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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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렇게 나의 하루도 나의 가족의 하루도 내 이웃의 하루도, 이 세상살이도 나이를 더해간다. 그 삶의 언저리는 책의 표지처럼 마냥 오묘할 수도 황홀할 수도 애잔할 수 도 있을터이다.

 

마성의 매력을 지닌 남자를 기억한다. 모든 남자들이 사랑하는 거부할 수 없는 인력을 또 다른 주인공인 릴라의 삶을 180도로 변화하게 한 남자 니노..아직 난 인생에서 니노같은 남자를 만나본적이 없기에 그는 정말 드라마속에 주인공처럼 환상 속에 있다. 그래서 그 니노라는 캐릭터가 희한하기 짝이 없는데 레누는 어김없이 그에 대한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도 빠져든다.  

 

그 니노가 다시금 레누의 삶속에 등장하면서 기다렸던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을 펼쳤다.

가독성이 좋다고  잘 읽혀진다는 600여쪽의 이 책을 며칠 끙끙거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여전히 3권속에서도 릴라는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동경하고 그녀가 보여주지 않은 능력을 이상화하고 그녀는 레누랑 다르다고 판단하고 인정하는 자들로 가득하다. 정말 레누의 말처럼 릴라 릴라 듣고 싶지 않은 대상일꺼같다. 나였다면 그런 주변의 인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워서 릴라 안녕하고 다른 세상속으로 도망갔을련지도 모르겠다. 

 

그러는 반면 레누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책을 써내고 책이 많이 팔려서 작가로써의 인지도도 가지고 좋은 집안의 남자< 젊은 나이의 대학교수라는 자리에 오른 피에트로> 결혼을 하고 사랑스러운 두딸을 낳는다.  하지만 레누는 가족과 남편이라는 테두리안에서 본질적인 자기자신을 완전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360쪽 결혼은 감옥이었다.

 

여기서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리라..지금 현재의 여성들의 삶도 그리 다른게 없으니 말이다. 많은 여성들이 현재 남성과 맞먹는 공부를 하고 동등하기도 우월하기도 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으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결혼의 문제, 출산의 문제, 아이들의 교육의 문제를 여성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여성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나갈 힘을 가지라고만 한다. 집안일이나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옛날에 우리네 엄마들은 농사지으면서도 아이들 낳아서 도시락 몇개씩 싸서 학교 보내고 공부시켰다고 한다.

 

얼마 전 티비속에서 아이셋을 낳고 젊은 시절 이뻤던 아내가 거대하게 살이 쪄서 자기의 외모 관리도 못하고 자기자신을 놓고 사냐고 비난하는 남편이 떠올랐다. 식탁에 제대로 밥을 차리고 편히 밥한끼도 먹지 못할 만큼 연속되어지는 육아와 집안일을 그들은 완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참 쉬운 말로 집안일 세탁기도 청소기도 있는 지금 2시간이면 끝나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여전히 여성들만이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외치지 남성들은 그런 여성들의 고통을 똑바로 인지조차도 하지 않는구나 하는 참으로 변화하는 것은 어렵구나 하는 맘때문에 답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아라는 것이 남편을 돌보는 것이 가정을 건사하는 것이 왜 여성으로써의 존재적 가치가 낮은 노동처럼 인식되는지는 살짝 반문이 들었다. 무조건적으로 자식을 생산하던 시대가 아닌 지금에 내 아이는 나의 미래의 사회구성원이기에 더 공을 들이고 그들을 키우고 그런 가정을 형성해나가는 것도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라 나는 여기는 축에 속해있기 때문일까?

 

 

그리고 첫권부터 쭉 이어져 오는 레누의 태도는 3권에서도 이어진다. 릴라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

 

모든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고 했기에 나는 나자신을 비교라는 잣대가 가지는 비극과 만나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살아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레누가 안쓰러웠다.

 

493쪽 아무리 나를 따라하고 내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은 초상화를 그린다 해도 내 망할 자아는 내 것이고 네 망할 자아는 네 것이니 말이야.

 

 

분명 극단적으로 변화하는 릴라의 삶을 보고 분명 레누는 인식했을터이고 릴라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공부하고 연구하고 자기를 거쳐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살았음에도 레누는 생각만 많을 뿐 여전히 자기 중심을 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앞선 것은 나의 편견일까? 아님 나의 고지식함일까?

