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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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던가, 페이퍼던가, 알라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은 이가 쓴 서재의 글이 떠오른다. 추석 연휴 5일을 꼬박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완독에 할애했다는 얘기였다. 200퍼센트, 그 이상 공감하는 얘기다. 인류의 역사에, 지성사에 굵은 획을 그은 고전 역작 혹은 대작을 완독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백두대간 종주에 비유할 만하다. 중대 결단과 끊임없는 인내가 필요한 독서라는 얘기다. 

한 차례 완독으로 끝나지 않는다. 전국 100대 명산 중 하나를 한 차례 등반했다고 다시 오르지 않던가! 자주 올라야 그 산이 왜 명산(名山이고 진산(珍山)인지 문득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무심코 명품(名品)을 찾지만 그것을 실제 사용하는 동안 문득 그 물건이 진품(珍品)임을 깨닫게 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고전들을 원전번역으로 펴낸 천병희 선생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 애로(崖路)가 곳곳에 깔린 책이다. 그래서일까, 이런 서평이 가장 와 닿는다.


“…투키디데스는 근엄하고 통합적이다. 그는 문화사가라기보다 정치와 군사의 역사가이다. 그는 의심이 많은 데다 매력적이지 못하며, 그래서 읽기가 까다롭다.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그의 책은 제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되풀이하여 읽으면 진국이 나오는 작가이다. …그는 권력 정치의 내면을 파악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평생 독서 계획』, ‘투키디데스' 중, 존 S. 메이저, 클리프턴 패디먼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2010년 10월) 


이 고전의 실체를 간파한 최고의 서평(리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산의 정상까지 등반한 후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소회라고 할 수 있다. 비단 이 책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고대 서양의 고전들을 읽노라면 인명들부터 낯설다. 지명들도 혼란스럽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오늘날 그리스 반도와 과거 페르시아 영토에 해당하는 나라들과 지명들, 지중해에 흩뿌려진 수 많은 섬들, 오늘날 이탈리아반도(당시는 시켈리아)에 이르기까지 지도(지명)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 책 부록으로도 당시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만, 언젠가 이 책을 펴낸 출판사에 A2 사이즈 정도의 관련 지도를 제작하여 서비스로 제공했으면 하는,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말 번역이 깔끔하다. 

잘 읽힌다. 번역으로 인한 피로감은 거의 없다. 본래 이 책의 방대한 스케일 때문에 소화하기가 힘들 뿐이다. 그리고 노고 그 이상의 생생한 교훈, 당면한 현실을 살피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유시민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역사의 역사‘라 했다. 이 책에 적용하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전쟁사의 전생사‘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전쟁사의 역사‘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흐름은 ’진행中‘이다. 

시작(詩作)의 기술 가운데 하나는 수미쌍관(首尾雙關)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핵관련 미사일을 쏘아올려 북미협상 카드를 유리하게 만들려던 북한이 정권 말기에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누가 대권을 잡든 새로운 정부를 길들이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와 닿는다. ’종전 선언‘까지는 해야 하는데.. 정권 말기임에도 역대 최고의 대통령 지지율을 유지하는 여세를 몰아 평화 무드에 쐐기를 박고자 했던 바람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이러듯 한반도 정세는 언제 발생할지 모를 리스크를 안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다. 얼마 전 유력한 대선주자가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와의 경제대담을 가졌는데 핵심 키워드는 '한반도 평화'였다. 주식투자의 꿀팁을 묻는 질문에 짐 로저스는 ”꿀팁을 듣지 말라는 것이 팁입니다.“라는 재치 있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블랙핑크가 38선에서 공연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 내가 롤링스톤스를 데려가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불러 '빅 파티'를 열자."(짐 로저스)라고 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이었던가,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라는 대목이 떠올라 씁쓸했다. 이제는 세계적인 외국인 투자자가 시 한 구절 같은 희망 사항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들은 헤어진 게 아녜요/ 우리들은 나뉜 게 아녜요/ 우리들은 딴 세상 본 게 아녜요/ 우리들은 한 우주 한 천지 한 바람 속에/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을 살아요“(달이 뜨거든-아사달 . 아사녀의 노래 2중창 부분) 


’같은 시간 먹으며 영원히 살자!‘ 그럴 수 있다면.. 

2018년 1월(31일).『예정된 전쟁』(세종서적, 2018.1.31.)이란 책이 번역되어 화제를 모았다.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이 국제 정치판에서 전문가들의 입에서, 언론에 회자되먼서 주목받은 책이 발 빠르게 번역된 것인데, 2017년 전후 뜨거웠던 한반도 정세를 새삼 떠오르게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먼 옛날인 고대 그리스의 ’역사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현재의 당면한 전쟁 위험을 감지하는 책인 것.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사이리도 하니까. 인류사는 곧 전쟁사임을 실감할 수 있는 이색적인 책이 있다. 


’은유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조지 레이코프가 1차 걸프전 발발 직전인 1990년 마지막 날에 배포한 글의 첫머리에 언급한 말이다. 미국 시민들의 반전 여론을 무마하고 전쟁지지 여론을 이끌기 위해 부시 행정부와 보수 언론이 동원한 국제 관계 은유는 [국가는 사람], [세계는 마을], [전쟁은(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정치]. [정치는 사업] 등이었다는 것. 미국의 보수 언론은 [이라크는 악당]이고 [쿠웨이트는 천진한 처녀]이며 [미국은 선한 구원자]라는 은유적 이미지를 미국 시민들의 머릿속에 주입했다는 것. 그 결과 이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보다 지지하는 여론이 더 높아졌고, 전쟁을 막을 수 없었다. 『은유로 보는 한국 사회』(나익주 지음, 2020년 11월, 전자책은 2021년 5월) 머리말에 나오는 얘기다. 

필자는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사에서 박사까지 끝내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조지 레이코프에게서 인지언어학을 공부했으며, 조지 레이코프가 언어철학자 마크 존슨과 1980년에 펴낸 『삶으로서의 은유』를 번역했다. 무엇보다 그는 『프레임 전쟁』을 비롯 자신의 선생님 책을 두루 번역하여 우리 사회에 ’프레임‘이란 개념을 유포하고 있다. ’3장 국제 관계를 지배하는 은유(전쟁의 언어, 평화의 언어)‘는 머리말의 첫 문장에서 보듯,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극명하게 드러난 2017년 즈음의 말의 (프레임) 전쟁이 담겨 있다. 굳이 이 책의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특히 한반도 정세에서 생생하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이고 어느 세력이 집권하건 미·중, 북·미, 한·미 남·북 관계에서 한반도의 위기 상황은 새로운 버전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 적어도 안보 문제나 질병(코로나 팬데믹) 대응과 관련해서는 여와 야, 진보의 보수에 따른 이견이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선을 밟는 세력도, 그것을 부추기는 언론도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다. 아직도 ’휴전 중‘인 한반도의 현실, 지정학적 리스크를 떠올리면서 읽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등반‘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좀 가볍게 다루려고 작정했는데, 무거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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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road 2022-02-10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선정 추카추카

Meta4 2022-02-10 19: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