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지식산업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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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을 배운 사람에게는 과학과 관련된 내용이 눈에 들어오겠으나 거리가 있는 분야에 종사해온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하이젠베르크의 인간적 기품과 그가 주변인들과 나누는 대화의 심도와 범위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대화의 내용을 기억하고 복기하는 물리학자의 재생가능 기억력도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지만 가십과 휘발성 대화로 점철된 현대의 삶과는 사뭇 다름이 느껴지는 전원 배경의 풍경이다. 


과학은 사람이 만든 것이고, 또 과학은 토론을 통해서 비로소 성립된다는 사실을 말하며 하이젠베르크가 나눈 수많은 토론들이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 과학에서 우리가 다루는 것은 자연(nature)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과학(science of nature), 즉 인간에 의해 철저하게 탐구되고 기술(記述)되어 온 자연이다.

_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책"From plato to Planck" 中)


10. 우리들은 어떠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세우는 데 두려움이라는 것을 몰랐다.


58.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굉장히 많은 현상들을 통일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다시 말해서 '파악'할 수 있는 표상이나 개념을 갖는다는 것을 뜻한다. 

즉, 다양성을 일반적인 간단한 것에 귀착시키는 일, 바로 자네가 좋아하는 그리스 인식으로 말하면 '많은 것'을 '하나'에다 소급시키는 일을 우리는 '이해'하였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77. 나는 오래전부터 정견은 큰소리로 선전하거나 실제로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그 목표를 바탕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수단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부당한 수단은 이미 그 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장본인부터 그 명제의 설득력을 스스로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 모든 수단은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 실현할 목적과는 또 다른 직접적인 결과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수단은 목적이 된다. 또한 모든 목적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_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당대, 2001 中 34p.)


79. 전쟁이 쌍방에 얼마나 무서운 희생을 요구하며 얼마나 많은 부정이 쌍방에 의해 일어날 것인가를 알고 있었을 텐데도 한 민족이 순수한 감격에 도취되어 전쟁에 돌입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27. 정치적 운동이란 큰소리로 외치며 실제로 달성하려고 하는 그 목표에 따라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 실현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수단에 따라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279. 예부터 내려오는 원칙, 즉 '악을 위해서는 허락되지 않는 수단이라도 선을 위해서는 허락될 수 있다'는 윈칙이 여기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즉, 선을 위해서는 원자폭탄을 만들어야 하고, 악을 위해서는 그것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계사에서 유감스럽게도 되풀이 관철되고 있는 이 견해가 여전히 옳은 것이라면 도대체 누가 선과 악을 결정하는 것일까?      

(※ 마키아벨리를 거부할 것, 군주에게든 대통령에게든 굴종을 용납하지 않을 것, 공공정책의 목적이 진정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 검토해볼 것.

우리는 정책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정의로운 일이 되는지 반드시 검토해 봐야만 한다. 

_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당대, 2001 中 53p.)


자기가 아는 것과 협소한 부분에 몰입되어 보다 넓은 전체를 포괄적으로 읽어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부분과 전체"가 이 책 제목이 된 건 아니였을까?

(※ (나치 독일의) 로켓 전문가 베르너 폰 브라운처럼 히틀러를 위해 일했던 과학자들 같으면 아무런 의심없이 국력을 위해 일했을 터이고, 따라서 자신들의 행위를 마키아벨리 만큼이나 당당하게 여겼을 수 있다. 그들은 '훌륭한 일'을 하는 데 힘을 쏟는 전문가들이였으며, 권력을 잡은 자가 누구였든지간에 그들은 그 일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가 패배한 뒤 미군 정보부 요원이 브라운을 미국으로 데려오자, 그는 히틀러를 위해 그랬듯이 미국을 위해 다시 즐겁게 로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

(2차대전중 미국 원자탄 개발계획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 과학자들과 베르너 폰 브라운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일을 잘 해내거나 프로로서 유능함을 발휘하거나 과학적인 발견을 해냈을 때 찾아오는 순수한 기쁨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인류에게 가져다줄 결과에 대한 의구심을 잊을 수 있었거나 적어도 뒷전으로 밀어버릴 수 있었다.

