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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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우연히 선생님들을 통해 알게 된 이 책의 처음은 소설이었다.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으로 이 책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 했다. 그런데 독특한 주인공<릴라>를 만났고 그 주인공의 친구인 또 다른 주인공<이 책의 화자 레누>를 만났다.

이 책을 쓴 얼굴 없는 작가 엘레나 페란테를 알게 되면서 이 숙제가 어려울 것을 짐작했다.

분명 작가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던져 주고 독자들이 만들어 낼 수많은 질문에 답하지 않겠구나, 이 방대한 이야기를 주조한 것은 페란테이지만 이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은 나만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많은 책을 읽지 않았지만 혼자 읽고 책을 같이 읽고 또 그 책에 대해 연구를 하는 이들의 강연을 들으면서 책을 읽다보면 같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다다른 관점으로 그 책을 받아들일 때 책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유난히 더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의 나폴리라는 도시에서의 이야기 그곳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 그 인물들을 무분별하게 얽혀서 또다른 흔적으로 남기는 작가.

 

다 마주보는 인물들이 다를테고 이해가 가는 인물과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인물이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는 뭐든지 잘하고 똑똑하고 모든 남자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의 삶은 조정하는 릴라라는 존재가 세상 어디에 존재하나고 물을 것이고 평생 우정을 나눠 가진 친구와 삶의 한부분 한부분을 비교하고 자기 삶의 높낮이를 겨루는 레누가 안쓰럽기도 하고 모든 여자에게 침을 흘리고 그러고도 사랑이라는 것을 입으로만 하는 비열한 남자 니노는 또 뭐냐고..

 

그러고도 수없이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그 관계들이 처음에는 막장이었는데 나중에는 배경이었고 그 배경을 송두리째 뒤집어서 원하는 유토피아, 파라다이스로 갈 수 없는 것, 그것은 인생을 짧게 살았더라도 길게 살았더라도 알 수 있다

 

"복잡한 시대였다." - 595쪽 

 

빈곤과 폭력이 난무하고 막강한 세력을 가진 자들로 인해 삶은 고통스럽기도 하고 무언가 올바르지 않고 누추하고 비루하다고 여기지는 곳에서도 시간을 흐르고 시대는 변화한다.

현대사회라는 모든 것이 정돈되고 깨끗한 모습의 외형으로 탈바꿈한다 해서 그 속에서 삶을 사는 인물들의 생활이 정돈되는 것은 아니다.

 

한없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주고 삶을 독려해도(그 예로 릴라는 알폰소나 마을사람들의 삶에 관여하고 자기의 아들 젠나로를 반듯하게 키우려 교육시키고 레누의 세 딸들도 보살피는 등) 그 노력에 반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정성을 만난다.

또 누군가는 예상치 않은 사랑<결혼한 레누가 니노를 사랑하는 것, 데데가 릴라의 아들 리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하게 되고 누군가는 치열하게 딸, 아내, 엄마의 삶을 영속해야 하며, 누군가는 자기의 안과 밖의 불일치에서 갈등하며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두 여성 주인공들이 이야기하는 인생은 여성의 이야기가 주될 수 밖에 없다. 어린 시절 레누와 릴라는 어떻게 해야 그때의 동네의 어머님들이나 멜리나보다도 더 나은 삶을 살지 고민했다. 그게 공부이고 책이기도 했으며 막강한 힘을 지니는 부이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 그 무언가를 향해 매진하는 삶을 살았어도 허무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여 그럴 수밖에 없는 순간도 있는 것이구나를 나이 들어 깨닫는다. 레누는 자기 어머니를 통해서 릴라는 멜리나를 통해서.

 

아마 그런 삶의 순환적인 구조는 나아진 시대에서도 레누의 딸 데데가 엄마를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보여진다

 

" 엄마랑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엄마가 중용하게 생각하는 것은 엄마 일과 리나이모

뿐이니까요. 무엇이든 결국 그 두가지 일로 귀결되고 말아요." 586쪽  

 

 

4권을 기다린 이유 중 하나는 나쁜 남자 니노에 대한 레누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는데 분명 그 사랑이 영원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랑의 끝이 충격적이었다.

