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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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의 행태는 소름끼치게 놀랍다.

내로남불, 자가당착, 견강부회는 누구를 막론하고 공분의 대상이다.

제발 우리는 똑같이 그러지 말자. 적어도 욕하는 그들과는 다르게 해보자.


40p. 당시 도쿄재판에서 연합군이 식민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이유는 영국이나 미국이 전후에도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려고 했기때문이다.


43p. (1951.9.8.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때 일본 정부는 미국과 일본의 청구권협상은 양국간의 재산권협정이며 개인의 피해 및 재산권에 대해서는 미국에 직접 청구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1955년 일본이 소련과 국교 정상화를 하며 평화협정을 맺을 때에는 소련의 수용소에 억류된 일본군인들의 사망, 강제동원, 임금 미지급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이때 일본 정부는 소련과 맺는 평화조약은 전쟁피해에 대한 국가간 협의이며 개인의 재산 및 피해에 대해서는 개별 청구가 가능하다고, 개인청구권까지 소멸시킨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49p. 일본 극우세력은 청일전쟁 및 러일전쟁 그리고 한반도 식민화 등을 겪으며 한반도가 일본의 영향권 아래에 있어야 일본의 안전이 보장되고 유지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만약에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한반도 분단 유지 정책이 실패한다면, 일본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극우 보수세력들은 38선이 쓰시마까지 내려왔다고 하면서 제2의 한국전쟁을 기획할 수 있는 정치 토양을 만들어 갈 것이다.


56p. 야스쿠니는 정확히 이야기하면 국가가 아닌 천황을 위해서 죽은 이들만이 합사될 수 있었습니다.


58p. 1989년에 죽은 히로히토(쇼와) 천황과 생전 퇴임을 한 현재의 상황 아키히토 천황은 (A급 전범의 합사 사실이 알려진) 1978년 이후 한번도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66p. 정치를 견제하는 (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 보수정치의 특성입니다.


72p. 국가가 개인의 죽음을 미화하고 영웅화하면서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했던 추도 방식이 우리에게도 있었는데, 우리 역시 그 방식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면 야스쿠니 문제는 다른 방향에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76p. 일본군 '위안부'나 한국인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일본에 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걸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군인이 와서 총칼로 끌고 갔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강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전 세계 학계에서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 및 아동의 인신매매, 예방, 억제, 처벌을 위한 의정서', 흔히들 말하는 팔레르모 의정서를 통해서 이미 강제성의 개념을 명확히 해두었습니다. 'trafficking'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불법 거래라는 말입니다. 착취를 목적으로 위협, 무력행사, 사기, 기만, 권력 남용 등을 동원해 사람을 보집하거나 운송, 인수하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반일 종족주의』를 쓴 사람들은 모집이었고 관알선이었으므로 '강제연행'이 아니다, 자기 발로 갔으니까 '강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갔다는 말은 국제법에 합의되어 있는 기초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입니다.


79p.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좁은 민족적인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103p. 여러 전쟁을 수행하면서 일본은 점차 군국주의로 향해 갔는데, 이 과정에서 2.26쿠데타(1936)와 쇼와유신이 일어났습니다. 2.26쿠데타는 황도파라고 불리는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었던 군부가 천황 친정을 주장하며 중앙정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고 했던 사건입니다. 2.26쿠데타의 정신적 지도자는 '기타 잇기'라는 독특한 사상가였습니다

...... 아무튼 기타는 단일하고 강력한 지도자 아래에서 전체주의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쿠데타는 불가피하다는 그의 생각이 2.26쿠데타의 사상적 배후로 지목돼 사형당했습니다. 2.26쿠데타는 도쿄를 장악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천황을 추종하는 황도파가 일으킨 쿠데타인데 바로 그 천황이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지요.

황도파의 정신세계와 박정희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06p. 요시다 시게루는 일본 전후 정치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요시다가 일본은 이제 살았다며 실제로 만세 삼창을 했다고 하죠.