_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당대, 2001 中 45~46p.)

  

최재천 교수의 말이 인간 지식의 시작은 '유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가 살다간 그 시절, 나치정권과 2차대전 전후 독일 사회 모습에서 2022년 현재 우리의 상황을 유추하기에 충분하다.

(※ 영국의 소설가이자 과학자인 스노우(C. P. Snow 1905~1980)는 1961년 이렇게 썼다.

"인간의 길고 어두운 역사를 돌이켜보면, 반란이라는 이름보다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끔찍한 죄악이 훨씬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엄격한 복종률 속에서 훈련된 독일 장교단(German Officer Corps)은 ...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사악하고 대규모였던 전쟁행위에 동조하고 참가했던 것이다."

_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당대, 2001 中 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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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 개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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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공부- 어떻게 배우며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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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아름다움- 우리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열한 갈래의 길
김병종 외 지음 / 이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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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리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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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의 질주 - 정운영 교수가 천년대의 전환기에 던지는 화두
정운영 지음 / 해냄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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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p. 자유에 대한 모독은 시대 해체의 징후이다. 봉건 사회가 해체되면서 지배 계급은 생계와 생산의 수단인 토지로부터 농민을 추방한 뒤,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자유'를 하사했다. 경쟁력과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현대판 주문(呪文) 역시 일터에서 내쫓은 자유와 눈치껏, 재주껏, 요령껏 살아남을 자유에 대한 훈시이다. 시대의 유행인 사회 안전망이란 결국 재주와 요령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위한 나라의 적선 수단일텐데, 실로 그것은 걸인과 부랑민 수용으로 책임을 다한(?) 자본주의 역사의 구빈법 시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과 삶에 대한 불안의 극대화, 기껏 그것이 세기말 인류의 지혜가 안출한 경쟁력 향상의 첨단 비기(祕器)란 말인가?

 

23p. 오해가 없도록 못박는 말이거니와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원흉은 단연 재벌의 방만한 차입 경영과 문어발 확장의 탐욕이며, 거기 뒷돈 대며 함께 놀아난 금융의 탈선이다. 그것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실책 역시 공범이다.

 

26p. 하느님의 섭리였는지 결국 로마가 굴복하고 회개했지만, 나는 그 탄압을 자초한 기독교의 배타성에 주목하려고 한다. 나만이 구원의 길이고 너는 가짜라는 그 배타성 말이다. 그것은 마치 이 지구를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계로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서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는 대신, 두 체제가 서로 나든 너든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한다고 피터지게 싸우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사회주의의 붕괴로 이 지구에는 자본주의의 유일 체제가 형성되었다. 사회주의라는 견제 세력이 소멸되자, 자본주의는 온갖 독선과 횡포를 자행했다. 이윤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을 잘라도 무방하고, 자본이 뻗어나가는 데에 이웃 나라의 희생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여기 걸려든 것이다.

 

38p. 세계화는 주변부의 무장을 원천적으로 해제하려는 강대국의 국가 이기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p. 대포를 녹여 밥을 만드는 것은 정치의 일이다.

 

78p. 국제통화기금은 달러를 중심으로 세계의 경제 질서를 편성하려고 만든 기구이며, 그 창설 의도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86p. 2차 대전이 끝난 뒤 1차 대전의 치부책을 다시 꺼내는 영국인의 기질도 눈여겨볼 만하지만, 이들 선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과거에 대한 집요한 책임 추궁과 장래에 대한 철저한 경계이다. 선거는 현재 치르지만 그것은 과거와 미래를 묶는 노끈이기도 하고, 그 관계를 자르는 가위이기도 하다.

 

136p. 미국의 모라토리움을 막아주는 힘은 미국 경제의 실력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이고 군사력이다.