한 평생 짝사랑했던 니노를 가지게 된 레누는 용감했다. 사랑을 하면 눈과 귀가 멀어 그 사랑밖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경험 누구나에게 있지 않을까.

 

그렇게 그 사랑은 해피앤딩이지 못했지만 다르게 레누에게서 희망을 본 것은 레누가 피에트로나 니노에게 당당하게 자기 딸들의 삶도 고려하면서 살아가게끔 책임감을 부여하는 모습에서였다. 이런 것은 21세기 AI시대에도 실현되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도의 책임이 일방적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있다고 다른 사랑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편견(이 책에서 니노는 아무데나 자기의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이고 누구에게 좀 더 책임이 있던지 간에 부모 모두에게 자식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한 예로 보여졌다.

 

 

그렇게 만난 4권은 난해한 숙제였다. 방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나가면서 다시금 1권의 잃어버린 인형 티나와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은 릴라의 분신 같은 딸 티나 이 둘의 관계를 되짚어가는 과정이.

 

그리고 한없이 강한 존재인 릴라가 내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도 욕심도 드러내지 못한 채 주변을 단단히 하고 살았던 그 고단함과 그런 릴라를 구원하고 남았을 티나의 소멸이 가져다 주었을 커다란 절망이 내게도 다가왔다

 

" ~ 글을 쓰려면 삶의 의미가 될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 그런데 나는 살고 싶은 마음도 없어. 나는 한번도 너처럼 강렬하게 살려는 의지를 가졌던 적이 없어. 우리가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 나 자신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해질 것 같아. 그런 내가 글이라니 당치도 않아. -638쪽 "

 

" 릴라에게는 평생 욕망이 없었다.  자기 이름을 연관지을 만한 계획을 세우려면 자기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릴라는 내게 자기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649쪽

 

그래서 자기안의 것을 어릴 때부터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강한 힘을 가진 책으로 남겨지지 못한 그 삶이 한편으로 아쉽고 한편으로 궁금했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인 것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인 레누와 릴라는 잠시잠깐 멀어지기도 하고 한 대상을 다른 시점에서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향해 절대 선을 긋지 않은 채 걱정하고 돌봐주고 도와주려하면서 그들의 사이의 우정을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자한 작가에 대한 예의처럼 많은 것을 내 것으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은 참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역자의 이 작품에 대한 강한 확신을 4권을 덮는 순간 공감했다. 작가 페란테는 레누와 릴라라는 두 상자에다 자신의 삶을 잘 정돈해둔건지도 모르겠다. 레누의 책으로 단단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잃어버린 인형, 티나, 릴라처럼 무형의 형태의 유령의 형태로 유영하기도 하는 것이 그것이 내 이야기라고 그것이 삶이라고.

 

 

 

 

 

 

" 항상 이런 식이었다. 부활이라는 이름의 속임수는 희망의 싹을 틔웠다가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오래된 딱지위에 새로운 딱지가 생겼다." 469쪽

니노와의 사랑으로 충만했던 며칠동안 나는 생전 처음으로 그동안 나를 옭아맨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태생에 대한 속박, 학문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속박, 살아오면서 내가 내린 수많은 선택,그 중에서도 결혼이라는 선택때문에 생긴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20쪽

"그 먼곳에서 바다가 보여봤자 얼마나 보인다고. 푸른색이 조금 보일 정도지. 바다를 보려면 가까이에서 봐야지.그래야 그 바다가 쓰레기투성이에 흙탕물같이 더러운 오염된 오줌 물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책을 읽고 글을 쓰는 너희 같은 식자들은 진실보다 거짓을 더 선호하지."174쪽

지금껏 릴라가 한 모든 노력은 결국 자기 형태를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물과 사람을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조종했는데도 액체가 범람하면 릴라는 스스로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그럴 때면 혼돈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그렇게나 활발하고 용맹한 릴라는 사라지고 겁에 질려 무가 되고 말았다. 244쪽

