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포토에세이
화앤담픽쳐스.스토리컬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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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라는 소재가 이런 분위기도 낼 수 있구나 싶어서 좋아했던 드라마. 끝으로 갈 수록 좀 서운하게 진행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도깨비>는 그 서운함을 누를 정도로 흥미로웠던 드라마로 남을 듯하다. 그 여운을 이어가도 싶다면 포토에세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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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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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 않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그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구판 출간 때 읽었더라. 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봤다. 지금 찾아보니 참 오래된 영화던데, 아마, 그때 나는 소설의 흥미를 영화로 이어가려고 봤던 것 같다. 그 작품을 시작으로 한동안 그의 소설을 꾸준히 읽었다.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그나마 역사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던 거다. 요즘에야 그의 작품을 덜 읽기도 하고(그때보다 출간작이 적기도 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들이라 피해가려고도 했지만(사실이 그러하니 고백한다), 이번 신간 『김진명 한국사 X파일』을 읽다 보니 그의 작품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거다.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자료조사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닌데, 그가 여러 곳으로 향한 발걸음은 소설을 위한 자료조사인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그가 찾으려 애썼던 우리 역사의 진실을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소설이 소설로만 보이지 않는다. 추측건대, 그는 독자들에게, 더 넓게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역사를 지키는 이도, 오랫동안 계속된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을 이도 오직 우리뿐이라고 말이다.

 

이 책은 저자의 그런 마음으로 태어난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그가 어떤 간절함으로 취재해왔는지 확인시켜준다. 읽기 쉽게 그림으로 구성되어서 더 빠른 이해를 부른다. 모두 7장으로 구성하여 그가 그동안 의문을 갖고 파헤쳐온 우리 역사의 뿌리를 듣게 한다. 가장 먼저 한국의 한(韓)은 어디서 왔는지 파헤친다. 한 씨의 유래를 찾은 것부터 시작한 게 중국 역사의 한 부분으로만 여겼던 그 이름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발견하게 되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그건 우리가 가진 역사의 기록이 거의 없는 데서 비롯한 일이기도 하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기록이 없었거나 기록이 사라졌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역사의 진실은 기록에서 증명한다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거듭 강조하는 것이리라.

저자가 임나일본부 조작의 역사를 파헤친 소설 『몽유도원』을 취재하면서 밝힌 사실로 일본의 교과서에서 임나일본부설을 빼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사실 이 부분 읽으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다른 근거들을 보면서도) 한 나라의 역사학자들이 분명하게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자기 나라의 위신을 살리는 게 먼저라는 사고를 갖는데 놀랐다. 소설로만 대할 때와는 달랐다. 진실을 알고서도 묻어버리려는 마음은 학자가 지녀야 할 자세를 덮기도 하는구나 싶어서 씁쓸했다. 그렇게 덮여진 진실들은 또 얼마나 될까 싶어서 의심이 자꾸 쌓이기도 하고...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으면서도 많이 흥분했었는데, 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자료를 찾아다니던 작가의 노고를 이 책으로 듣고 보니 더 아팠다. 명성황후 최후의 순간을 그리는 일은 소설로만 머물기를 바라지 않게 된다. 그가 그 순간을 찾으러 다니면서 발견한 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한 나라의 왕비가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는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학자조차도 차마 있는 그대로 서술할 수 없었음을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간'이나 '사후능욕'이 아니라, 에조보고서에 기록된 그대로 '칼로 몇 군데 상처를 내고 발가벗긴 후 국부검사를 했다'는 만행을 확인하게 된 거다. 이 소설의 일본 출간이 무산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작가는 무엇보다 일본인에게 읽혔으면 하고 바랐겠지만, 역사의 기록조차도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드러내놓은 정도라면 이 소설이 불러올 파장을 알기 때문이겠지.

박정희의 죽음을 김재규의 반란 정도로만 여겼는데, 그가 찾은 박정희 죽음의 진실은 뜻밖이었다. 이미 소설로 읽을 당시에도 놀라웠는데, 그의 진실 추적 과정을 듣고 보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으스스했다. (이 부분은 그의 소설 『1026』에서도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박정희 죽음에 가려진 배후와 진실을 듣고 보면, 수많은 '만약'을 떠올리게 된다. 만약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떠했을까, 만약 박정희가 핵 개발을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북한과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등등.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지만, 여전히 그의 흔적이 남은 채로 진행되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떠올려본다.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떠들썩한 요즘이다. 그만큼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관심도 높다. 또 누가 죽어 나갈까, 북한의 정권은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말하는 북한 정권의 내막을 듣고 보니 더 궁금해지더라. 정말 김정은이 실세일까? 김정은은 그가 마음먹은 대로 정권을 휘두르고 있는 게 맞나? 뉴스로 접하는 소식이 전부였던 나에게 저자의 설명은 북한 내부 구조와 그 안에서 힘을 발휘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여전히 다 알 수 없는 곳이 북한이지만, 폐쇄된 그곳의 흐름을 이렇게나마 접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함흥차사를 오래된 속담 정도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저자가 전하는 진실은 놀랍기도 했고 권력 앞에서는 부모·자식도 없다는 씁쓸함을 안겼다. 『하늘이여 땅이여』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태종(이방원)이 아버지 태조 이성계를 유폐시키면서 들을 욕을 차단하고자 만든 유언비어였다니... 역사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이상할 것도 아니겠지만, 그 내막을 알고 다시 보는 역사는 우울하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 싶을 정도로, 권력을 위해서는 역사 왜곡도 아무렇지도 않구나.