108p. 기시 노부스케는 사실상 만주국을 설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만주 경험은 만주군 장교로 근무한 박정희와 잘 맞아떨어졌어요. 사실 유신 시대의 국방국가 한국은 만주국 모델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생겨난 한일 간의 유착관계에는 기시와 박정희가 얽힌 만주국 인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습니다.


155p. 이제 우리는 서구형 근대만을 표준으로 놓고 모든 사회를 거기에 끼워 맞추려는 시각에 대해 반박할 줄 압니다. 다른 발전의 길도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가 발전을 통해 입증해서 콤플렉스가 없어진 편인데, 1960~70년대 우리가 아직 후진국 단계에 머물러 있었을 때는 그런 반박을 쉽게 하지 못했습니다. 발전경로가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우리도 봉건이 있었고 스스로 자본주의를 반전시킬 가능성도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나온 게 자본주의 맹아론입니다.

   맹아는 싹이지요. 자본주의 맹아론의 핵심은 우리의 자본주의 맹아도 발전할 수 있었는데, 이 싹이 자라질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었는데 일본이 와서 짓밟아서 실현할 수 없었고, 이식 자본주의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지요. 물론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맹아론은 말하자면 죽은 자식 나이 세는 격이지 싶습니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요?


208p. 기가 막힌 것은 (일본에서 북한으로 재일조선인을 보내는) 북송저지사업의 책임자가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였다는 사실이지요. 


211p. 일본사회가 재일조선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도 불합리한 일이지만, 한국사회가 재일조선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을 지닌 체 대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불합리합니다.


214p. 우리가 재일조선인에 대해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전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일본이 그 어느 나라보다 외국인과 피가 섞이길 원치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225p.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 당시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격렬하게 반대운동을 벌였습니다. 일본의 야당과 진보세력이 반대운동을 주도했지요. 하지만 두 나라에서 일어난 반대운동의 맥락은 전혀 달랐습니다. 한국은 식민지배 역사를 어떻게 많지도 않은 돈과 바꿔 팔아버릴 수 있느냐며 굴욕적인 협정을 접고 제대로 된 식민지배 청산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에 비해 일본에서 벌어진 반대운동은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본에는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반대했던 투쟁, 이른바 '안보투쟁'이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일본이 재무장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요. 그래서 한미일의 군사동맹 강화로 이어질지 모르는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한 것입니다. 반대운동의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자본이 한국에 투입되어 일본의 저임금 구조가 고착되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등장한 구호가 바로 "박정의에게 줄 돈이 있으면 나에게 달라" 였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에 경제 지원을 하지 말라는 주장인데, 이 대목에서 당시 일본 진보세력이 한국을 바라보는 관점의 한계가 엿보입니다. 바로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이나 한국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반대하는 것에도 분명 의미가 있었겠지만, 한일관계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보수세력뿐 아니라 진보세력에도 전혀 없었습니다.

   1970년대 한국에서는 인권을 탄압하는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고, 일본사회에서는 그런 사건들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전태일의 분신 항거와 김대중 납치사건은 일본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지요. 일본인 중에는 전태일을 접하고 비로소 인권 문제에 눈을 떴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이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의 진보세력은 한국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납치사건을 대했지만, 그러지 못한 일본의 일반 대중에게 김대중 납치사건은 한국도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을 주었습니다. 한국이 강제징용 등을 사사건건 걸고넘어지는데 알고 보니 한국도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며 납치를 한 것입니다. 김대중 납치사건 탓에 한국은 정당성을 잃었고 일본은 자신들을 합리화했습니다.


270p. '일본은 한국의 통일을 이루어주지 못하지만, 우리의 통일을 방해할 힘이 있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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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열강의 식민지 통치와 국민통합 동북아역사재단 기획연구 38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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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문제에 대한 관심 확장에서 열강들의 식민지 통치를 비교하는 책이 궁금했다.

