였고, 메데이아와 두 아들만 추방하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렵다. 지난 날 메데이아가 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쌓은 미덕은 이제 악덕이 되어야 하고, 그녀가 '요주의 인물'이며 공존할 수 없는 구실이 된다. 그 선택 때문에 애지중지하는 딸과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음에도 그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두려움' 이란 감정은 이렇게 극적으로 작동한다.

[사진2는 비극 <휩폴뤼토스>의 줄거리다.]

 파이드라는 전처 소생인 힙폴뤼토스에게 가진 연정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이른다.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유모를 통해 그 연심이 전달되었고, 힙폴뤼토스에게 그 마음을 들켰다는 사실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어쨌든 파이드라가 가진 두려움은 그 결과가 뻔히 보이는,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고 있다는, '안 봐도 비디오'처럼 예견된 그 자체가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해서는 안 될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것이었고, 제어할 수 없는 그 '두려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때문에 힙폴뤼토스가 부왕에게서 추방을 당하고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는 것은 파이드라의 고뇌에 비하면 '조연급'의 고민이다. 

(덧붙여) 두 작품의 결말, 그러니까 복수에서도 유사점은 있다. 메데이아는 사랑하는 '우리' 아들들을 죽임으로써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평생 살아가게 함으로써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한다. 파이드라는 제 목숨을 제물로 삼아 자기 사랑을 거부한 힙폴뤼토스에게 복수를 하는데, 궁극적으로 그 복수의 화살은 남편 테세우스(메데이아가 그랬듯이)를 향하고 있지 않았나, 그리 해석할 수도 있다(그냥 남편인 것이 야속한 것일까). 메데이아가 사건 발생 이후의 거취를 정해놓고 일을 도모했다면 파이드라는 문득 찾아온 <상사병>이 그랬듯이 대책 없이 일을 저질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을 직접 죽여야했던 메데이아라고 행복했겠는가!  


[막연한 두려움도 과도한 자신감도 위험하다.] 

(맺으며)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 투퀴디데스(『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진단에도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찰한 '두려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투퀴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 『에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원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대 대선은 끝났지만,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는 작금의 국내 상황도 한창 전쟁 중, 이제 막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려움의 건너편에 자신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는 것도 그렇지만 과도한 자신감도 무척 위험하다. 

​"자신감은 우리를 구원해주는 것은 가까이 있고 두려운 것은 없거나 멀리 있다는 생각에 따른 기대이다. 자신감이 생기는 것은 두려운 것은 멀리 있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가까이 있을 때이다.".(위 <수사학/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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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3-2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사학/시학』(천병희 옮김),『펠로폰네소스 전쟁사』(천병희 옮김),『예정된 전쟁』(그레이엄 앨리슨 지음) 등이 연관 서적인데, 리뷰로 가는 바람에 여기 적어둡니다.

새우 2022-03-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은 전쟁, 전쟁 같은 사랑이네여.

Meta4 2022-03-21 16:31   좋아요 0 | URL
[사랑은 전쟁]은 은유, 전쟁 같은 사랑은 직유인가요? 호메로스 서사시 가령, <일리아스>의 경우 직유와 은유의 구분이 없다고 한 어느 해설서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