 

 

 

한자의 주인을 찾는 문자의 기원을 둘러싼 역사 전쟁도 흥미롭다. 마지막 장인 이 내용은 『글자전쟁』에서 확인한 바 있다. 이 내용 역시 그 뿌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찾아낸다. 그래서일까. 한 번씩 이런 내용을 확인할 때마다 궁금해진다. 도대체 우리가 모르는 우리 역사, 왜곡되어 관심조차 없는 역사가 얼마나 많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 궁금증에 이어, 그렇게 감춰진 우리 역사를 찾는 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어야 한다는 과제를 떠올려본다. 저자가 하는 말, 저자가 발 벗고 나선 행동 역시 그 과제를 수행 중인 거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저자가 하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우리가 길든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자각과 이성의 눈으로 역사를 보고 현실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관심 두고 끈질기게 취재한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유도 똑같다.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25년 동안 뛰어다닌 그가 소설이란 기록으로 들려주려는 흔적을 이렇게 확인하고 보니, 그의 소설이 태어나기 위해 참 많이도 애썼구나 싶다. 게다가 하나의 이야기로만 남는 게 아니라, 역사까지 관심 두게 하니 소설 그 이상의 역할을 해왔던 것 아니겠나.

 

혼란스러운 정국에 한국사 열풍이 이는 건 낯설지 않다. 그건 아마도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게 아닐까. 현재의 오류를 바로잡고 제대로 된 나라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고 싶은 바람이 담긴 듯하다. 넉 달이 넘게 계속되는 혼란스러운 현실에 지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역사에서 보고 싶은 거다. 역사 속 우리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듣고 싶기도 할 테고, 수많은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이뤄내어 오늘의 대한민국까지 이어져 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그 안에는 왜곡된 역사도 포함된다. 저자가 취재로 밝혀온 역사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오해와 오류를 바로잡은 일들을 이렇게 증명하는 게 힘이 된다. 오늘의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 힘, 의지가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게 저자의 진심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쉽고 편하게 읽게 만들어진 이 책이 마냥 쉽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마음이 무겁다. 그의 노고를 확인하게 되어 미안하면서도, 내가 사는 이 시간이 어디서 비롯되어있는지 깊게 생각해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성과 기회의 시간을 동시에 만드는 책이다.

 

기존 출간된 그의 소설과 함께 읽으면 더 많은 이해와 공감을 불러올 것이니, 기회가 된다면 그의 소설과 함께 차근차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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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박정아 지음 / 청어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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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이상하게도, 금기에 끌리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싶다. 그 본성의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그 금기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적이 드물다. 굳이 금서라고 하니 더 찾아보고 싶고, 절판이라고 하니 더 궁금해지는 마음에 보태어, 금지된 사랑이라고 하니 더 확인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형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남자와 어쩌면 처제가 되었을지도 모를 여자의 만남이라는 설정이 더 듣고 싶은 건 그래서인지도...

 

내가 만나던 남자가 며칠 후에 약혼한단다. 나와 만났던 반년의 시간은 뭐란 말이지? 그의 약혼녀가 찾아와 서윤의 마음을 흔든다. 아니, 처음부터 서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약혼녀를 두고 자기를 만났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음을 더 단단히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사랑했던 시간과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녀의 결정이 옳다고 믿어야 했다. 더는 그를 마주할 생각이 없으니까. 마지막 기회조차 그는 거짓말로 서윤을 실망하게 했으니까.