"유령이 정말 있나요? 리나이모는 유령이 정말 있다고 했어요.하지만 건물이나 거리나 바스토의 오래된 성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귓속에 있대요. 바깔세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때 사람들의 눈속에 있는 거라고 했어요. 입을 여는 순간 새어나오는 목소리와 생각을 할 때 머릿속에 있는 거라고 했어요." 6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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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알라딘 인문학 스터디 로쟈 이현우의 톨스토이 문학 강연회 2강"

1명 , 2강3강 신청합니다. 얼마전에 부활을 읽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선생님의 강의를 찾아보았습니다. 직접 듣고 공부해보고 싶은 생각에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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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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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하루도 나의 가족의 하루도 내 이웃의 하루도, 이 세상살이도 나이를 더해간다. 그 삶의 언저리는 책의 표지처럼 마냥 오묘할 수도 황홀할 수도 애잔할 수 도 있을터이다.

 

마성의 매력을 지닌 남자를 기억한다. 모든 남자들이 사랑하는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을 또 다른 주인공인 릴라의 삶을 180도로 변화하게 한 남자 니노..아직 난 인생에서 니노같은 남자를 만나본적이 없기에 그는 정말 드라마속에 주인공처럼 환상 속에 있다. 그래서 그 니노라는 캐릭터가 희한하기 짝이 없는데 레누는 어김없이 그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빠져든다.  

 

그 니노가 다시금 레누의 삶속에 등장하면서 기다렸던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을 펼쳤다.

가독성이 좋다고  잘 읽혀진다는 600여쪽의 이 책을 며칠 끙끙거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여전히 3권속에서도 릴라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동경하고 그녀가 보여주지 않은 능력을 이상화하고 그녀는 레누랑 다르다고 판단하고 인정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정말 레누의 말처럼 릴라 릴라 듣고 싶지 않은 대상일꺼같다. 나였다면 그런 주변의 인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워서 릴라 안녕하고 다른 세상속으로 도망갔을련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반면 레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책을 써내고 책이 많이 팔려서 작가로써의 인지도도 가지고 좋은 집안의 남자< 젊은 나이의 대학교수라는 자리에 오른 피에트로>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두딸을 낳는다.  하지만 레누는 가족과 남편이라는 테두리안에서 본질적인 자기자신을 완전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360쪽 결혼은 감옥이었다.

 

여기서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리라..지금 현재의 여성들의 삶도 그리 다른게 없으니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현재 남성과 맞먹는 공부를 하고 동등하기도 우월하기도 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결혼의 문제, 출산의 문제, 아이들의 교육의 문제를 여성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여성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가지라고만 한다. 집안일이나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옛날에 우리네 엄마들은 농사지으면서도 아이들 낳아서 도시락 몇개씩 싸서 학교 보내고 공부시켰다고 한다.

 

얼마 전 티비속에서 아이셋을 낳고 젊은 시절 이뻤던 아내가 거대하게 살이 쪄서 자기의 외모 관리도 못하고 자기자신을 놓고 사냐고 비난하는 남편이 떠올랐다. 식탁에 제대로 밥을 차리고 편히 밥한끼도 먹지 못할 만큼 연속되어지는 육아와 집안일을 그들은 완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참 쉬운 말로 집안일 세탁기도 청소기도 있는 지금 2시간이면 끝나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여전히 여성들만이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외치지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의 고통을 똑바로 인지조차도 하지 않는구나 하는 참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렵구나 하는 맘때문에 답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아라는 것이 남편을 돌보는 것이 가정을 건사하는 것이 왜 여성으로써의 존재적 가치가 낮은 노동처럼 인식되는지는 살짝 반문이 들었다.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생산하던 시대가 아닌 지금에 내 아이는 나의 미래의 사회구성원이기에 더 공을 들이고 그들을 키우고 그런 가정을 형성해나가는 것도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라 나는 여기는 축에 속해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첫권부터 쭉 이어져 오는 레누의 태도는 3권에서도 이어진다. 릴라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고 했기에 나는 나자신을 비교라는 잣대가 가지는 비극과 만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살아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레누가 안쓰러웠다.