 

143p. 1976년 대자보로 가득한 천안문 광장(1976년 저우 사후 천안문 광장에서 2,600명이 사살됨)에 대고 민주 벽은 좋은 것이다. 인민이 자유로워야 하니까라고 칭찬했던 덩이 1989년 천안문 시위대를 향해서는 적에게 일말의 동정도, 먼지만큼의 관용도 보여서는 안된다고 외치면서 피를 흘리고라도사태를 진압하라고 정치국에 독촉했다. (이후 3,700명이 천안문에서 죽었다.)

 

185p. 박정희가 아니면 그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그가 아니었다면 더 잘 이루었을 것이란 반론만큼 무력하기 때문이다.

 

207p.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 아저씨는 정식 근로자이나, 염색 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청년은 연수생에 불과하다. 그런 낯간지러운 궁리를 마련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한다.

 

223p. 매국노의 재산권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일제 35년의 강점이 그대로 합법적이고, 해방 이후 52년 동안의 일제 청산 노력이 말짱 헛것이었다는 증명이다. 법관이야 법률에 따라 고지식하게 판결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런 법을 방치한 역사가 잘못이다. 일제와 싸운 보답으로 조선족 자치주를 만들어준 중국에 낯이 뜨거웠다. 저들은 잊어도 그만인(?) 은혜를 잊지 않는데, 우리는 잊어서는 안될 매국조차(!) 잊은 것이다

서노불이(恕怒不異) 용서와 분노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용서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분노해야 한다. 분노 없는 용서는 분별 잃는 비굴일 뿐이다.

 

260p. 요즘 저는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자유를 의심합니다. 지난날 우리를 괴롭혔던 공안 기구의 검열이나 정보기관의 압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전시대적 유물이 크게 줄었는데도 불안은 가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언론 자유의 과잉 때문입니다어떤 인물이나 행위에 대한 평가만 해도 그렇습니다. 권력의 눈치를 읽으며 특정인을 듣기조차 간지러울 만큼 추켜세우거나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저질 선동성 활자 매체는 말할 것도 없고, 검열 불가의 인터넷을 비롯한 최첨단 전자 매체가 누리는 언론의 자유는 가히 언론 공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사람 잡을 얘기를 함부로 써대고도 언론의 자유라고 뻗대는 한, 쉽사리 손대지 못한다는 세상의 약점을 파고든 영약한 언론 장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듣기 민망한 아첨과 근거 없는 독설로 독자를 홀리며, 그렇게 세를 불리고 돈을 버는 언론 간상배(奸商 輩)가 너무 많습니다. 그것도 언론이라고 우기니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301p. 4410개월 만에 석방되어 세계 최장기 복역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김선명은 내가 타협할 수 없었던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폭력에 굴복하면 그 폭력을 휘두른 자들과 공범이 됩니다. 이데올로기 그 자체는 잣대가 아닙니다.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견뎠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기쁨이었습니다라고 전향 거부의 사연을 토로하면서,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도 내 조국이고 여기도 내 조국이라고 대답했다. 이 시대의 치부를 도려내고 분단의 상처를 쓰다듬을 지혜와 용단을 새 정치에 바랄 수는 없을까?

 

304p. 나의 관심은 오히려 전체 이익을 위한 강대국의 책임 따위가 과연 존재하느냐는 질문과 그 대답에 있다. 역사와 현실이 가리키는 대로 이것은 한낱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

 

305p. 실제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구별은 강대국 편의의 레토릭일 뿐이고, 세계 경제에 대한 공헌과 자국 이익의 추구 역시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동의어에 불과하다.

 