 

그런 서윤에게 지금과는 다른 시간,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떠난 여행, 그렇게 자리 잡은 청주. 새로운 직장을 구했고, 작은 집도 얻었다. 거기에서 인연이 시작될 줄 누가 알았을까. 바로 옆집에 사는 남자가, 한때 형부가 되었을지도 모를 기주였다니. 서윤이 미안한 마음을 사람이기도 하다. 언니의 선택에 조언했다는 이유로... 그런 남자와 이웃사촌으로 마주하면서, 오가며 마주할 일이 생기고, 그런 시간이 쌓여가는 그때.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마음은 서로에게 건너가 버렸다. 그렇게 움직이는 마음이 단속한다고 멈추거나 머뭇거리지는 않는 거겠지. 안다.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이임을. 하지만 남들이 흔히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어긋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서윤은 온 힘을 다해 고백하고 기주를 붙잡으려 하지만, 기주는 그의 마음을 꼭꼭 숨기고 서윤에게 거짓으로 행동한다. 너를 마음에 두지 않는다, 마음에 두어서도 안 되는 존재다, 이대로 서로에게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리자. 웃기게도 진심이란 건,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라는 거.

 

설정 자체가 독자의 호기심을 끌 만하다. 드라마 <눈사람>과는 다른 시작이고 다른 내용이니 혹시나 그런 분위기를 예상한 독자가 있다면 접어두시길. 그저, 형부와 처제로 엮일 수도 있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니 시작도 진행도 마침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지만, 어디까지나 주변의 많은 사람이 던지는 시선이 관계를 흔든다. 시작도 하기 전에. 하긴, 말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이이기는 하다. 기주의 부모에게도, 서윤의 부모에게도 핵폭탄이 투하된 것 같을 거니까. 서윤과 기주 사이에 일어날 문제는 이게 전부다. 오직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 미안한 대상에게 또 한 번 미안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

 

읽기 전에는 막장이라고 부를 이야기가 아닐까 염려되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읽는 동안 계속 마음이 술렁였다. 과거의 인연이었지만 이웃사촌으로 그저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한 부분에 자리할 줄 알았는데, 점점 마음이 가는 걸 붙잡지 못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누굴 좋아한다는 건 계획적으로, 작정하고 이뤄지는 일이 아니므로. 그래서 더 괴로웠겠지. 전혀 그럴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흘러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겠지. 이제 어쩌겠어. 쏟아낼 수밖에. 그런 면에서 보면, 서윤의 용기가 이 사랑을 성공시키는 힘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안 된다며 물러서고, 급기야 도망가고 말았던 기주에게 항복의 선언을 끌어냈으니 말이다. ^^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주의 말처럼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더 눈여겨보고 싶은 건, 허락된 사랑을 얻기 위한 그들의 간절한 기다림이었다. 이들의 힘든 사랑의 결실이 더 예뻐 보이는 건,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랑으로 풀어갈 줄 알았더니만 감정이 바탕이 된 이들의 이야기에 이성적 판단과 이해를 보태어 잘 그려진 그림으로 완성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사랑 때문에 힘들고 아플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놓치지 않더라. 작가의 전작 한 편을 읽었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게 이뤄가는 사랑이 담백하면서 공감하게 하더라. 그 이유로 이 작품 궁금했는데, 비슷한 분위기이면서도 그들의 로맨스에 더 설레게 한다. 외면한다고 사라질 마음이 아니라는 걸 거듭 확인하게 된다. 가독성도 좋고, 가슴이 콩닥거리기에 충분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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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떤 남자를 따라갔다. 그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곳이라며 누군가를 이끌고 우세모노 여관을 향한다. 하지만 정작 우세모노 여관으로 사람들을 인도한 그는 여관의 문을 넘지 않는다. 여관 문 앞에서 그를 따라온 이를 여관의 지배인에게 인도할 뿐이다. 어쨌든. 여관을 찾은 사람들은 간절했던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무언가를 찾아야만 했으니까. 잃어버린 무엇 혹은 잃어버린 사람을... 그래야 이 방황을 끝내고 다시 발걸음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말부터 하긴 좀 민망하지만, 나는 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이 책을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던 게 아닐까 싶다. 펼치자마자 그냥, 좋아해 버렸으니... 별거 없었다. 잘생긴 그 남자 마츠우라가 사람을 한 명씩 데리고 우세모노 여관으로 온다. 마츠우라를 따라 여관에 들어선 사람은 여관에 머물면서 그들이 찾는 것을 떠올린다. 무엇을 찾으러 왔을까? 찾고 싶은 게 있긴 한가? 아니, 그들이 찾는 것과 이 여관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어떻게 알고 여길 찾아온 거지? 여관의 사장은 어린 소녀다. 그래서 더 의아하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사장이라면 연륜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 같은 거라도 기대하겠는데, 이 어린 소녀에게서는 무엇을 기대하란 말인지... 그런데 여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손님이 무슨 질문을 하면 사장에게 물어보란다. 저렇게 어린 소녀가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다고 자꾸 사장에게 물어보래? 여관의 손님은 그런 사장에게 관심 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찾으러 온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나는 무엇을 찾으러 여기에 온 것일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가득 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러니 궁금증이 늘어날 수밖에. 궁금증이 늘면서 여관에 온 그들의 사연에 귀가 열린다. 그렇게 하나씩 펼쳐지는 이야기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그러니까 이 부분, 여관의 손님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고 인생을 되짚어보는 장면이 시작될 때마다 가슴이 뛰곤 했던 거다.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예상되는 것 같아서 긴장했다. 예상되면 되는 거지 무슨 긴장이냐고 묻고 싶겠지만, 뭐라고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그냥, 막, 무슨 폭풍이 불어오기 직전의 고요함 같은 거? 그러다가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낼 때마다 눈물이 고였다. 기억을 더듬고 아쉬운 것들을 찾아내어, 후회를 후회가 아닌 것으로 만든 다음에 떠나는 사람들. 여기서 드라마 <도깨비>의 저승사자의 임무가 겹쳐 보이면서, 누군가의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차 한 잔이 그려졌다. 저승사자는 자기를 찾아오는 망자들에게 차를 대접한다. 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이쪽에서의 기억은 다 지우고 편한 마음으로 저쪽 세계로 가라고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망자들은 이곳, 그들이 살면서 겪었던 슬프고 기뻤던 모든 기억을 지우고 홀가분하게 저쪽 세상을 문을 열고 걸어간다. 아마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전생의 기억을 못 하는 건 저승사자가 내어준 차 한 잔 때문이겠지. 이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종종 등장했는데, 그때마다 생각했다. 전생의 기억이 있는 게 좋을까, 없는 게 좋을까. (이건 우세모노 여관 3권에서 등장하는, 여관 사장 사키의 이야기 때문에라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고민이다) 저승사자는 자기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전생에 큰 죄를 지어서 저승사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자기가 전생에 지은 죄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지워진 전생을 생각하려 애쓰기 보다는,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구백 년 넘게 살아온 도깨비를 제외하곤, 아무도 자기 전생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혼란의 시간이 온다. 주인공들은 어쩌다 보니 자기의 전생을 알게 된다. 그 이후로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슬프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전생의 기억 따위 모르고 사는 게 행복하겠다. 가끔 술자리의 안줏거리로 전생의 우리 모습에 대해 상상하기도 하지만, 불행하고 슬픈 기억을 더듬어야 한다면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거라고... 그러지 않을까?