이 책에서는 영국의 인도 식민 지배,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지역과 인도차이나 식민 지배,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지역 식민 지배, 그리고 일제의 홋가이도와 사힐린 선주민 아이누인에 대한 식민 지배, 일제의 타이완에 대한 식민 지배 중 교육문제, 조선에 대한 식민지 교육 문제, 마지막으로 조선-만주 경계의 압록강 수력발전소를 둘러싼 일제의 만주지역 식민 지배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1. 2022.09.08.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이 죽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아직 (영국 여왕의) 장례식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_BBC news 코리아, 2022.09.14. "여왕의 장례식엔 누가 참석하고 불참하나?" 


202p. 근대 일본은 '천황제 절대군주국가'였다.

... 어떠한 체제라도 민중의 지지와 충성이 없으면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으므로, 이러한 지배 체제를 창출한 메이지 공신들은 제정일치와 국민교화라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이데올로기적 조작 행위를 하여 작위적인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고 보급시켰다.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천황에게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서구적 근대화와 일본 국수의 보존 및 국민사상의 통일이라는 목표들을 동시에 이룩하기 위하여 창출된 정치 이데올로기임과 동시에 종교 이데올로기였다.


2. 프랑스 식민지 근대화 담론과 식민지 교육

75p. 게다가 '근대화'라는 생각은 매우 모호했다, 식민지주의를 정당화했던 근대화 활동은 '토착민'들이 계속해서 '야만인'으로 간주되지 않았다면 모든 토대를 상실했을 것이다. '근대화'에 대한 담론은 따라서 언제나 프랑스의 지배를 지지했고 피식민자들을 식민지 체제에 통합하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식민지주의가 문명(자연적 재앙의 감소, 땅에 대한 '가치부여' 등)을 확대할 것이라는, 그러나 결코 그 목표들을 달성하려고 하지 않는 생각이 계속해서 되풀이되었다.


77p. 사실 (식민지 치하에서) 현지의 유력자들은 계급의 논리에 따라 그들의 '동포들'을 착취하기 위해 식민지 시스템을 활용했다. 

식민지 교육정책의 세 가지 목표를 여기서 되돌아보면 그것은 교육되는 지식을 통제하기, 최소한의 근대성을 침투시키기,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기능에 적응하는 토착 엘리트를 형성하기였다. 


204p. 병탄 직후인 1910년 9월에 식민지 교육정책 수립의 실무자였던 일본인 구마모토 시게키치는 "주로 조선 민족을 과연 동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논구하고 아울러 그것에 관련된 조선민족 교화의 방침에 대하여 사견을 진술한" 것이라는 "교화의견사"를 비밀문서로 제출하였다.

...... 그러나 그는 이러한 철저한 동화는 류큐나 타이완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우선 차선책으로 '조선민족의 순량화'를 주장하고 있다. 즉 "조선민족을 교화하여 제국의 순량한 신민으로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그들로 하여금 일본민족에 대하여 항상 종속적 지위"에 머무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범위도 초등교육과 직업교육에 한정할 것을 주장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금후 일본제국의 통치에 있어서 가장 장애되는 것은 아마 (조선인의) 민족적 자각심 일 것이다. 그렇다면 금후 교육 시설에서는 이 점에 가장 유의하여 (조선인) 이들로 하여금 민족적 자각심을 각성시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극히 간요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 점으로부터 고찰하더라도 초등학교 이외에 할 교육상의 시설은 이들 생업에 직접 관계되는 것에 한하고 ......"

 

...... 이러한 그의 견해는 이듬해 발포된 조선교육령에 그대로 반영도어 있으며, 총독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순량화'에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인 동화정책을 강행하였던 것이다. 


3. "역사가 밥먹여 줍니까? 역사를 알아 어디에 쓰나요?" 라는 이가 있었다.

"그래요? 돈벌이 잘하고 잘먹고 잘~사슈. " 라고 하고 말았다.