 

493쪽 아무리 나를 따라하고 내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은 초상화를 그린다 해도 내 망할 자아는 내 것이고 네 망할 자아는 네 것이니 말이야.

 

 

분명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릴라의 삶을 보고 분명 레누는 인식했을터이고 릴라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자기를 거쳐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레누는 생각만 많을 뿐 여전히 자기 중심을 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 것은 나의 편견일까? 아님 나의 고지식함일까?

 

3권 속의 이태리와 나폴리는 급변하는 여러가지 사회 상황을 맞이한다. 릴라가 근무하는 햄공장을 보아도 세상살이 정말 쉬운게 하나 없다. 돈이라는 것을 벌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불평등과 불공정한 관습과 썩어빠진 냄새로 점철된 벗어나기 힘든 실상들 앞에서 숨이 턱 막힐 뿐..어쨌든 수많은 등장 인물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벗어나 바꾸려고 행동한다. 그게 내 가족이기도 내 이웃이기도 한 그런 본연의 삶..그렇기에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고향을 떠난 레누보다 나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파도에 맞서는 릴라가 더 동적인 것은 아닌지. 그러는 속에서 릴라는 경계의 해체를 막연히 두려워만 하지 않고 다소 그 경계의 해체에 대응할 수도 있는 능력이 생긴 듯 하다.

 

22쪽 - 차라리 떠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실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후에갸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172쪽 모든 사물과 사람들과의 거듭되는 충돌에 지칠 대로 지쳐 무너져 내리면서도 도무지 포기할 줄 모르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혼자 감내할 것이다.

 

우리네 삶은 부단히도 노력하고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 매진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도 원하지 않는 변수들이 등장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거 아냐! 하고 꾸짖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 이야기가 허구의 소설임을 자꾸 잊어버리고선 그들의 삶이 나의 영역을 침범할까봐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니노를 비난했다가 레누를 동정했다가 레누의 본능적으로 끌리는 니노에 대한 사랑을 동경하기도 하고 피에트로가 나의 남편이기도 했다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치열하게 사회를 향한 투쟁을 가담하기도 하여 브루노에게 뺨을 한방 날리기도 한다. 참으로 놀라운 힘을 가진 이야기라는 것은 확실하다.

 

책표지 마지막에 쓰여진 작가의 말을 지극히 공감하다가도 작가의 생각이 때론 너무나도 이분법적으로 나눠어져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한없이 흐르고 공간의 변화가 무쌍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들이 삶 속에 너무나도 깊숙히 뿌리박혀 있구나 하는 허무함 마저도 나를 덮치는..

 

 

오롯한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뭐든지 두려워하는 법이 없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릴라에게도 한없이 한겹한겹 배운 자로써의 삶을 다듬어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레누에게도 삶은 알 수 없는 수수께기같은 것이라는..

 

그리고 나를 찾기위해서 결혼도 부정하고 나의 아이들의 안위도 생각치 않고 니노를 따라 자기의 안식처를 벗어나는 레누의 삶이 이제는 행복하게 정착이 될련지 그리고 릴라는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어떤 삶속에서 유영할지 예상되지 않는 결말이 궁금하다.

 

 

자금을 투자한 사람은 머리와 손으로 일하는 사람과 똑같이 무엇이든 만들고 부서뜨릴 수 있는거야. 돈만 있으면 풍경도 바꾸고 특정한 상황도 만들고 사람들의 삶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어.
224쪽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내 출생성분을 바꾸기라도 하려는 건가. 나뿐만아니라 다른 이들의 태생도 바꾸려는 건가. 빈곤과 탐욕 때문에 괴로워해본 적도 없고 원한과 분노를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로 이 황량한 도시를 다시 채우소 싶은건가~내안의 있는 악마를 만족시키고 악마에게 생명을 불어놓음으로써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가. 315쪽