 

3권 속의 이태리와 나폴리는 급변하는 여러가지 사회 상황을 맞이한다. 릴라가 근무하는 햄공장을 보아도 세상살이 정말 쉬운게 하나 없다. 돈이라는 것을 벌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불평등과 불공정한 관습과 썩어빠진 냄새로 점철된 벗어나기 힘든 실상들 앞에서 숨이 턱 막힐 뿐..어쨌든 수많은 등장 인물들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벗어나 바꾸려고 행동한다. 그게 내 가족이기도 내 이웃이기도 한 그런 본연의 삶..그렇기에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고향을 떠난 레누보다 나폴리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파도에 맞서는 릴라가 더 동적인 것은 아닌지. 그러는 속에서 릴라는 경계의 해체를 막연히 두려워만 하지 않고 다소 그 경계의 해체에 대응할 수도 있는 능력이 생긴 듯 하다.

 

22쪽 - 차라리 떠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멀리, 영원히 도망가라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그런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실제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후에갸 비로소 나는 그때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현실은 길이가 길어질수록 고리가 커지는 사슬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동네는 나폴리와, 나폴리는 이탈리아와, 이탈리아는 유럽과, 유럽은 전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172쪽 모든 사물과 사람들과의 거듭되는 충돌에 지칠 대로 지쳐 무너져 내리면서도 도무지 포기할 줄 모르는 교만하기 짝이 없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혼자 감내할 것이다.

 

우리네 삶은 부단히도 노력하고 계획하고 그것을 위해 매진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도 원하지 않는 변수들이 등장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거 아냐! 하고 꾸짖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 이야기가 허구의 소설임을 자꾸 잊어버리고선 그들의 삶이 나의 영역을 침범할까봐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니노를 비난했다가 레누를 동정했다가 레누의 본능적으로 끌리는 니노에 대한 사랑을 동경하기도 하고 피에트로가 나의 남편이기도 했다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고 치열하게 사회를 향한 투쟁을 가담하기도 하여 브루노에게 뺨을 한방 날리기도 한다. 참으로 놀라운 힘을 가진 이야기라는 것은 확실하다.

 

책표지 마지막에 쓰여진 작가의 말을 지극히 공감하다가도 작가의 생각이 때론 너무나도 이분법적으로 나눠어져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한없이 흐르고 공간의 변화가 무쌍해도 변화되지 않는 것들이 삶 속에 너무나도 깊숙히 뿌리박혀 있구나 하는 허무함 마저도 나를 덮치는..

 

 

오롯한 자기 생각이 확고하고 뭐든지 두려워하는 법이 없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릴라에게도 한없이 한겹한겹 배운 자로써의 삶을 다듬어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는 레누에게도 삶은 알 수 없는 수수께기같은 것이라는..

 

그리고 나를 찾기위해서 결혼도 부정하고 나의 아이들의 안위도 생각치 않고 니노를 따라 자기의 안식처를 벗어나는 레누의 삶이 이제는 행복하게 정착이 될련지 그리고 릴라는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어떤 삶속에서 유영할지 예상되지 않는 결말이 궁금하다.

 

 

자금을 투자한 사람은 머리와 손으로 일하는 사람과 똑같이 무엇이든 만들고 부서뜨릴 수 있는거야. 돈만 있으면 풍경도 바꾸고 특정한 상황도 만들고 사람들의 삶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어.
224쪽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내 출생성분을 바꾸기라도 하려는 건가. 나뿐만아니라 다른 이들의 태생도 바꾸려는 건가. 빈곤과 탐욕 때문에 괴로워해본 적도 없고 원한과 분노를 알지도 못하는 시민들로 이 황량한 도시를 다시 채우소 싶은건가~내안의 있는 악마를 만족시키고 악마에게 생명을 불어놓음으로써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건가. 315쪽

풋풋한 어린 생명체가 나이 든 생명체를 장난삼아 흉내내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모두 똑같이 사랑과 증오와 욕망과 폭력이라는 짐을 지고 무대에 오르는 그림자 인형일 뿐이었다. 411쪽

나는 성숙이란 결국 삶의 굴곡을 호들갑 떨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적인 삶과 이론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변화를 기다리며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506쪽

지금까지 제대로 교육받은 이성을 너무 맹신했나봐. 좋은 책을 읽는 것과 절제된 표현 능력, 정치적 성향을 너무 믿었던 거야. 버림받는다는 사실 앞에 사람은 모두 똑같아지는 것 같아. 5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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