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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ㅣ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고 정운영 교수의 유고집이고 현실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 책이다.
정운영 선생의 글은 덮어두고 좋아하지만 거기에 맛깔나는 역사 분석이니 여간 군침이 동하는 책이다.
19p. 20세기를 맞는 노동자 계급의 가장 큰 공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비 증강과 전쟁 위협이었고, 따라서 반전은 제2인터내셔널의 가장 절박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창립 대회부터 1912년 스위스 바젤의 임시 대회까지 모두 9차례나 열린 제2인터내셔널의 세계 대회에서 반전 결의가 채택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 소속의 각국 사회당과 사회주의자는 돌연 태도를 바꾼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행동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투쟁이라고 거듭 확인한 이제까지의 반전 결의를 외면하고 참전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조국에 스미고 민족에 담긴 숱한 인연이 국경을 넘는 ‘사회주의 형제애’ 다짐으로 간단이 잊힐 일은 물론 아니었다.
25p. (1차대전이 끝난 1919년의 세계) 투쟁은 강자의 승리로 끝나고, 강자의 승리는 진보의 조건이기 때문에 명예는 부적격자의 희생으로 얻어진다. 1919년 이후에는 오직 파시스트와 나치만이 국제 관계를 합리화하고 격려하기 위해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장치에 집착했다. 그러나 서구도 이에 못지않게 의심스럽고 불길한 방편에 의지했다. 이해의 조화(harmony of interests) 붕괴에 강타당하고 다윈주의의 탈선에 충격받은 뒤, 그들은 새로운 국제적 도덕을 강자의 권리가 아니라 소유자 권리의 토대 위에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지금까지 제도화한 모든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이 유토피아도 기득권의 도구가 되고, 현상 유지의 모루로 변했다.
30p. 확실히 1930년대는 동서 양 진영에서 전체주의가 활개를 쳤다.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존을 희롱하는 초유의 대공황과 대결했으며, 그 탈출구는 뉴딜과 파시즘처럼 크게 달랐다. 그러나 뉴딜식 개입과 지원이든, 파시스트의 통제와 징발이든 전체주의적 처방이라는 데는 차이가 없다. 케인즈가 실업이 왜 발생했는지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히틀러는 그 대책을 발견했다는 존 로빈슨 여사의 탄식은 이런 사정을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자본주의 반대쪽의 사회주의도 1930년대 들어와 자신의 운명을 걸고 모험을 강행했다. 스탈린 경제의 강제와 탈선, 스탈린 정치의 공포와 전율이 그것이다. 스탈린의 방법이 승리한 것이라면, 그 승리는 전체주의적 방식의 승리였다. 스페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프랑코의 대포에 장렬히 맞선 국제여단의 의기는 차라리 악과 선이 대결하는 세기의 에피소드였다. 자본주의든 파시즘이든 사회주의든 동시에 위기를 맞고, 각기 전체주의적 처방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다는 점에서 우연의 일치를 이룬다.
32p. 제2차 세계대전은 민주주의 진영과 파시스트 세력의 전쟁이었다.
...... 제1차 세계대전 뒤의 베르사이유 체제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서를 설계한 얄타 체제(미국, 영국, 소련)도 전혀 정직하지 않았다.
33p. 세계는 즉시 적대 진영으로 분열했고, 열전에 이은 냉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냉전의 빌미가 된 한국전쟁을 계기로 독일의 재무장과 일본의 경제 건설이 미국의 세계전략 구상에 핵심 현안이 되었다. ...... 냉전은 체제와 체제의 대결만이 아니라, 체제 내부의 모순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발전해왔다.
사회주의가 뚫린 것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소련 경제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교섭이었다. 1970년대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경제 체제를 개혁하는 고통스러운 문제와 대결하는 대신 새로 발견한 세계시장의 자원들(유가, 편리한 차관)을 활용하는 쪽을 택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무덤을 팠던 것이다. 냉전의 역설은 소련을 패배시키고 결국 파산시킨 것이 대결이 아니라 데탕트였다는 사실이다.
38p.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광기는 무대와 주역을 달리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벌어졌다. 소련이 탱크를 몰고 들어와 ‘프라하의 봄’을 작살냈기 때문이다.
49p. 세계화는 한마디로 자본의 효율성에 맞춘 경제 질서의 폭력적 개편을 가리킨다. 자본에 이익이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의 활동에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려는 시대의 추세이다.
77p. 역사의 모든 ‘탈선’에는 나름대로 명분이 있었다. 제국주의 통치마저 식민지 개명과 근대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81p. 제2의 일본을 우려한 미국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에 본때를 보이고, 가속적인 유럽통합에 맞서 아시아 시장을 자국의 주도 아래 확실히 묶어두려는 미국의 작전이 외환위기를 방조하거나 적어도 조기에 진화하지 않았다는 음모설을 되뇌는 것은 부질없는 푸념일지 모른다.
84p. 회폐 축적과 실물 축적의 '양분화'는 실물 경제의 회전을 능가한 금융 계약의 양적 증대와, 근융체제에 대한 실물 세계의 경제적-사회적 예속이란 질적 변화로 표현된다._세기말 자본주의 단상, 1998.08.21
106p.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자본에 의한 지구 석권이고 자본의 요구에 따른 지구 질서의 재편이기 때문이다.
107p. 자본주의 자체가 지본의 자유의 성과이자 탈선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113p. 투기자본의 원천은 1980년대 호황에서 집적된 이윤이다. 그러나 그 성장 배경은 신자유주의 정권의 탈규제 정책이다. 그리고 세계화는 그것을 전지구로 유인하고 확산한 통로가 되었다.
126p. 완전고용과 사회 평등의 이상에 입각한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형'은 근래의 실업률 증대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고용 확대 및 '적극적 노동 시장' 이란 전통적인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반면 영미계 '신자유주의 모형'은 임금 규제와 노동 시장 신축화로 불황을 극복했다고 자랑하지만, 불완전 고용과 빈부 격차 확대에 따른 사회 불안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138p. 더 많은 소비, 그리고 그 뒤를 대는 생산력 증대의 미망에서 깨어나지 않는 한, 자신도 모르게 취한 '가상 소비'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자본주의는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인간의 이기마저 선동하는 제도이므로, 그 문명에서 자기 해방과 구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경제가 생산력 증대의 함정을 피하는 것은 경제가 자신의 존립 근거를 부인하는 격이다. _세계화에 대한 '비우호적' 질문, 1999.01.26
254p. 애초에 길이 있어서 사람이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꾸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이 지혜는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이라는 우리의 논의에도 빌릴 만하다.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자꾸 부딪치면서 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민족의 고단한 운명이기 때문이다. _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 200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