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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ㅣ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노을이 내려앉는 하늘과 빛나는 바다를 바라보는 두 소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운 책을
만났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익숙해지지 않는 이름의 많은 인물들의 등장을 파악하느라
바빴고 그리고 갑자기 아들을 두고 자기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사라진 릴라에 대한 레누의 서술을 통해 화자인 레누와 릴라의 우정을 다룬 책이구나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왜 엘레나 페란테 열병을 만들 정도일까 궁금했다.
나에게는 다소 생경하게 연상이 되었던 릴라..똑똑하고
명석한 머리를 가졌으나 가난 때문에 공부는 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못된 아이<절친인 레누에게
조차도>인데도 많은 주변의 남자들에게는 사랑 받는 아이..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해내고 스스로가 자기의 꿈을 개척하고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아이.
아마 그런 친구가 내 곁에 있었다면 질투와 부러움으로 내 맘은 얼마나 한없이 파도쳤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러나 늘 릴라 보다 한발 뒤에 서있다고 느끼는 또 다른 주인공이자 이 책의 화자
레누는 릴라와 같은 비범함은 지니진 않았지만 인생이 지나가는 길은 릴라보다도 더 행운아적이고 릴라를 향한 부러움이나 질투 같은 것으로 가슴앓이만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면서 성장한다.
P183. 평생
그녀를 뒤쫓아 다니거나 반대로 그녀가 나를 뒤쫓아 온다고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어느
경우건 그녀보다 못한 것은 나였다.
분명 우리는 혼자만 독주하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대상들은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것이다. 아마 그래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커다란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 평범한 여자들간의 우정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그
속을 면밀히 살펴보면 작가의 이 시리즈의 4번째권이 왜 멘부커상의 최종 후보까지 되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리고 역자와 세계 각지에서의 찬사가 계속되는 이유도 알 듯 하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50~60년대의
이탈리아 나폴리의 상황은 녹록하지 못하다. 남의 결혼식에 가려해도 빚을 내서 옷을 해 입고 치장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폭력이라는 것은 힘이 없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약한 여자들에게 만연해 있고 그 폭력성은 비판의 대상도 저항해야 할
대상도 아닌 체 그대로 작동한다. 하나의 예로 동네에 사는 멜리나에 대한 시선이 불편했다. 멜리나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맘이 통했다면 서로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데 시를 쓰는 도나토 사라토레에 대한
비난보다 멜리나를 향한 시선이 더욱 따갑다. 그리고 도나토 사라토레는 거기에 대해 크게 생각치 않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히 릴라와 레누는 공부를 하고 시라는 것을 쓰고 그것이 책이라는 것으로 탄생해야
부자가 된다고 믿지만 가난은 여자에게 공부라는 것을 시킬 이유가 없다는 정당성으로 오인된다. 얼마 전에 읽고 답답한 맘이 들었던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도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자기의 공부는 희생해야 했던
상황과 맞닿는다.
폭력성이라는 것은 소설 속의 그 시대보다는 가학적인 잔인성은 덜해졌는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의 우리의 일상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로 당연시되어 존재한다. 릴라가 공부를 포기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폭력성을 만난 레누도 이 폭력의
양면성에 대해 거듭 생각한다. 그 폭력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읽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으로 인식될 차원의
문제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만난 레누와 릴라는 같이 생활하는 내내 경쟁자로서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지낸다.
p28 확실한 것은 내가 그 곳에 있는 이유는 릴라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뿐이었다.
P65 강렬한 고통을 느꼈지만 릴라와 싸워서 얻게 될 고통은 이보다 더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두가지 고통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없었다. 하나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고통, 즉 인형을 잃어버려서 느끼는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고통, 즉 릴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느끼는 고통이었다.
아무리 쫓아가도 늘 한발 짝 앞서기만 하는 릴라를 보면서 레누는 부러워하지만 늘
상실이 더 컸던 릴라는 레누의 서술 뒤에서 혼자 더욱 노력하고 강한 면모를 보이면서 자기 방어하고 위로했을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에게 못된 아이라고 묘사되지만 레누를 돕는 데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레누의 행복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스테파노와 결혼을 하면서 금전적인 도움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릴라에게도 레누는 누구보다도 <눈부신
친구>였다.