 

 

 

 

 

 

 

 

 

 

 

 

 

 

예상한 사람도 있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에 오는 이들은 망자다. 죽은 사람이 산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세모노 여관으로, 수상한 그 남자 마츠우라의 손에 이끌려 찾아왔던 거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오는 곳.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는데, 찾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여관의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찾아오는 손님은 미련을 남기고 죽은 자들이고,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자들은 여관에 남아 종업원이 되어 계속 찾아다닌다. 그렇게 여관에 찾아온 사람들은,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으면 떠난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남아서 여관의 일을 계속 하는 거고. 여관에 찾아드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다 이렇게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죽은 다음 후회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대개 그렇잖아. 죽음에 다다르면 후회스러운 것들이 눈앞에 쫙 펼쳐진다는데, 죽고 나서도 그 후회들이 계속 생각날 것 같은데... 후회하지 않는다던 그들은 어떤 인생이란 말이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없는 삶이라고 큰 소리로 말하며 이승을 떠난 슬픔을 덮을 수 있는 걸까.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에는 그 후회를 지우는 것까지 포함하는 거로 생각해서 참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우세모노 여관>의 사람들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는, 그게 부러워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슬픈 거다. 왜 있잖아, 그런 거... 분명 후회하는데, 후회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로 말하면 후회 없는 삶이 되는 기적이라도 이루어질 것만 같은 간절함. 잃어버린 것 따위 없다고, 그러니 찾아야 할 것도 없어서 이 여관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마음이 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나는 아직 죽어보지 않았는데, 막상 내가 <도깨비>의 저승사자 앞에 도착했을 때나 <우세모노 여관>에 찾아갔을 때, 무엇을 후회하게 될지 모르는 지금 마음 상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죽었다는 상상, 죽은 후에 마츠우라를 따라간 우세모노 여관, 여관에 들어서며 마주한 어린 소녀 사장의 눈빛 찌르기 같은 직설을 견디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여관을 떠나는 순간까지. 죽었다는 상상부터 쉽지 않았고, 잃어버린 게 한 개뿐일까 싶어 가늠할 수 없더라.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후회하고) 살아왔을지 계산을 할 수가 없어서다. 지금도 후회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죽은 다음에 찾아간 우세모노 여관에서, 나는 찾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당당함을 가질 수 있을까? 아마도, 아마도 아닐 것 같다. 후회하고, 찾아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여관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글쎄. 뭘, 얼마나 후회하고 잃어버린 상태일까. 얼마나 많이 찾아야 그곳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울었다. 자기가 찾아야 할 것을 떠올리기 위해 기억을 더듬으면서 계속 울었다. 후회하는 순간을 찾을 때마다 울었고, 누군가에게 미안하고 슬픈 마음에 또 울었다. 작정하고 그런 게 아니었기에, 무언가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던 마음이었지만, 후회하는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때는 그 선택이 전부였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지만... 한 번 지나간 그 순간을 불러내고 지켜보면서, 후회든 기쁨이든 확인하면서, 이제 더는 그때 그 순간에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복기한다. 개운하게 눈물도 쏟아내고, 웃음도 찾아내면서,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은 그 끝에서 반드시 자기가 찾아야 할 것들을 찾아서 떠나곤 했다.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든 각인되었든, 시간이 오래 걸리든 짧게 걸리든, 결국에는 찾았다. 그게 우세모노 여관의 마법이다. 여관의 마법이 통할 때마다, 읽는 이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울컥하고 치미는 감정에 눈물이 고이는 건 자동이다.

