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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평점 :
황정은 작가의 책을 기다렸다. 언젠가 황작가가 2018년에 새 책이 나올꺼라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리는 책은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사는 수원에 애정하는 시인 박준과 작가 황정은이 찾아왔다. 서울 어디라도 만날수만 있다면 찾아갈텐데 수원에 왔으니 열일제쳐두고 그둘을 만났다. 먼 무대에서 조그맣게 보여지지만 매력적인 황작가의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한다. 책이 언제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왠지 여유있어 보이는 모습에 조만간 책이 나오겠구나 했다. 그러던 어느날 딩동하는 신간알리미 문자가 왔다.
그렇게 소식을 전해 온 디디의 우산 예약판매였다. 혜택은 작가의 친필사인본..역시 얼른 구매하고 책이 올 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띠지를 살핀다. 창비라디오인지 어디서인지 자기 소개를 줄이다 줄이다 이름만 써보겠다던 한자로 이름을 써볼까 하더니 황정은과 黃貞殷 이 쓰여있다. 역시 황정은이다.
이상하게 작가의 소설은 예사롭지 않다. 그의 문장이 그러하다.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건조한데 이상하게도 맘을 후벼파는 애잔이 공존한다.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 수많은 사고와 상념들을 단단하고 건조한 구조속에다 안착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문장을 손보았을까 하는 공이 느껴진다.
디디의 우산과 웃는 남자로부터 d와 dd
엄청난 관심의 작가지만 영화를 볼때처럼 보기전에는 읽기전에는 소설의 주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상한 습관이다. 그래서 읽게 된 연작 중 <d>는 왠지 어디선가 읽어본 거 같다.
세운상가가 나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제서야 이 이야기는 <웃는 남자>였다. 서로의 우산이 되어주었던 d와 dd, 무언가를 많이 가지진 않았어도 둘이였기에 행복했고 사랑했기에 더욱 그랬을 그들에게 dd의 죽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 상실을 겪지 않고선 그걸 백프로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d는 그 상실로 인해 숨어 들고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세운상가에서 여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아마도 하찮은 존재로써 이 하찮은 세상을 통과하면서 살아나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딱 황정은 작가의 이야기인 <d>는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찮은 삶에 어떤 존재로 인해 내삶이 신성해지고 내삶이 빛나고 내삶이 생의 의지로 가득찼다면 그 환희를 잊는 순간에 겪을 좌절은 상상 저 밖에 둘 수 밖에..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나. 144쪽
여소녀가 생각하기로는 세운이라는 이름 그대로, 이곳엔 세계의 기운이 이미 모여 있었다. 미래와 빤하게 연결된 현재, 이상에 이르지 못하는 실재, 비대하고 멋대가리 없는 외형, 시대의 돌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지만 알아서 먹고살며 시대를 이루었고 이제 시대의 꽁무니에 남은 사람들...95쪽
왜 망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다만 적나라 한채 이어질뿐. 134쪽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연작의 두번째 이야기는 이어졌던 작가의 작품과는 다른 결의 글을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읽어나가기가 어려웠다. 소설은 꾸며진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이 이야기에는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허상적이고 너무나 뻔한 사실들이 작가의 글에 같이 공존한다. 그게 더 허구인마냥..
그러나 그것은 지독하게 치열한 현실이고 상식이라는 가면을 쓴 차별이며 혐오이고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하는 그들만의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있다.
연세대 학생운동에서 용산참사, 세월호 그리고 누구도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루어내었다는 촛불혁명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일상에 만연되어있는 이분법적인 사고(남자와 여자, 사랑과 어른의 기준, 정상범위를 규정하는 툴) 라는 틀속에 갇힌 사람들의 행위들이 이 소설속에서 살아서 움직인다.
프레디머큐리의 성정체성 문제를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지인이라면 이 글속에 서수경과 김소영을 이해할 수 없을테고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대한 돈을 들여서 세월호를 인양하여야 하냐고 묻는 조카에겐 광화문의 불 켜진 노란리본은 내미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남의 일일뿐이다.
그럴때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왜 나는 그들에 속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하는거지..버스에서 dd를 잃은 d가 난폭운전을 하는 버스기사에게 예민하게 굴었듯이..언제고 일어날 수 있고 그게 나일수도 나의 사랑하는 사람일수도 있음을 왜 인지하지 않는걸까?