205p.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이던 세키야는 조선학제안이 마련되자 이를 일본 본토에 있던 법학박사 호즈미에게 보내 의견을 구하였다. 호즈미는 이에 대해 사신 형식의 의견서에서 식민지 교육의 목적과 한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조선에서 교육은 우선 우리 황실을 숭경하는 정신을 부식(도와서 뿌리박게)하고, 특히 질서를 중시하고 규율에 복종하는 관념을 기르고, 그리하여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지식과 기술을 교수함으로써 일신일가를 다스릴 수 있으면 족하다"


...... 호즈미는 이어서 "교육은 국가 통치권의 행동에 속하고 다른 행정과 다를 바 없는 국가의 일이며 혹은 국가가 사인에게 명하여 행하는 일"이라 하여 교육을 학문과 구별하고 철저히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입, 도구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교육 내용, 교사, 학교 경영에 강력히 국가가 간섭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4. 새로운 역사의 창조 혹은 가공

122p. 새로운 과거들이 급격한 변화의 시기 동안 출현할 수 있으며, 이 과거들은 그룹들, 특히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필요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기억되고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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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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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운영 교수의 유고집이고 현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정운영 선생의 글은 덮어두고 좋아하지만 거기에 맛깔나는 역사 분석이니 여간 군침이 동하는 책이다.


19p. 20세기를 맞는 노동자 계급의 가장 큰 공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비 증강과 전쟁 위협이었고, 따라서 반전은 제2인터내셔널의 가장 절박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창립 대회부터 1912년 스위스 바젤의 임시 대회까지 모두 9차례나 열린 제2인터내셔널의 세계 대회에서 반전 결의가 채택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 소속의 각국 사회당과 사회주의자는 돌연 태도를 바꾼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행동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투쟁이라고 거듭 확인한 이제까지의 반전 결의를 외면하고 참전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조국에 스미고 민족에 담긴 숱한 인연이 국경을 넘는 사회주의 형제애다짐으로 간단이 잊힐 일은 물론 아니었다.


25p. (1차대전이 끝난 1919년의 세계) 투쟁은 강자의 승리로 끝나고, 강자의 승리는 진보의 조건이기 때문에 명예는 부적격자의 희생으로 얻어진다. 1919년 이후에는 오직 파시스트와 나치만이 국제 관계를 합리화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장치에 집착했다. 그러나 서구도 이에 못지않게 의심스럽고 불길한 방편에 의지했다. 이해의 조화(harmony of interests) 붕괴에 강타당하고 다윈주의의 탈선에 충격받은 뒤, 그들은 새로운 국제적 도덕을 강자의 권리가 아니라 소유자 권리의 토대 위에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지금까지 제도화한 모든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이 유토피아도 기득권의 도구가 되고, 현상 유지의 모루로 변했다.


30p. 확실히 1930년대는 동서 양 진영에서 전체주의가 활개를 쳤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존을 희롱하는 초유의 대공황과 대결했으며, 그 탈출구는 뉴딜과 파시즘처럼 크게 달랐다. 그러나 뉴딜식 개입과 지원이든, 파시스트의 통제와 징발이든 전체주의적 처방이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케인즈가 실업이 왜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히틀러는 그 대책을 발견했다는 존 로빈슨 여사의 탄식은 이런 사정을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자본주의 반대쪽의 사회주의도 1930년대 들어와 자신의 운명을 걸고 모험을 강행했다. 스탈린 경제의 강제와 탈선, 스탈린 정치의 공포와 전율이 그것이다. 스탈린의 방법이 승리한 것이라면, 그 승리는 전체주의적 방식의 승리였다. 스페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프랑코의 대포에 장렬히 맞선 국제여단의 의기는 차라리 악과 선이 대결하는 세기의 에피소드였다. 자본주의든 파시즘이든 사회주의든 동시에 위기를 맞고, 각기 전체주의적 처방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를 이룬다.


32p. 2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 진영과 파시스트 세력의 전쟁이었다.

...... 1차 세계대전 뒤의 베르사이유 체제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를 설계한 얄타 체제(미국, 영국, 소련)도 전혀 정직하지 않았다.