풋풋한 어린 생명체가 나이 든 생명체를 장난삼아 흉내내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모두 똑같이 사랑과 증오와 욕망과 폭력이라는 짐을 지고 무대에 오르는 그림자 인형일 뿐이었다. 411쪽

나는 성숙이란 결국 삶의 굴곡을 호들갑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적인 삶과 이론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변화를 기다리며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06쪽

지금까지 제대로 교육받은 이성을 너무 맹신했나봐. 좋은 책을 읽는 것과 절제된 표현 능력, 정치적 성향을 너무 믿었던 거야. 버림받는다는 사실 앞에 사람은 모두 똑같아지는 것 같아. 5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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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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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의 의문스러운 결말로 2권을 만나게 되었다. 2권은 1권보다도 늘어난 분량으로 레누와 릴라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작가 페란테는 여성작가로서 여성의 삶을 내밀하게 들여다보고 여성이라는 존재의 운명을 잘 표현하고 있다. 레누의 생각처럼 릴라가 결혼을 함으로써 이제 자기와는 단절되고 결혼의 의무로 이동할꺼라는 걱정도 그리고 그 당시의 여성들의 삶의 성장은 구원을 받아야 하고 그 구원의 길에 잘 들어서지 못하면 삶은 구불구불하고 위태로운 롤러코스터를 반복적으로 타게 된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할지도 모르겠다.

 

   21쪽 돈도 남성의 육체도 학업조차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다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차라리 당장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나았다.

 

   그런 것을 알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쉽사리 모조리 파괴해버릴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다.

 

  자기의 삶을 한단계 나아가는 힘을 실어줄 사람으로 선택한 스테파노는 부유했지만 릴라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대상이였다. 

 

   레누에게 전해진 릴라의 노트에서 피어나는 안개같은 과거는 과히 파란만장하다. 레누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부유한 환경은 릴라의 삶의 한부분이 되어 릴라는 그 곳에서 꽃처럼 살 수 없는 존재임은 1권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다. 결혼이라는 굴레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가게일을 하면서 릴라는 살아가려고 하지만 쉬이 되지 않고 그러던 중에 만나게 니노와의 격정적인 사랑도 무한이 이어질꺼라 여겼지만 그 사랑도 23일로 끝이 나고 만다.

 

  니노는 레누가 오랜동안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대상이였으나 레누는 니노에게 자기의 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전개되어지는 삼각관계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더더욱 페란테의 뛰어난 서술, 묘사, 전개의 힘이 느껴졌다. 수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억지로 외우려들지 않아도 그들이 잘 살아나서 입체적으로 움직인다.

 

 경계의 해체를 두려워 하는 릴라에게 결혼 후 바로 다가온 스테파노에 대한 해체는 극단적인 죽음만이 끝을 맺어줄 수 있다 여기지만 그래도 이어가야 하는 삶 자체가 앞으로의 릴라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꺼라는 걸 암시하는 것 같아 책을 읽는 내내 맘이 불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한 공감이 일었다.

 

75쪽 그러나 아내라는 신분 때문에 유리병 안에 갇혀 살고 있었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돛을 넓게 펼치고 항해하는 범선 같았다. 어쩌면 그곳은 애당초 바다가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과도하게 설정 되어진 릴라라는 캐릭터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무언가가 정체되어 그것이 분명 악이라는 것 - 그것은 계속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그 순간 누군가는 그것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강하고 순종하지 않는 인물인 동시에 모든 능력과 사랑은 한몸에 받는 존재로 묘사되어진 것은 아닌지 짐작한다.

 

  그에 비해 공격적이지 않는 레누는 릴라의 그림자에 갇힌 마냥 자신의 삶을 독자적으로 인식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릴라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무한히 노력해야 하는 물밑 백조의 몸부림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릴라의 삶을 바라보면서 비난받거나 잘못된 선택이 가져다 주는 오류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삶의 지도를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내가 계획한대로 되지도 않으며 의도치 않은 일들이 삶 속에서 공포라는 이름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330쪽 나는 항상 대체 왜 이 모양일까, 너무나 간절하게 부와 명예와 칭찬과 성공을 갈망하는 본심이 두려워서 오히려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그 간절함이 마음속에서 폭발하여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일까....

