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우화
이솝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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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는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읽는 책이다. 둘은 동서고금 꾸준히 읽히는 인류의 스테디셀러다, 그런 이야기다. 경전으로서 『성서』 는 ‘성경’이다. 단지 성경(聖經)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교리를 담고 있는 경전들이 경전으로서 해당 종교에서 유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교회 목사님 설교든 성당 신부님 강론이든(사찰 큰스님 법문이든) 신도들의 보다 나은 삶을 안내하면서 말씀(경전)을 앞세우는데, 이때 인용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이며. 말씀 인용 자체가 의식의 중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성서’(경전)와 우화의 쓰임새가 유사한 점도 흥미롭다. 생활 현장 곳곳에서 말과 글과 피피티, 심지어 설교나 강론, 법문에서도 우화는 인용된다. 우화(寓話)는 '인격화한 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그들의 행동 속에 풍자와 교훈의 뜻을 나타내는 이야기’다. 사전 풀이다. 이를 정리하면 우화는 1)이야기다. 2)사람들의 이야기다. 3)교훈이다. 4)인격화된 이야기다. 우화가 대체 뭘까, 기타 등등 근거가 더 있겠지만 이상 네 가지를 살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아래는 천병희 옮김 『이솝 우화』가 출간된 이후(올해로 10년쯤 되었다) 시시때때로 읽으면서, 우화는 무엇일까 정리한 생각들이다. 


1)우화는.. 이야기다. 

대체로 짧은 이야기다. 이야기 구조도 간명하다. 어떤 메시지 전달에 인용하기에 딱 좋은 그런 분량이고, 그런 필요 덕분에 우화가 탄생했다. 이 점이 우화가 가진 최대의 미덕이다. 우화의 탄생은 곧 이야기(story)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우화는 사전 약속에 따라 독서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읽고 즉석 토론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독서 토론을 위한 소통 학습하는 데 유용하다.  

2)우화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궁극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뭔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이야기다. 인문학이라고 할 때의 인문(人文), 그 문(文)을 문양 문(紋)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가령, 물(物)과 대비되는 정신으로서의 문(文)이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는 인문(人文)의 해석이 곧 인문(人紋)이다. 사람의 지문(指紋)처럼 총체에서부터 개별에까지 인간(인류) 삶의 궤적인 스며 있는 것이 인문이라는 비유. 인격화된 주인공들 때문에 우화를 가벼운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 곧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화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우화의 탄생은 인문의 탄생이기도 하다. 

3)우화는.. 교훈이다.

우화는 탄생하는 순간부터 잔소리였다. 들려주는 사람은 심각한데 듣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는 잔소리일 뿐이다. 말하거나 인용하는 이는 보다 나은 삶, 삶의 방식 개선을 역설하지만 듣는 이에게는 잔소리다.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알아. 그러나 실행이 안 되는 것을 왜 자꾸만 하라고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거야. 그러므로 ‘잔소리’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한다. 우화를 통해 뭔가를 전달하려는 이는 ‘꼰대’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하나의 우화가 처음 만들어지고 유포될 때도 그랬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 우화가 ‘A는 B더라’에서 (나아가) ‘A는 B라야만 해’로 진화(?)하는 동안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역설적으로 우화가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의 원조이면서 출발점임을 엿볼 수 있다. 그 진부함에서 새로움이 발현된다. 덕분에 예나 지금이나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수학(산수)에서 계산은 수를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처럼. 

4)우화는.. 인격화된 이야기다.

어느덧 우화를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쯤으로 여기게 되었다. 편견이다, 우화는 동화(童話)의 한 갈래라는 오해다. 이런 편견과 오해는 우화에 등장하는 동식물과 기타 사물들이 인격화되어 있다는 데서 발생한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식물, 심지어 사물들과도 동등하게(인격화) 대화하는 일이 어린이들에게는 흔한 일인데 어른들은 힘이 들거나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을 가치관의 형성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살아간다. 이미 ‘머리가 굳은’ 어른들은 어린이가 가진 순진무구를 상실하고 ‘편견’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간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거칠지만 이것이 우화가 가진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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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지금처럼 소통 매체가 풍부한, 일체 과잉인 때가 없었다. 앞으로도 이런 양상은 질적 영적으로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그 후유증도 심각하다. 난무하는 ‘가짜 뉴스’가 대표적이다. 제대로 된 뉴스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픽션과 논픽션(nonfiction)의 비빔밥이 되어 여느 식당에서나 패스트푸드처럼 절찬리에 판매중이다. 너와 나 우리의 팽배한 우려를 그렇고 그런 말로 강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이런 풍조가 궁극으로는 그 생산자들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며, 그것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을 포함 인류 모두에게 큰 불행을 안기고 있다. 


여느 식당에서나 절찬리에 판매중인 픽션과 논픽션 비빔밥, 가짜뉴스

'이솝'(Aesop)이라고 부르는 ‘아이소포스’(Aisopos). 그는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우화 작가다. 천병희는 이솝의 우화 전 작품 358편을 원전번역(그리스어→한글)으로 소개했다. 2013년 출간이니 어느덧 10년째다. 브랜드 슬로건은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정본', 『이솝 우화』다. 우화의 주요 독자층이 어린이라는 통념은 358편에 이르는 전 작품을 읽는 동안, 곳곳에서 깨진다. ‘잔혹한 동화’로 분류될 이야기들이 적지 않다. 오래된 얘기지만 화학조미료를 '미원', 주방세제를 '퐁퐁'을 달라고 하는 것처럼 우화는 이솝우화였다[“지금도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통칭 '이솝 우화'라 부르고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천병희 옮김 『이솝 우화』는 우리 독자들이 ‘이솝 우화’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서지학(書誌學)’ 혹은 번역사에도 성과를 추가했다. 시간이 되는 대로, 천병희 옮김 『이솝 우화』를 텍스트로, 지금 우리 시대가 당면한 이런저런 인문(人紋) 현상들을 언급해볼까 한다.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우화는 이솝우화, 이솝우화는 우화, 지금 우리 시대 인문(人紋)의 풍경 스케치에 필수인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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