33p. 세계는 즉시 적대 진영으로 분열했고, 열전에 이은 냉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냉전의 빌미가 된 한국전쟁을 계기로 독일의 재무장과 일본의 경제 건설이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에 핵심 현안이 되었다. ...... 냉전은 체제와 체제의 대결만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모순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발전해왔다.

 

사회주의가 뚫린 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소련 경제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교섭이었다. 1970년대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경제 체제를 개혁하는 고통스러운 문제와 대결하는 대신 새로 발견한 세계시장의 자원들(유가, 편리한 차관)을 활용하는 쪽을 택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무덤을 팠던 것이다. 냉전의 역설은 소련을 패배시키고 결국 파산시킨 것이 대결이 아니라 데탕트였다는 사실이다.


38p.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광기는 무대와 주역을 달리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벌어졌다. 소련이 탱크를 몰고 들어와 프라하의 봄을 작살냈기 때문이다.


49p. 세계화는 한마디로 자본의 효율성에 맞춘 경제 질서의 폭력적 개편을 가리킨다. 자본에 이익이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의 활동에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려는 시대의 추세이다.


77p. 역사의 모든 탈선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제국주의 통치마저 식민지 개명과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81p. 2의 일본을 우려한 미국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에 본때를 보이고, 가속적인 유럽통합에 맞서 아시아 시장을 자국의 주도 아래 확실히 묶어두려는 미국의 작전이 외환위기를 방조하거나 적어도 조기에 진화하지 않았다는 음모설을 되뇌는 것은 부질없는 푸념일지 모른다.

 

84p. 회폐 축적과 실물 축적의 '양분화'는 실물 경제의 회전을 능가한 금융 계약의 양적 증대와, 근융체제에 대한 실물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예속이란 질적 변화로 표현된다._세기말 자본주의 단상, 1998.08.21


106p.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자본에 의한 지구 석권이고 자본의 요구에 따른 지구 질서의 재편이기 때문이다.


107p. 자본주의 자체가 지본의 자유의 성과이자 탈선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113p. 투기자본의 원천은 1980년대 호황에서 집적된 이윤이다. 그러나 그 성장 배경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탈규제 정책이다. 그리고 세계화는 그것을 전지구로 유인하고 확산한 통로가 되었다.


126p. 완전고용과 사회 평등의 이상에 입각한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형'은 근래의 실업률 증대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고용 확대 및 '적극적 노동 시장' 이란 전통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반면 영미계 '신자유주의 모형'은 임금 규제와 노동 시장 신축화로 불황을 극복했다고 자랑하지만, 불완전 고용과 빈부 격차 확대에 따른 사회 불안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138p. 더 많은 소비, 그리고 그 뒤를 대는 생산력 증대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자신도 모르게 취한 '가상 소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인간의 이기마저 선동하는 제도이므로, 그 문명에서 자기 해방과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경제가 생산력 증대의 함정을 피하는 것은 경제가 자신의 존립 근거를 부인하는 격이다. _세계화에 대한 '비우호적' 질문, 1999.01.26


254p. 애초에 길이 있어서 사람이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꾸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이 지혜는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이라는 우리의 논의에도 빌릴 만하다.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자꾸 부딪치면서 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민족의 고단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_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 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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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 전2권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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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원치 않는 대접이나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맞딱드린 현실을 나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어떻게 상대방에 대응하고 무엇만큼은 마음 속에 새기고 이후로 자신과 주변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가 바로 그 사람 고유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고 보여주는 징표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이민진님 소설 '파친코'를 보며 주요했던 첫인상은 바로 오랜 시간 일본 안에 살며 매 순간 순간 일본과 관계 맺고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재일조선인의 삶을 응원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여동생의 감동어린 추천으로 이민진님의 소설 '파친코'를 읽기 직전, 어떻하든 올추석 연휴 전까지 조정래 어르신의 두 번째 대하소설 '아리랑' 전12권 독파를 완수했다. 이어진 소설 '파친코'가 '아리랑'에 이어 조정래님의 다른 대하소설 '한강'으로 이어지는 관심의 미묘한 촉수를 동화끈으로 단단히 이어주는 튼튼하고 좋은 브릿지가 될 수 있겠다.