 

'우세모노(うせもの)'는 '잃어버린 물건', '유실물'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관의 이름에 너무 잘 어울리고, 여관에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에 잘 맞는 의미인 것 같다. 여관에 찾아오는 손님의 사연에 따라 바뀌는 계절도 신비하다. 찾아오는 손님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곳이라니. 겨울이었다가 겨울일 수도 있고, 가을이었다가 여름일 수도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찾게 되는 것은 마음에 얼마나 더 깊게 다가올까. 여관의 손님들이 자기의 유실물을 찾을 때마다 잃어버린 진심을 마주한다. 아니라고 거부했던 것들, 아니라고 말해야만 했던 진심을 마주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도깨비>의 저승사자가 내미는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있는 장면과 닮았다. <우세모노 여관>에서 여관이나 여관 사장이 찾아준 유실물을 앞에 둔 모습과 같은 느낌이다. 이걸 마셔야겠지, 그래, 이걸 찾았던 거지. 이제 됐다. 홀가분하게 저 문을 열고 나갈 수 있겠구나...

 

이제 궁금한 거 한 가지 더 남았을 거다. 여관의 사장 사키는 누구인가, 여관에 손님을 데리고 오는 마츠우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만화의 하이라이트는 3권이다. 여관의 손님들과 여관 종업원들의 사연까지 다 지나가고 나니, 정작 남은 이들은 여관 주인과 마츠우라다. 그들의 사연이 없을 수가 없지. 과한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는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기억을 잃은 사키가 등장한다. 이 부분 때문에 기억의 여부를 두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기억하고 싶지만 불가능한 상태인 아무 기억도 없는 이와 잊은듯했지만 결국엔 다 기억나버려 잊을 수 없는 이, 둘 중 누가 더 아플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계속되는 거다. 영원히 분명한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언제나 그 순간에 최선이라 여기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때마다 후회가 찾아오겠지만, 우세모노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찾으면 되겠지.

 

만화를 잘 모른다. 그래서 더 관심이 없는 장르다. 어렸을 적에 보던 순정만화 몇 편이 전부였는데, 몇 년 전에 우연히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호즈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두었다. 매력적인 만화 단편집이었다. 그림도 예뻤고 스토리가 소설을 읽는 느낌 그대로였다. 몇 컷의 그림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푹 빠져 읽었다. 그러다가 다음 작품 『안녕, 소르시에』까지 샀고, 이번 작품 『우세모노 여관』은 완결판이 나오기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구매했다. 망자들의 후회를 덜어주고 편한 걸음 만들어주는 여관이라는 설정은 판타지였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되는 현실이었다. 읽는 이들과 마음이 닮은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호즈미의 다음 작품을 고민 없이 구매하게 만드는 매력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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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2-14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즈미님의 만화 저도 ‘결혼식 전날‘을 접하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다가 ‘안녕 소르시에‘도 읽었는데, 저도 구단님 따라 이제 우세모노 여관을 읽어야할 차례인가봅니다.^^

구단씨 2017-02-15 10:34   좋아요 0 | URL
만화를 잘 모르는데, 호즈미의 만화는 기다려집니다. ^^
이야기가 참 예뻐요.
 