  

  397쪽 나는 타인의 요구에 복종하는 존재였다.  

 

   1권에서 릴라의 멜리나를 향한 시선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멜리나에게는 평생 한번뿐이였을지도 모르는 사랑의 존재 도나토 사라토레 , 그 사랑의 부재로 남은 생을 부유하듯이 살았으며 그런 일련의 행동들은 주위에서 수많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는데 릴라는 유부녀로서 니노<도나토의 아들>을 사랑하면서 주위의 고약한 시선과 눈길을 받게 된다. 그리고 분명 멜리나의 딸<아다>도 엄마의 삶이 크나큰 고통이였을텐데 그것을 그대로 닮은 삶을 선택한다.

다행히 아다가 선택한 유부남은 도나토와 얼마나 다를지 모르지만 참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흔히 이런 대목을 접하게 되면 하는 말..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렇게 어린 시절은 그녀들의 시선은 또래 속에서 머물지만 점차 레누와 릴라는 마을의 어머니들로 시선이 옮겨간다. 그리고 그녀들은 미래의 그녀들이 되지 않으려고 좀 더 주체적인 존재로 자라난다. 릴라의 방식과 레누의 방식이 조금은 다를지라도 그들은 마냥 망설이고 두려워만 하지 않는다. 아마 그렇게 그들은 성장해 나간다.  

 

  636쪽 우리가 얼마나 잘 통하는지 좀 봐. 우리는 두몸을 가진 한 사람이기도 하고 한 몸을 가진 두사람이기도 해.

 

  릴라와 레누를 보면 이들은 늘 가까이에 있지만 서로 그들의 삶에 대해 간섭하거나 조언을 깊이 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관계가 이어지는 힘이였으리라 짐작한다.

 

  복잡하고 자기에게 무한한 열등감을 선사하는 릴라의 존재를 벗어나 대학도 다니고 나름의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책까지 출간하여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서도 릴라가 없는 삶은 무의미보인다는 레누같은 친구..나는 이젠 그런 친구를 만나기엔 늦었지만 이 책을 읽는 그 누군가가 수많은 두려움과 끝을 알 수 없는 선택으로 점철되어지는 삶 속에서 오롯이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 보고 그럴 수도 있어. 너의 삶이 어떠하든지 나는 너의 편이고 내 삶에서 너란 존재는 너무 소중해라고 말해 줄 수 있는 동반자 같은 우정을 구현해 낼 수 있다면..

 

  한없는 세상의 장벽에서 세상의 불합리성을 만나더라도 그 여정은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미한 등불같은 희망으로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600여 쪽을 지나온 여정에 마지막에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 나쁜 남자 니노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으나 그녀들의 삶이 여무는 모습은 너무도 궁금하니 다시 3권을 만날 날을 고대해 본다.

  아마도 2권을 통해 릴라와 레누는 분명 삶의 성공이 오로지 부는 아니란 건 분명히 인지했을 것이고 앞으로 릴라는 아내가 아닌 어머니로써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려나갈지도 무척 궁금하다.  

 

 

 

 

 

 

 

 

그의 눈에 릴라의 아름다움은 추함에 가깝다고 했다. 사내들을 매료시키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릴라는 여러 장에 걸쳐 부활의 의미를 다루었다. 부활이란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이다. 기존의 모든 구속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형용할 수 없이 기쁜 새로운 구속에 얽매이는 것이다.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이자 기존 현실을 뒤집는 봉기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독기를 제거하고 오직 사유와 삶의 즐거움만으로 재구성하게 된것이다.