(※ '파친코'는 일제시대에서 1990년대 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둘째, 조선 사람 4대(훈이, 양진 → 선자, 한수, 이삭, 요셉, 경희 → 노아, 모아수 → 솔로몬)에 걸친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자신에게 결국 다가오고야 말았고 스스로 결코 원한 적 없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도록 맡겨지고, 혼자 감당하고 뛰어넘기에는 넘치고 버거운 맞딱드린 현실을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살아내느냐 하는 부분이였다. 

이 부분 항상 우리 민족이 다른 누구보다 뛰어난 분야이기도 하지만, 역시 '파친코' 소설 속 조선인 4대에 걸친 인물들이 살아내온 삶의 모습들은 몹시 경이로왔다. 

(※ 단순히 "살아내온 삶"이라고 여기 표현하지만 이 짧은 어휘는 내 표현력의 한계이고, 또 격식차려 "경이로왔다"고 간단히 말해도 되는 건가 하는 민망함을 스스로 느낀다. 

강점기와 이후로 이어진 기나긴 삶에 대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공집합으로 충분히 느끼고 있고, 우리 서로 한글로 교감할 수 있고 궂이 말하지 않아도 흥과 박자를 함께 맞잡고 느끼는 같은 민족으로서 마음 한 쪽 길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예민한 부분을 감싸며 - 우리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오는 얘기가 외국 신문사 상까지 여러개 수상하는-  글로벌한 시대의 서늘한 기운에 기댄 표현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각각의 등장 인물들마다 대응 방식은 다양하고 그로 인해 소설 내용은 풍성해지고 이어서 한 인간으로서 감동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이 소설 '파친코'가 뛰어나고 몹시 좋다고 말할만한 큰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이라면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독자에게 이 소설은 되묻는다.


마지막으로 사전에 잠깐 잠깐 파악한 소설 '파친코' 관련 뉴스와 드라마 동영상들에 대해 소설을 읽기 전 차라리 그 어느 것도 보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남는다. 

선입견, 확증편향 같은 사전 영상들의 잔상을 내가 원할 때마다 머리 속에서 지우고 비울수 있었다면 두 권 책을 읽는 내내 더욱더 풍성한 관점과 자유로운 상상의 추석 성찬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영상을 보기 전에 먼저 책으로 소설을 보고, 글로 읽을 것을 강조한 주위 가족들의 경험담에 나 또한 동의와 공감의 한 표를 합친다. 

'파친코'는 한 페이지에서 결혼과 출산이 거듭될 정도로 호흡이 빠르고, 다양한 읽을거리와 세련된 관점을 포함하고 있어 좋은 추석 잔치상과 같은 소설이였다.


1권

24p. 마침내 양진은 네번째 아이이자 유일한 딸인 선자를 낳았다. 선자는 살아남았다. 선자가 세살이 되고서야 선자의 부모는 옆에 누워있는 작은 형체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지 거듭 들여다보지 않고도 잘 수 있었다.

77p. 아버지는 그런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입은 것이나 가진 것은 사람이 마음과 성격이랑 아무 관계가 없다고 했다.

187p. 주님은 젊은 여자가 계명을 따르려고 몸을 파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결과가 좋다고 해서 죄가 씻어지지는 않는 법이었다.

190p. 우리가 착취당했다고 해서 남을 착취해도 될까, 애야?


2권

104p. 아키코는 자신이 부모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인이 선량하든 불량하든 상관없이 노아를 조선인으로만 보는 것은 결국 불량한 조선인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키코는 노아를 한 인간으로만 볼 수 없었고, 노아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저 한 인간으로 여겨지고 싶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269p.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화와 열이 너무 많은 핏줄이라고 말했다. 씨, 핏줄. 이런 한심한 생각에 어떻게 맞설 수 있단 말인가? 노아는 규칙을 모두 지키면서 최선을 다하면 적대적인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노아의 죽음은 그런 잔인한 이상을 믿게 내버려둔 선자의 잘못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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