세계문학 브런치 - 원전을 곁들인 맛있는 인문학 브런치 시리즈 3
정시몬 지음 / 부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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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정의로 문을 여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보인다. 저절로 공감을 부른다. 고전은 '나이를 2천 살 정도 먹어야' 나, 좀, 고전이네~ 하고 이름을 올릴 수 있다거나, '지속적인 탁월함'을 가진 작품이라고 인용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공감했던 고전의 정의는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고전. 사람들이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 이보다 더 매력적인 고전의 정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고전을 구매했는데도 읽지 않았거나, 혹은 도서관에서 대출해왔어도 읽지 못하고 반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나는 마크 트웨인의 고전에 대한 정의를 첫 번째로 뽑고 싶다. 실제, 『세계문학 브런치』를 읽다 보니, 고전의 맛보기나 재미있게 읽을 요소를 끄집어내서 밥상을 차려놓은 저자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고전 속 메시지들을 찾아 이야기를 끌어내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원전으로 토핑까지 얹어놓으니 저절로 빠져든다. 그 결과로 칭찬은 하면서도 읽지 않는 책을, 읽고 나서 칭찬까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겁겠냔 말이다.

 

모두 7개의 챕터로 나누어 그 흐름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로 그 포문을 열고, 단테와 괴테의 삶을 비교하면서 선과 악, 지옥과 악마를 말한다. 장르 문학에서 인간의 내면을 보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소개한다. 근대 소설의 거장들을 불러오고, 세계문학의 악동들이라 부르는 작가의 생애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시를 읊으며 그들의 문장에서 감정을 읽는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 유명한 제목에 여러 번 읽어보자 마음먹으면서도 방대한 분량에 감히 첫 페이지를 열지도 못한 작품이다. 영화로 만나면서 흥미를 시도할 수는 있으나, 저자의 말에 멈칫거리게 된다. 실제 우리가 알고 들어왔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는 왜곡되었건, 빠져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원전을 읽어야만 제대로 그 작품을 판단할 수 있다는 건 여기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게다가 이 작품들을 검열해야 한다던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놀라웠다. 예나 지금이나 웃기지도 않은 이유로 억압하려 했던 건 변함이 없구나. 그래서 고전이라는 말이구나 싶기도 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후대의 작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온갖 장르에서 재해석과 재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깊이와 작품성이야말로 고전의 힘이다. 독자 여러분이 오디세우스가 구혼자들을 향해 당긴 분노의 활시위처럼 힘차게 울리는 이 고전의 내공을 이번 챕터에서 조금이나마 느껴 봤기를 바란다. (76페이지)

 

메피스토펠레스를 데리고 와 우리 마음에 사이다 한 잔 뿌리기도 한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에게 던진 유혹에 메피스토펠레스를 악으로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얇고 두꺼운 가면 하나를 쓰고 사는 우리 모습을 대변하는 게 메피스토펠레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체면이나 분위기상, 해서는 안 될 일이나 말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 잘 안다. 그렇게 쌓이다가 뱃속에 엄청난 양의 고구마가 축적된 것처럼 만성 변비에 이르면 결국 성능 좋은 변비약 몇 알, 혹은 대장 청소를 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상태에 닿지 않게 살려면, 어쩌면 메피스토펠레스의 거칠 것 없는 입담이나 느물거리는 만사 오케이 태도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서 지금 우리 삶의 위치를 다시 보게 되는 일을 불러오는 것. 고전의 힘은 여기서 발휘되는 게 아닐까.

 

문학에서 찾는 어떤 메시지나 가르침이 아니라, 그 맛을 즐기면서 접근하는 게 우선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시작하는 걸 보면서 왜 이렇게 무겁게 다가오나 싶었는데, 그 분위기는 언급된 작품의 제목과는 사뭇 달랐다. 고전이라고 해서, 첫 부분에 언급한 것처럼 2천 살 이상 잡순 작품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들까지 끌어들인다. 흔히 장르문학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차려놓고 왜 그 작품들이 꾸준히 인기를 먹고 살아오는지 찾게 한다. 애드거 앨런 포, 애거서 크리스티를 비롯한 추리 소설의 대표 주자들이 말하는 냉혹한 현실을 상기하게 하면서도, 셜록 홈스 시리즈의 작품을 분석한다. (여기서 '분석'이라고 하는 건 깊은 연구라기보다는 맛보기 정도다)

 

『보물섬』을 쓴 스티븐슨과 『솔로몬 왕의 보물』을 지은 해거드가 활동하던 당시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해가 지지 않는 제국(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이라 불리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탐험가, 모험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이야기 속에 반영되어 있었음은 물론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학 평론가 루카치(György Lukács)는 소설을 '부르주아 계급의 서사시(bourgeois epic)'라고 불렀는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모험 소설은 말하자면 '제국주의자들(imperialists)의 서사시'이기도 했다. (172페이지)