그들의 초등시절은 현재에 집중한다. 그게
아이들의 섭리라는 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P29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면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어제의 의미, 엊그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내일의 의미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이고 지금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들은 각자의 다른 지향점을 향해 나아간다. 릴라가 공부를 지속했으면 더 큰 성과를 내면서 성장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뜻대로 되지 않고 다시금
꿈꾸게 된 것이 <신발>이라는 대상이라는 것도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 신발이라는 것은 단순히 신는 수단이 아닌 현재의 릴라의 가난을 벗어나게 할 부를
향한 몸짓이기도 하고 꿈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꿈을 실현해 줄 상대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런 릴라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지 그리고 그런 선택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
P150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어. 여기서 변화란 단 한가지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
세상의 모든 삶이 초록 불이 커진 시원한 도로를 무한질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에 대한 많은 고민은 릴라의 영원한 단짝인 레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릴라와 같이 공부를 할 때는 많은 것을 나누고 이야기할 대상이 있었지만 그 후론 성장해나가는 자기와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할 대상이 나폴리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한번 나는 공감했다. 나에게
익숙한 나의 주변이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과 거리가 있다 하여 그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공간을 찾고 나와 맞는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것에는 크나큰 두려움이 따르고 오롯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실제적으로 릴라가 더욱 진취적인 생각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갈꺼라
여겨지지만 둘이서 같이 바다를 보러 간 날도 릴라는 그 바다를 향한 것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보금자리도
가까운 곳에 신혼여행도 멀리 가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이 비루한
지금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받아들이고 부단히 또 다른 것을 향해 매진하고 시련이 오면 시련에 부딪혀서 그
자리를 맴돌기도 하는 것이 현실적인 거 아니야 하고 말하는 듯 하다. 반면 레누는 바다를 향해 궁금해 하고 혼자서 섬에서 방학을 보내기도 하고 더 넓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히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은 누구나가 읽어도 흥미로운 접점을 만날 기회가 풍부한 책이다. 나의 지난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우정에 대한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에
대한 고민도 할 수 있고 사회적인 약자로 살았을 여자들의 삶도 엿볼 수도 있다.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만났다면 더욱 행운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이야기만 충분하다면 저자의 등장은 큰 의미 없다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얼마
전 방송에 나왔던 김영하작가도 그런 비슷한 맥락에 이야기를 했었는데 소설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내면 이제 그 글은 작가의 글이
아닌 읽는 독자들의 글이 된다는 그 말에 동의하면 페란테가 이 책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그녀는 감탄이 나오는 문체를 그려내는 능력을
지니고 세상을 넓게도 개개인을 세밀하게 바라볼 줄 아는 작가라 여겨진다. 소설을 내지 않는 한길사가
이 책을 선택했다면 믿고 읽는 구석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일지도..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이라는 바다는 수많은 파도를 몰고 다닐 것이고 그 물결에
그 바람에 우리는 한없이 동요하고 덧없는 평온을 꿈꿀지도 모른다.
선과
악, 사랑과 실연, 성장과 시련, 가난과 부의 너무나도 많은 양면성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레누와 릴라를 분리해 누구 하나의 삶만 따라갈 수
있을까? 이토록 쉽게 책을 펼치고 어렵게 책을 닫는 경험을 가져다 준
<나의 눈부신 친구> 2권을 얼른 만나고 싶다.
p40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났다.
p178 나는 거칠게 변화하는 모든 것에 완전히 노출되겠지만 분명 승리할 터였다. 나는, 나와 릴라는, 오직 함께 있을 때만 발휘할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색채와 소리와 사물과 사람들을 총체적으로 취합해 이야기를 만들고 힘을 부여했을 터였다.
p207 "사랑이 없으면 사람들의 인생만 황폐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삶도 황폐해지는 거야."
p352 나는 그 어떤 형태의 틀도 릴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머지않아 그녀가 모든 것을 또다시 파괴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니, 릴라가 그렇게 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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