337p. 저항에는 역설이 따릅니다. 자유와 평등과 우애를 구호로 내건 프랑스혁명은 인류 역사에 가장 치열한 저항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저항으로 혁명에 성공한 뒤 지배 계층은 즉시 더 이상의 저항을 불법으로 단죄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곧 저항과 저항 거절의 반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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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3 - 중원을 장악한 남방의 군주 춘추전국이야기 3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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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반도 임치를 수도로 삼고 제나라는 동쪽으로 바다를 끼고있어 그들의 관심은 중원이 위치한 나머지 서쪽에 있었다. 그만큼 신경과 걱정의 국력 소모를 줄인다. 중원 한가운데 위치해 네방향 모두 대응과 경영을 떠안은 진晉나라는 싸움닭과 같은 모습이다. 이들은 각종 전쟁을 수단시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태행산맥과 황하 사이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위치해 땅이 부족한 진나라는 유력 씨족 간의 논공행상과 내부의 권력분점 문제로 벌어지는 국내의 시끄러움에도 항상 안과 밖을 엮어 유리하게 처리하는 일에 능란하며 지속적으로 패자국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낸다. 秦은 관중에서 동쪽 晉을 바라보며 사세를 분석하고 언제건 晉을 뛰어넘어 중원이 있는 동으로 튀어나오려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 남방의 초가 장왕의 성세를 누리는 상황에도 이들 제,晉,秦 3국은 대국의 면모를 지닌 전체적으로 4강체제였다.


초장왕을 노자와 대비시키는 내용이 흥미롭다.


247. (초)장왕이 대답한다.

'이 못난 이가 내는 계책이 들어맞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보다 못하니 근심하는 중이오. 중훼가 한 말이 있소이다. '제후가 스스로 스승 될 사람을 얻으면 그는 왕자가 되고, 벗 될 사람을 얻으면 패자가 되며, 의심을 해보는 사람을 얻으면 나라를 잃지는 않으며, 혼자 계획을 세우는데 주위에 자기만도 못한 사람들만 있으면 망한다' 라고요.

지금 과인은 재능도 한심한데, 여러 신하들이 과인보다 못하니 나라가 망하지 않겠소이까? 그래서 근심하는 것이오.


248. 세상에 잘난 사람들은 수도 없다. 군주가 신하들보다 잘났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움이다. 군주는 '쓸모없는' 통나무나 빈 그릇과 같은 사람이다. 자신은 질박하고 비어 있어서 '쓸모 있는' 신하들이 모여야 나라가 풍성해지는데, 그 자신이 '쓸모 있는' 것이 자랑할 일인가? 장왕은 부끄러워했다. 이렇게 장왕과 "노자"는 쌍둥이다.


한수와 장강 사이에 자리잡은 남쪽 초楚나라는 제나라 환공-관중, 진나라 문공-호언에 이은 초나라 장왕-손숙오 시기에 중원의 패자가 된다.

제나라는 상대적으로 서쪽만 상대하며 땅이 넓고 물산이 풍부하여 계속 대국의 면모를 보전한다. 진晉나라는 복잡한 나라 내부 사정은 물론 동서남북으로 모든 적들을 상대해야 할 지정학적 위치여서 군사력 부분이 최강이다. 이런 초, 진, 제, 秦  4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낀 정나라, 송나라, 노나라, 위나라, 등 중견국과 그외 너무 작은 소국들은 그야말로 이눈치 저눈치를 살피며 매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험한 상황의 연속이다.


남방 초나라는 황하와 중원의 화하족과는 다른 변화무쌍한 성격을 가진다.

화하족은 전쟁을 통해 얻은 점령지의 인민과 포로를 노예화하는 것이 그들의 오랜 전통이였는데, 남방 초나라는 점령지의 인민과 포로를 노예로 부리지 않았고 그 관대함으로 통합을 거듭했다. 332


333. 중원과 오랑캐의 제도 중에 무엇이 더 야만적인가? 중국에 속하지 않는 나라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그 사람들을 노예로 쓰는 사회가 야만적인가, 아니면 자신과 다른 종족들을 포용하고 장점을 흡수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사회가 야만적인가? 낡은 중원의 사상으로는 팽창하는 세계를 담지할 수 없었다. 아마도 초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팽창은 거기에서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

남방의 여러 민족을 통합하고 아울러 전국시대, 나아가 통일기에 중국의 영토를 회하는 물론 장강 이남까지 확장시킨 나라는 제나라도 아니고 진나라도 아닌 바로 초나라였다. ......