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삶, 말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삶, 숨기는 것도 없고 어떠한 틀에 제한도 받지 않는 삶은 무형의 삶이야 - 릴라의 말

릴라에게 내게 일어난것과 같은 행운이 따랐다면 릴라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릴라의 삶은 계속해서 내 삶에 투영된다. 내 말에서 릴라가 한 말의 메아리가 느껴지고 내 결연한 행동은 릴라의 행동을 제각색한 것이다. 내 부족함은 릴라의 과함 때문이었고 내 과함은 릴라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다른 사람이 되어 좋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나는 내 모습 그대로 남고 싶었다. 릴라에게 얽매이던 그 시절의 내 모습 그대로. 어린 시절 놀던 뜰과 잃어버린 인형, 돈 아킬레를 비롯한 모든 것을 그대로 간직한 채.그것이야말로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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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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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이 내려앉는 하늘과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두 소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책을 만났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의 많은 인물들의 등장을 파악하느라 바빴고 그리고 갑자기 아들을 두고 자기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사라진 릴라에 대한 레누의 서술을 통해 화자인 레누와 릴라의 우정을 다룬 책이구나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엘레나 페란테 열병을 만들 정도일까 궁금했다.

 

  나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연상이 되었던 릴라..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를 가졌으나 가난 때문에 공부는 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못된 아이<절친인 레누에게 조차도>인데도 많은 주변의 남자들에게는 사랑 받는 아이..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내고 스스로가 자기의 꿈을 개척하고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아이. 아마 그런 친구가 내 곁에 있었다면 질투와 부러움으로 내 맘은 얼마나 한없이 파도쳤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나 늘 릴라 보다 한발 뒤에 서있다고 느끼는 또 다른 주인공이자 이 책의 화자 레누는 릴라와 같은 비범함은 지니진 않았지만 인생이 지나가는 길은 릴라보다도 더 행운아적이고 릴라를 향한 부러움이나 질투 같은 것으로 가슴앓이만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면서 성장한다.

 P183.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고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녀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분명 우리는 혼자만 독주하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대상들은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커다란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평범한 여자들간의 우정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그 속을 면밀히 살펴보면 작가의 이 시리즈의 4번째권이 왜 멘부커상의 최종 후보까지 되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리고 역자와 세계 각지에서의 찬사가 계속되는 이유도 알 듯 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50~60년대의 이탈리아 나폴리의 상황은 녹록하지 못하다. 남의 결혼식에 가려해도 빚을 내서 옷을 해 입고 치장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폭력이라는 것은 힘이 없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약한 여자들에게 만연해 있고 그 폭력성은 비판의 대상도 저항해야 할 대상도 아닌 체 그대로 작동한다. 하나의 예로 동네에 사는 멜리나에 대한 시선이 불편했다. 멜리나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맘이 통했다면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데 시를 쓰는 도나토 사라토레에 대한 비난보다 멜리나를 향한 시선이 더욱 따갑다. 그리고 도나토 사라토레는 거기에 대해 크게 생각치 않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히 릴라와 레누는 공부를 하고 시라는 것을 쓰고 그것이 책이라는 것으로 탄생해야 부자가 된다고 믿지만 가난은 여자에게 공부라는 것을 시킬 이유가 없다는 정당성으로 오인된다.  얼마 전에 읽고 답답한 맘이 들었던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도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자기의 공부는 희생해야 했던 상황과 맞닿는다.

폭력성이라는 것은 소설 속의 그 시대보다는 가학적인 잔인성은 덜해졌는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의 일상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로 당연시되어 존재한다.  릴라가 공부를 포기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폭력성을 만난 레누도 이 폭력의 양면성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그 폭력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읽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으로 인식될 차원의 문제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레누와 릴라는 같이 생활하는 내내 경쟁자로서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지낸다.

p28 확실한 것은 내가 그 곳에 있는 이유는 릴라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뿐이었다.