그렇다고 모두들 내가 거기에 속할 걱정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그래서 개인도 없이 모두들 한목소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모두들 돈이 우선이고 개인이 우선인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충돌이나 사건 사고에 대해 누군가는 정확히 책임지고 용서을 구해야 하며 그 당사자들에게 공감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마음 한자락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내 앞마당을 쓸어야 한다는 표현이 와닿은 이유는 나 또한 내 앞마당보다 광장에 더 많은 촉각을 세우고 있어서일까? 생각을 이어보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그 한순간에 벌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분명 그 이면에는 그일이 벌어질 조짐이 생겨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자각하지 않는 그 순간에 그것은 거대해진다.
세월호가 그랬던거 같다. 전쟁을 겪고 재건을 하면서 빠르게 성장해 온 우리가 외면해 왔던 사회적인 맹점들이 형체없이 거대한 무게를 지닌채 그 배에 실려서 누군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라 앉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 배를 제때 구조할 수 없었던 이면의 이야기들은 또 어떠하고 그 이야기에 분노하고 원망하면서도 이게 우리사회에 숨겨져 있던 민낯이구나 하고 허탈했다.
우리에게 새로운 <세월호>라는 단어가 구축되고 정의되지 않는 불합리한 비명이 그곳에 모여들고 또다른 곳에서 새로운 상처들이 파생되어간다.
그런데 다시금 반복해서 읽다보니 작가 또한 자기의 고유의 방식에서 벗어나 만들어낸 이 이야기는 명확했다. 소설의 문장하나하나를 되집어 생각해보지 않아도 명확하게 보여져서 강하게 인식된다. 아마도 작가는 돌려말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일뿐이야! 하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이제는 인지해야 한다고 타이르는듯 하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인상깊었던 대목은 아래와 같았다.
어른.
우린 언제 어른이 되었을까. 228쪽
어른은 부끄러움 뒤에 온다고 김소리는 말했지. 232쪽
요즘 광고에서는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라는 말을 쓰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처음이듯이 우리도 모두 어른이라는 것을 누구에게 배워서 아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함께 왔다.
그리고 어른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어른이 되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우리는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평가한다.
참으로 공감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앞세대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꾸짖고 타이르는 어른들에게 속된 말로 꼰대라는 말로 상징화한다. 그러나 40이 넘게 나이 먹은 나는 어른일까? 어른은 어떤 존재를 어른이라고 명명하는 것일까?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이 존재하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그 책을 읽고서 수많은 질문들이 파생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파생된 질문들이 내가 미래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나의 현재와 나의 과거속에서 그 답을 찾아헤매는 방황을 하게 한다. 그래서 오롯이 한동안은 그 책속에 주인공들과 그 책속의 시공에 배경속에 같이 살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책..그래서 나는 황정은 작가의 소설을 사랑한다.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데 장작 일주일의 시간이 더 걸린거 같다. 그러고도 이 글을 쓰는데 머뭇거리게 되는..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해야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덮는 나에게 이 책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마무리를 짓는다. 수많은 문장들이 인물들이 나를 붙잡지만 이제는 안녕한다. 내 앞마당에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즐거운 방학을 보내야 하므로..
꼭 읽어보라는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울림의 기회가 될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믿는다.
앞으로도 소설쓰는 황정은이 우리에게 선사할 그 보물같은 글들이..하찮은 우리가 계속해나갈
힘으로 환원되어 함께 나아갈 것을..
열세번째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 그것을 완성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정, 그것이 내게 좋은 툴이 될 수 있을까.툴을 쥔 인간은 툴의 방식으로 말하고 생각한다고 내게 말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59쪽
"산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존재했던 문장으로부터 삶의 형태들은 받는 것"<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 민음사 2015> 211쪽
조금씩 독을 삼키듯 상실을 경험한다. 일상에서 내 기도의 내용은 서수경의 귀가이다. 서수경이 매일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저 바깥에서, 매일의 죽음으로 돌아온다. 257쪽
상식적으로에서 상식은 뭘까?그것은 생각일까? 사람들이 자기 상식을 말할 때 많은 경우 그것을 자기 생각이라고 믿으니 그것은 생각일까. 아니야 common sense니까 세계에 대한 감이잖아. 그것이 그러할 것이라는 감感. 265~265쪽
뭐가 무서워.
나는 무서워.
아니 네가 무서운 것이 뭐냐고. 그걸 말하는 동안 네가 두렵고 상처받을 것이 무서워?
그것이 너는 무서워? 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