"노자"에 "골짜기는 낮은 곳에 처하기에 물을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초는 화하가 아닌 2류 민족이었기에 그 많은 민족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마 초가 없었으면 화하는 황하를 벗어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억척스럽고 강인한 진晉나라는 춘추시기 다른 어느 나라도 쉽게 넘어설 수 없는 면모를 계속 보여준다. 저자는 초나라의 문화 중 노자의 도가사상과 전국말기 굴원, 삼국지의 관우를 말한다. 그러나 영웅 호걸은 꼭 큰나라에서만 나오라는 법은 없으리라. 

4권은 중간에 낀 약소국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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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테를 위한 비망록
정운영 / 한겨레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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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기억을 지운다는 "레테를 위한 비망록"이 책이름인데 그 안 머리글 제목은 선행의 기록을 알린다는 "에우노에를 향하여" 이다.

고 정운영 교수가 잊지말자 하는 1995년 김영삼 문민정부의 진행부터 1997년 IMF 발발 직전까지의 기록이다. 개혁과 과거사 단죄의 후퇴를 포함해 시작만 호기로웠던 용두사미 문민정부의 한계와 OECD 가입 후 어려워져만 가는 나라안팍 경제를 걱정하고 있다.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에 따른 이념적 돌파구 모색과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67. 1980년대 후반 단군 이래 초유의 국제수지 흑자가 투기 광풍을 몰고 왔다면, 90년 초반의 호황은 투자와 소비의 급격한 '초과수요' 열기를 불렀다. 확실히 우리 경제는 흑자에 약하다. 가계든 정부든 항상 적자에 시달리다 보니 적자에는 제법 단련이 되었는데, 어쩌다 흑자를 대하면 어떻게 주체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딱한 체질이 되어버린 탓인지 모른다.


69. 투기와 독점은 시장의 실패 가운데 그 천민적 속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다. 투기가 집과 땅을 휩쓸어 사회가 온통 망국명을 앓고, 분신 자살과 신도시 건설이 뒤를 이은 것이 불과 수년전이었다. 


136. 저의 전망으로는 '당분간' 한국 사회에 혁명과 같은 획기적인 변화가 오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마르크시즘을 비롯한 진보적 대안 탐색이 반드시 어떤 성과가 기대될 때만 의미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폐기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 예수의 말씀이 당장 실현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음전파의 노력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220. 색깔 유령은 계급적 적대를 부추기며 미구에 '급진' 유령으로 변신한다. 국민소득 1만달러를 넘는다는 자신감의 반영인지 사회의 보수화 추세는 도처에 역력하며, 누구도 그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혁이 보수의 목을 비틀어 주머니라도 터는 듯이 비뚜로 선전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여권이 내놓는 개혁은 개량이고 개선이지만, 재야가 부르짖는 개혁은 불온으로 덧칠되곤 했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독재자가 민주주의 '형식'의 요구조차 불온으로 단죄하며 권력 유지의 명문으로 악용했던가?


284. 대학의 지식은 "대답보다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역설이 그것입니다. 생태학자 배리 코머너가 분명하게 지적했듯이 "올바로 제기된 질문은 잘못 제시된 답변보다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질문이 바르면 언제라도 해답을 찾을 가능성이 있지만, 질문 자체가 잘못되면 해답에 이를 기회가 영영 없기 때문입니다.


290. 지식인이란 거부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다.


307. 일찍이 마르크 블로흐가 갈파했듯이 허위란 그 나름대로 하나의 증거가 되는 법이어서, 허위를 방관하면 그것이 곧 역사의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 한겨레통일문화재단에 재산을 기증하고 작고한 김철호 선생은 "뼈에 무슨 색깔이 있겠느냐"면서 분단 희생자의 진혼과 위령을 당부했다.


317. 정신이 왜소하면 사람과 사회의 관계가 한층 피폐해진다. 계급과 민족의 절박한 현안은 애써 외면한다고 해서 소멸될 대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실종된 담론의 복원에 열중해야 한다. 사회 정의의 실현과 분단 해소가 결코 포기할수 없는 과제라면, 거대 담론에 집착하고 그 열망을 간직할 의무가 우리한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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