 

네 번째 챕터에서 다룬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더 흥미롭다. 유명한 저자의 이름과 작품들에서, 마치 그 작품들을 읽은 것처럼 착각이 들게 하는 게 나에게 각인된 셰익스피어였다. 실제로 그의 작품을 읽은 게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한두 편이 전부다. 그런데도 마치 '내가 혹시 그의 작품을 읽진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자주 갖게 한다. 너무 유명해서, 너무 많이 각색되어 대중에게 알려졌기에 내용을 다 알아서가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또 오해가 생기기 쉽다. 그 작품의 일부분이거나, 내용을 변형했기에 원전과 다르게 알게 되고 또 그게 사실이라고 굳어지는 내용.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그 상인'이라고 생각했던 적 없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나이를 보면서 '에구구, 어린 것들이 공부나 할 것이지~'하면서 읽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의 절대적인 사랑 앞에서 한 번쯤은 나에게도 그런 사랑 찾아오기를 바란 적 없었나? 살벌한 요즘을 살아가기에 너무 철없는 생각인가? ㅎㅎ 이번에 앤 타일러의 『식초 아가씨』를 읽으려고 하다가 원전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먼저 제대로 읽고 나서 읽으려고 아직 펼치지 못했다. 희곡 버전과 소설 버전의 비교도 재밌을 것 같다.

 

특히 다섯 번째 챕터인 근대 소설의 거인들에서 소개한 작품의 목록이 토마스 C. 포스터의 『미국을 만든 책 25』에 언급된 목록과 겹치는 작품들이 몇 권 있었다. 그걸 보면서, 근대 소설에서 미국이 빠질 수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문학의 역사적 흐름이나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고전들을 읽은 게 거의 없어서, 근대 소설과 미국 관계에 대해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겹치는 목록만 봐도 그 연관성에 관심 두고 싶어졌다. 문학과 역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또 한 번 이렇게 배운다. 『주홍 글씨』를 통해서 본 불륜의 공동 책임,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다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 여자의 인생과 사랑이 궁금하게 하는 『보바리 부인』과 『안나 까레니나』, 원전을 읽어야 그 인물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다짐하게 하는 『레 미제라블』,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했다는 『율리시스』 등 읽고 싶은 목록이 더 늘었다. 2천 살까지는 아닌 이 작품들과는 나이 차가 그래도 덜 할 터이니 부담이 적지 않을까? ^^

 

『율리시스』는 이렇게 작품을 둘러싼 주변의 엄청난 찬사와 담론에 휩쓸려 오히려 독자를 많이 놓친, 전형적인 저주받은 고전의 하나다. 독자 입장에서는 일단 기죽지 말고 책을 집어 들어-이렇게 말하기에는 책이 좀 두껍기는 하다. 보통 8백 페이지, 거기다 후대 평론가나 편집자의 상세한 주석이 달린 경우에는 1천 페이지를 훌쩍 넘어가기도 하니까-시작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297페이지)

 

나에게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했던 여섯 번째 챕터. 오랜만에 다시 만난 도리언 그레이도 반가웠고,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 때는 첫 페이지에서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이 시작되더라도 어려워하거나 고민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드라큘라』를 화면이 아닌 활자로 만나면 더 섬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동시에 그 섬뜩함 뒤의 마음은 혹시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들더라. 냉소와 독설의 대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 더 궁금해진 건 물론이고, 아이들 책이라 여겼던 『걸리버 여행기』를 완독하고 싶어졌다(우리가 영화나 만화로 접한 걸리버 여행기는 원전 일부라고 한다). 『모비 딕』에 등장하는 캐릭터 스타벅이 스타벅스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도 이제 알았네. 무엇보다 나에게 이 챕터의 압권은 『돈 키호테』이다. 열린책들 판본으로 이 책을 구입했으나, 두 번 말하면 입 아플 정도인 그 말. 아직 읽지 않았다. 그냥 기사의 모험 정도로만 생각했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으면, 얼마나 주인공이 멋졌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회자하면서 다른 판본이 거듭 나올 정도가 되느냔 말인가, 라는 궁금증과 기대가 있던 작품이다. 그런데 이번에 알았다. 모험을 떠난 돈 키호테, 그는 젊고 멋지고 잘생긴 청년이 아니라 노인이었다는 걸. ㅠㅠ 뭐, 노인은 기사도 하지 말고 모험도 떠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오랜 시간 나에게 '돈 키호테'는 세상 모험을 즐기는 멋지구리구리한 배낭 여행자쯤으로 각인되었단 말이다. 정말 충격이야.