P65 강렬한 고통을 느꼈지만 릴라와 싸워서 얻게 될 고통은 이보다 더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가지 고통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고통, 즉 인형을 잃어버려서 느끼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고통, 즉 릴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아무리 쫓아가도 늘 한발 짝 앞서기만 하는 릴라를 보면서 레누는 부러워하지만 늘 상실이 더 컸던 릴라는 레누의 서술 뒤에서 혼자 더욱 노력하고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 자기 방어하고 위로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못된 아이라고 묘사되지만 레누를 돕는 데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레누의 행복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스테파노와 결혼을 하면서 금전적인 도움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릴라에게도 레누는 누구보다도 <눈부신 친구>였다.

그들의 초등시절은 현재에 집중한다. 그게 아이들의 섭리라는 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P29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면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의 의미, 엊그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일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들은 각자의 다른 지향점을 향해 나아간다. 릴라가 공부를 지속했으면 더 큰 성과를 내면서 성장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금 꿈꾸게 된 것이 <신발>이라는 대상이라는 것도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 신발이라는 것은 단순히 신는 수단이 아닌 현재의 릴라의 가난을 벗어나게 할 부를 향한 몸짓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꿈을 실현해 줄 상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런 릴라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지 그리고 그런 선택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P150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어.  여기서 변화란 단 한가지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세상의 모든 삶이 초록 불이 커진 시원한 도로를 무한질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에 대한 많은 고민은 릴라의 영원한 단짝인 레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릴라와 같이 공부를 할 때는 많은 것을 나누고 이야기할 대상이 있었지만 그 후론 성장해나가는 자기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할 대상이 나폴리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번 나는 공감했다. 나에게 익숙한 나의 주변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과 거리가 있다 하여 그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찾고 나와 맞는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것에는 크나큰 두려움이 따르고 오롯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실제적으로 릴라가 더욱 진취적인 생각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꺼라 여겨지지만 둘이서 같이 바다를 보러 간 날도 릴라는 그 바다를 향한 것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보금자리도 가까운 곳에 신혼여행도 멀리 가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이 비루한 지금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부단히 또 다른 것을 향해 매진하고 시련이 오면 시련에 부딪혀서 그 자리를 맴돌기도 하는 것이 현실적인 거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 하다. 반면 레누는 바다를 향해 궁금해 하고 혼자서 섬에서 방학을 보내기도 하고 더 넓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히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은 누구나가 읽어도 흥미로운 접점을 만날 기회가 풍부한 책이다. 나의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우정에 대한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고 사회적인 약자로 살았을 여자들의 삶도 엿볼 수도 있다.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만났다면 더욱 행운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이야기만 충분하다면 저자의 등장은 큰 의미 없다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얼마 전 방송에 나왔던 김영하작가도 그런 비슷한 맥락에 이야기를 했었는데 소설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면 이제 그 글은 작가의 글이 아닌 읽는 독자들의 글이 된다는 그 말에 동의하면 페란테가 이 책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그녀는 감탄이 나오는 문체를 그려내는 능력을 지니고 세상을 넓게도 개개인을 세밀하게 바라볼 줄 아는 작가라 여겨진다. 소설을 내지 않는 한길사가 이 책을 선택했다면 믿고 읽는 구석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일지도..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이라는 바다는 수많은 파도를 몰고 다닐 것이고 그 물결에 그 바람에 우리는 한없이 동요하고 덧없는 평온을 꿈꿀지도 모른다.

   선과 악, 사랑과 실연, 성장과 시련, 가난과 부의 너무나도 많은 양면성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레누와 릴라를 분리해 누구 하나의 삶만 따라갈 수 있을까? 이토록 쉽게 책을 펼치고 어렵게 책을 닫는 경험을 가져다 준 <나의 눈부신 친구> 2권을 얼른 만나고 싶다.

 

 

 

p40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났다.

p178 나는 거칠게 변화하는 모든 것에 완전히 노출되겠지만 분명 승리할 터였다. 나는, 나와 릴라는, 오직 함께 있을 때만 발휘할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색채와 소리와 사물과 사람들을 총체적으로 취합해 이야기를 만들고 힘을 부여했을 터였다.

p207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p352 나는 그 어떤 형태의 틀도 릴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지않아 그녀가 모든 것을 또다시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 릴라가 그렇게 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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