 

에이해브와 그 똘마니들의 으쌰으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스타벅. 하지만 비록 동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는지 몰라도 그의 이름은 『모비 딕』에 등장하는 어떤 캐릭터보다도 더 현대인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라고 할 스타벅스(Starbucks)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회사 창립자들 중 한 명이 『모비 딕』의 광팬이라는 인연 덕분이었다. (352페이지)

 

세르반테스는 그가 활동하던 16세기 무렵까지도 스페인 사회 곳곳에 남아 있던 중세의 잔재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를 풍자하기 위해 『돈 키호테』를 썼다. 분명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풍차를 공격하는, 즉 이상주의에 도취되어 무모한 짓을 일삼는 일종의 '또라이'이자 반영웅(anti-hero)이다. 이 책이 동시대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향을 끌어낸 것도 예리한 풍자의 힘 덕분이었다. (390페이지)

 

마지막은 시로 그 브런치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들을 소개한다. 여전히 시를 읽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이 지워지지는 않지만, 그 배경과 시인의 삶을 듣고 읽으니, 그들이 하는 말을 조금 더 들어보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편하지는 않지만 계속 접근하고 싶은 장르다.

 

바이런의 시편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일반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는 작품은 연애시들이다. 이들 시에는 여성 편력이 복잡했던 그의 실제 인생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초상화를 보면 바이런은 상당한 미남이었던 것 같고, 거기다 귀족 출신이라는 배경에 아름다운 시를 쓰는 재능까지 갖추어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절름발이였지만 오히려 그의 불구는 여성들의 모성 본능을 자극해서 돌봐 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468페이지)

 

엘리엇이 뮤지컬 <캐츠Cats>의 원작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캐츠>는 고양이들의 습성과 생태를 묘사한 시를 모은 엘리엇의 시집 『늙은 시인의 영리한 고양이 안내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원작으로 한다(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서식하는 유대류 동물 '포섬possum'에서 따온 Old Possum은 엘리엇의 별명이었다). (527페이지)

 

 

시와 소설, 희곡 등 80여 편의 작품으로 우아한 브런치 차려놓은 작가의 밥상을 잘 받았다. 때로는 극과 극의 분위기로, 때로는 비슷한 부분의 비교로, 때로는 오해를 바로잡으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푹 빠졌다. 오랜 시간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확인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번 읽어봐도 좋겠다고, 이렇게 재밌는 작품들을 못 읽을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의미나 메시지는 그다음에 찾아도 늦지 않으니 부담 내려놓고 즐겁게 시작해 보라고 말하는 듯해서 안심된다. 그래서 선뜻 도전해보고 싶은 목록이 엄청 늘었다. (인터넷서점의 장바구니가 이미 터질 지경이라는 건 안 비밀)

 

다른 목적이나 수식어 필요 없이, 일단은 문학을 즐겁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와 가치는 둘째 치고, 문학의 맛에 집중하라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한다. 맛있게 먹어야 소화도 잘되고 영양분도 섭취가 된다. 말 그대로 '문학의 맛'을 제대로 전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발휘된 책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고전 무식자인 나를 그 늪에서 건져 올릴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이 어려운 작품들 이야기를 하면서 편하게 읽히는 책 오랜만이다. (아니,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데, 앞서 출간된 작품들은 읽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책들도 읽고 싶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도서 상세페이지에서 본 저자의 소개가 재밌어서 이 책을 읽게 됐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과 관련 없는 일을 회계 일을 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국에 출장 왔다가 우연히 출판사를 소개받고 진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게, 저자는 천생 책과 가까이, 아니 이렇게 책을 직접 쓰면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 대책 없는 간서치가 되었다는 저자가 쓴 책은, 그것도 고전을 얘기하는 책은 어떨까 싶어 궁금했는데 읽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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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욱 2017-01-20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란 칭찬을 하면서도 읽지는 않는 책이라는 말이 정말 공감되네요. 저는 이 독서노트가 고전 같아요. 마치 소개하신 이책을 다 읽은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오히려 책을 사서 읽을까 말까 망설이게 되는건 무슨 조화일까요....

구단씨 2017-01-20 19:57   좋아요 0 | URL
어쩌면 좋죠? 제가 이 책의 스포일러를 너무 과하게 드러낸 걸까요? ^^
이 책의 저자분이 들으면 슬퍼할지도 모르겠어요. ㅎㅎㅎ
이 브런치 시리즈를 한번은 다 접해보고 싶더라고요.
출간일 순으로 보면 이 책이 가장 최근 출간작인데, 그래서 저는 거꾸로 갑니다. ^^

조승욱 2017-01-2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부터는 좋은책은 칭찬만 하지 않고 직접 읽어보려고 결심했어요^^
덕분에요... 고맙습니다.